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영웅 기자] 가수 양수경은 요즘 행복하다. 오랜만에 다시 잡은 마이크가 반갑고 자신만을 비추는 무대 위 조명이 반갑다. 무려 20년 만에 되찾은 무대. 종이학을 접어 선물하던 팬들은 어느덧 건강식을 챙겨주며 함께 늙어가는 사이가 됐고 사연이 빼곡히 적힌 신청곡 엽서 대신,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응원의 댓글을 읽는 게 일상이 됐다. 모든 게 낯설다는 그는 "핸드폰으로 팬카페 댓글을 일일이 달다보니 손이 저릴 정도"라며 웃어 보였다.
양수경은 1980년대 후반에 데뷔해 1990년대를 뜨겁게 달군 가요계의 디바다. 고운 외모에 호소력 짙은 음색이 묻은 노래들은 발표하는 족족 히트곡이 됐다.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 '사랑은 차가운 유혹' '이별의 끝은 어디인가요' '당신은 어디 있나요' '바라볼 수 없는 그대' 등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기억되는 곡들이다. 그리곤 양수경은 영원할 것만 같던 인기를 뒤로 하고 무대를 내려왔다. 1998년 돌연 자취를 감춘 뒤 2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예전엔 기자들이 수첩에 뭔가를 적곤 했었는데 이젠 다들 노트북을 펼치네요.(웃음) 제가 오래 쉬긴 했나봐요. 그동안 정말 간절했던 무대였는데, 20년을 쉬어서 그런지 경력도 소용없나봐요. 여전히 무대는 떨리더라구요. 아마도 더 잘 해야겠단 생각이 드니깐 긴장되는 거겠죠? 그래도 여전히 저만을 지켜봐주는 팬들이 있어서 용기를 얻죠. 절 위한 짧은 글에도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고 절 바라보는 모든 시선도 소중하기만 해요."
어렵사리 재회한 음악은 곧 희망이었다. 정성껏 빚어낸 새 앨범에는 신곡 '사랑바보'를 비롯해 자신의 히트곡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 등을 다시 불러 수록했다. 이 곡의 작곡가인 전영록은 한 걸음에 달려와 오랜만에 목소리로 힘을 보태기도 했다. 내지르거나 기교를 부리지 않고 담담하게 목소리를 눌러 담았다. 이런 간결하고 담백한 음악은 욕심을 덜어낸 덕분이었다. 체중을 14㎏ 감량했고, 볼펜을 입에 물고 발음을 교정하고, 트레이너로부터 발성까지 새로 잡아가는 등 데뷔 때처럼 준비했다. 프로듀싱을 맡은 하광석 작곡가는 이 모든 걸 함께 한 고마운 동료였다.
"제가 가수였다는 걸 잊고 살 정도로 그렇게 엄마 양수경으로 시간을 보냈어요. 한창 괴롭던 시기에는 '힘내세요'란 팬들의 짧은 글만 듣고도 눈물이 절로 났죠. 요즘도 노래를 할 때면 울컥할 때가 있는데 그건 제 스스로 감사의 눈물이기도 해요. 오래 무대를 떠나있었던 만큼 음악을 듣는 것부터 차근차근 새로 준비해야 했어요."
'인간' 양수경으로 보낸 20년은 '가수' 양수경에겐 분명 지독한 시간이었다. 꾸준히 응원을 보내는 팬들의 글을 볼 때마다 울컥했고, 무대가 그리울 때엔 집에서 내리 5시간을 노래만 부르며 허전함을 채워야 했다. 언제든지 '가수' 양수경으로 오롯이 돌아갈 수 공간은 팬카페 사이트다. 양수경은 "팬들의 글을 모두 읽으면서도 차마 댓글을 달 용기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늘 곁을 지켜준 팬들의 존재는 다시 무대를 찾을 수 있었던 용기 자체였다.
"다시 노래하게 된 것 만으로도 꿈만 같아요. 젊었을 때처럼 정신없이 바쁜 스케줄도 다시 해나갈 수 있을 것만 같죠. 이젠 같이 나이먹어가는 팬들이 제 노래를 함께 불러줄 생각을 하니 게으름 피울 시간이 어디 있나요."
양수경은 '콘서트7080' '공감' '복면가왕 특집' 등 원없이 무대를 누비고 있다. 이젠 플래카드 대신 핸드폰을 들고 있는 팬들의 응원을 받으며 힘껏 노래하는 중이다. 전성기 때 무대를 재구성하는 최근 공연에선 짧은 드레스를 입고 팬들의 뜨거운 시선도 한몸에 받았다. 화려한 드레스 차림의 그녀는 여전히 고운 음색이지만 깊은 눈매에선 아련하게 시간의 흔적도 묻어난다. 하지만 인터뷰 내내 답변에 거침이 없으면서도 "다시 정리해서 말해보겠다"며 의욕을 보일 때면 화려했던 전성기 20대 양수경의 모습도 비쳐보였다.
hero16@sportschosun.com
제37회 청룡영화상,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