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초점] 대리만족보다 현실공감, 新 가상결혼 풍속도

최보란 기자

기사입력 2016-12-07 16:02



[스포츠조선 최보란 기자] 가상 결혼이 변했다.

지난 2008년 첫 선을 보인 MBC '우리결혼했어요'(이하 '우결')에서 시작된 '가상 결혼'이라는 설정은 약 10년이 지난 지금도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만혼을 소재로 한 JTBC '님과 함께', 남쪽 노총각 연예인과 북쪽 처녀의 만남을 다룬 TV조선 '애정통일 남남북녀' 등 색다른 콘셉트를 추가한 가상 결혼 예능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들의 결혼 생활 분위기가 조금 달라져굥 '우결'은 현실에서 남다른 케미로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국주-슬리피 커플을 영입했다. 설렘보다는 정으로 사는 현실 부부 같은 김숙과 윤정수 커플은 '님과 함께' 시즌2의 인기를 견인했다. '님과 함께2'는 여기에 원조 가상부부인 서인영-크라운제이를 영입해 8년이 지난 뒤의 감정 변화을 섬세하게 포착해내고 있다.

시청자의 전폭적인 결혼 지지를 받고 있는 김숙과 윤정수는 지난 6일 방송에서 수익금을 기부하는 '플리마켓'에 나섰다. 윤정수는 '미니멀 라이프'를 강조하는 김숙에 떠밀리듯 참가했지만, 남다른 장사 호흡을 드러내며 성공적으로 마켓을 마감했다. 소소하지만 유익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었다.

두 사람의 가상 결혼 생활은 대체로 이런 식이다. 직업 특성상 시상식에 참석하기도 하고 할로윈에는 둘만의 분장쇼를 벌이는 등 특별한 이벤트를 즐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주로 에어컨을 켜느냐 끄느냐를 두고 싸우거나, 올림픽 경기를 보며 함께 응원을 하는 등 일상에서 한 번 쯤 겪어 봤을 법한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이어트를 한다면 하루종일 굶고 운동을 하다가 결국 양푼 비빔밥으로 마무리하고, 집에서 삼겹살을 굽다 때아닌 불쇼로 십년감수한 에피소드는 레전드다.

서인영과 크라운제이도 8년 전과 후, 많이 달라진 모습이 눈길을 모은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서인영과 조용히 몰입하고 싶어하는 크라운제이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여느 부부가 흔히 겪을 법한 에피소드였다. 처제의 방문에 사과를 깍아주던 크라운제이가 칼에 베었다며 엄살을 피자 "피 안 난다"며 무시하는 서인영의 모습도 평범하지만 공감가는 장면이다.

과거 신상 구두 모양의 케이크로 마음을 표현하던 크라운제이는 이제 영화에 몰입하고 싶어도 귀찮아하지 않고 서인영의 질문에 답해주는 것으로 애정을 표현한다. 서인영 또한 크라운제이의 허리디스크를 배려해 자신이 높은 서랍장을 쓰고 낮은 서랍장을 비워주는 배려를 할 줄 안다. 작은 행동이지만 오히려 두 사람의 마음이 더욱 크게 와 닿는다.


달달한 신혼 로맨스의 결정체였던 '우결'도 이국주-슬리피 커플을 통해 분위기를 바꿨다. 앞서 MBC '나 혼자 산다'에서 자취 선후배로서 호흡하던 두 사람이 시청자들에게 강력한 '우결' 후보로 지지를 얻은 것은 바로 현실적인 케미 때문이다. 경제관념도 살림실력도 부족한 슬리피와 그에게 애정어린 잔소리를 하는 이국주의 모습은 어딘지 친숙했다.


가상 결혼 첫날 낮잠을 자버린 슬리피 탓에 혼자 낑낑대며 짐을 들고 와야했던 이국주의 모습은 그간 '우결'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이미 기분이 상항 이국주에게 슬리피의 깜짝 '고기꽃' 이벤트도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국주는 "오빠가 자고 있으면 안 됐다. 주방에서 날 위한 요리를 하고 있었어야 한다"라고 성공팁을 알려줘 슬리피를 당황케 했다.

이벤트 실패로 시무룩한 슬리피를 위해 뒤늦게나마 리액션을 해주며 마음을 풀어주는 이국주의 모습은 깊은 공감을 자아냈다. 꽃과 음악, 촛불 같은 것이 필수였던 '우결'의 전형적인 이벤트와 사뭇 달랐지만 두 사람다운 현실 이벤트가 화려한 프러포즈보다 더 달달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과거 가상 결혼 예능이 만남부터 결혼해 서로 가까워지는 과정을 로맨틱하게 그려내는데 집중했다면, 요즘에는 현실성과 공감을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드라마처럼 대리만족하는 식이었다면, 이제는 제작진이 시청자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기도 하고, 출연진이 가상임을 공공연히 강조하면서 알쏭달쏭한 케미의 맛을 살리기도 한다.

시청자와 교감을 강조하는 요즘 가상부부, 영화나 드라마 같던 예전 가상결혼과는 또 다른 달달함이다.

ran613@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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