[2016 가요계] 오디션 프로의 몰락과 음악 예능의 범람

박영웅 기자

기사입력 2016-12-22 10:06



[스포츠조선 박영웅 기자] 한때 전성기를 누렸던 오디션 프로그램이 몰락하고, 다양한 포맷의 음악 예능 프로그램은 건재함을 과시했던 한해였다. 같은 '음악'의 범주 안에 있는 두 장르의 프로그램이지만 상반된 성적표를 받았다. 이는 '아마추어 뮤지션에 더 이상 신선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대중의 관심도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올해로 8번째 시즌을 맞이한 '슈퍼스타K'는 전국민 오디션이란 타이틀이 민망할 정도로 추락했다. 무려 7명의 심사위원 제도를 도입하고 점수 산정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등 반등의 기회를 노렸지만 시청률 1%를 겉돌다가 막을 내렸다. 지난 2010년 허각과 존박이 우승 자리를 놓고 각축을 벌이던 때에 비하면 매우 초라한 성적이다. 곧 막을 내리는 SBS 'K팝스타'도 박수 칠 때 떠나기로 했다. 앞서 MBC의 야심작 '위대한 탄생'도 일찌감치 판을 접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방송 포맷이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참가자들의 간절한 사연은 인생역전 스토리의 좋은 소재가 되고, 마지막 희망을 달성했을 땐 두 배의 감동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가수를 꿈꾸는 많은 이들이 오디션에 매달렸다. 거대한 팬덤없이 노래 한 번 알리기 힘든 요즘 세상에서 잘 키운 음악 예능은 무명 가수를 단 번에 스타로 만들었고, '슈퍼스타K' '위대한 탄생' 'K팝스타' 등 무명 스타들의 오디션은 물론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 '불후의 명곡' '너의 목소리가 들려' 등 형식만 다를 뿐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쏟아졌다.

물론 실력있는 뮤지션들이 대중에 알려지는 건 크게 반길 일이다. 환풍기 수리공에서 노래 잘 하는 국민가수로 단숨에 떠오른 허각의 경우가 그랬고, '쇼미더머니'를 통해 장르씬에서만 실력을 인정받던 래퍼들이 차례로 대중에 소개됐다. 다만 새로운 얼굴과 음악을 매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다양한 음악과 프로그램이 대중에 수년간 노출되면서 상향 평준화됐고, 전문가 수준의 시청자들도 상당하다. 아마츄어를 발굴하겠단 오디션이 단순한 포맷으로는 힘에 부치는 이유다. 때문에 음악 예능의 핵심인 콘텐츠 싸움은 더욱 치열해 질 수 밖에 없다.


신보를 발표한 가수들은 3분 가량의 무대를 선보이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는다. 게다가 음악 방송 프로그램도 대부분 아이돌 가수들에 집중되어있고 대형 기획사가 아니면 기회를 잡기도 쉽지 않다. 단기간에 승부를 봐야하는 현 가요계의 분위기상 이슈 메이킹에 매달리는 건 당연하다. 특히 방송 한 회에서 이슈를 보장받으면 극적인 성장스토리에 감동, 그리고 음원공개까지. 게다가 주말 황금시간대에 홍보시간을 배정받고 곧바로 음원을 출시하는 것, 이보다 확실한 프로모션은 없다. 사실 이 같은 문제는 외국에서도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클릭 몇 번이면 가수에 대한 정보는 물론 미공개 곡까지 감상이 가능한 세상을 살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음악을 애써 찾아 듣지 않는다. 음악은 넘쳐나도 누가 골라주지 않으면 들을 생각이 없다. 큐레이터 역할을 하고 있는 건 어쩌다 보니 예능이다. 서점 입구에 진열된 베스트셀러 책을 믿고 구매하는 심리처럼. 결국 다양한 장르음악을 들려주고 문화를 정착시키는데 실패한 가요계가 자초한 결과다. 이제 TV가 그 역할을 할 뿐이다.

음악과 결합한 예능 프로그램이 매력적인 건 당연하다. 높은 시청률을 보장하는 인기 프로그램 안에서 스토리가 더해져 공감이란 힘을 얻기 때문이다. 문제아 래퍼들에 인간극장 같은 연출로 행동에 이유를 부여하고, 노래로 감동을 전달했다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홍보문구 또한 반복된다. 결국 대중이 열광하는 건 공감이다. 단순히 음악을 듣고 뮤직비디오를 시청하는 것보다 훨씬 설득력을 갖는다. 그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좋은 싫든 친숙함을 느끼고 그들의 팬이 되어간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막강한 홍보 툴이다. 가요계에서 음악예능이 위협적인 존재가 된지 오래. 이는 더 이상 음악을 찾아 듣지않는 대중의 분위기도 한몫 했다. 어떤 곡을 들어야 할지 몰라서 차트 100위곡을 돌려 듣는다. 하루에도 많은 신곡들이 쏟아지지만 선택의 갈림길에서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신선한 음악을 하는 뮤지션을 발굴하기 보다는, 장사 좀 된다 싶으면 비슷한 음악을 찍어내고 제작자들은 너도 나도 히트 작곡가들을 찾는다. TV를 틀어도 몇 안되는 음악 프로그램 속에서 같은 얼굴과 홍보패턴이 반복된다. 피로감이 쌓인 탓이다.


예능 프로그램에 한 번 노출되는 것이 음악무대 보다 효과적인 홍보 창구가 된 세상이다. 뮤직비디오, 유튜브, 리얼리티, 오디션 등 음악은 이제 더 이상 음악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 또 다른 자극적인 어떤 것들에 점령당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재능있는 뮤지션을 예능만으로 알리는 건 한계가 있다. 음악의 다양성과 실력파 뮤지션의 발굴. 이제 방송을 계기로 자리잡은 대중의 관심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 방송사는 단순히 시청률 좇기가 아닌 양질의 진정성을 전달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매해 반복되는 음악 예능과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열풍. 어쩌면 '다양성'의 탈을 쓴 '획일성'의 또 다른 그림자일지 모른다.


hero16@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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