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토크②] 유아인 "서른살의 주연상, 누구보다 잘해서 받은 것 아냐"

조지영 기자

기사입력 2016-10-07 16:30 | 최종수정 2016-10-20 09:29


◇ 영화 '사도'로 지난해 열린 제36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유아인. 데뷔 11년 만에 첫 주연상으로 뜻깊은 한해를 보낸 유아인이 스포츠조선 '출장토크'에 응답, 그날의 환희와 기쁨, 이면의 부담감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뉴미디어팀 이새 기자 06sejong@sportschosun.com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이만하면 사건 중의 사건, 파란 중의 파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충무로의 대호'로 불려도 손색이 없는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도 모자라 이들을 제치고 차려진 밥상에 냉큼 수저를 들 수 있는 패기가. 더구나 이런 당돌함에 누구 하나 부정하는 이가 없다. 부정은커녕 모두의 인정을 받음과 동시에 찬사를 받았다. 충무로의 미래, 중심이 된 배우 유아인. 서른살, 데뷔 11년 만에 손에 쥔 주연상이 유독 빛나 보였던 건 착각일까?


◇ 지난해 11월 26일 서울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열린 제36회 청룡영화상. 이날 유아인은 '사도'로 데뷔 11년 만에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스포츠조선DB
지난해 11월 열린 제36회 청룡영화상의 최대 이슈는 남자주연상의 행방이었다. 충무로 남자 배우들의 영화가 쏟아진 만큼 청룡영화상 남자주연상에는 기라성같은 배우들이 대거 후보로 선정돼 박빙의 경쟁을 펼치게 된 것. 일단 지난해 남우주연상을 받은 '사도'(15, 이준익 감독)의 송강호를 중심으로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15, 홍상수 감독)의 정재영, '베테랑'(15, 류승완 감독)의 황정민, '암살'(15, 최동훈 감독)의 이정재가 라인업에 올랐다. 그리고 송강호에 이어 '사도'(15, 이준익 감독)의 또 다른 주인공인 유아인이 남우주연상으로 노미네이트된 상황이었다.

누가 받아도 아깝지 않은 명연기를 선보인 5인에 대해 심사위원들 역시 고민이 만만치 않았지만 주인공은 다섯이 될 수 없는 법. '사도'에서 뜨겁고 강렬한, 때론 서글프고 처연하기까지 한 광기 연기를 펼친 사도세자 역의 유아인이 수상의 영광을 안게 됐다. 새파랗게 어린, 조카뻘되는 유아인의 남우주연상에 얼굴 붉히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1년 전 '변호인'(13, 양우석 감독)으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덕에 시상자로 나선 송강호는 무대 위에서 아버지 같은 포옹과 시선으로 유아인을 보듬었다. 동시에 무대 아래에서는 정재영, 황정민, 이정재가 연신 '삼촌 미소'를 지으며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수상 당시) 긴장 엄청 했어요. 왜냐면, 그때 엄청 받고 싶었거든요. 푸하하. 사람이 욕심이 생기면 자신도 모르게 긴장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수상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때 화면에 선배들과 제 모습이 같이 보였잖아요. 그때 눈을 질끈 감고 있었는데, 누군가는 수상을 바라는 기도를 한 건 아니냐고 묻더라고요. 그런 건 아니었어요(웃음). 그 모든 것들이 민망했어요. 물론 청룡영화상뿐만이 아니라 이전의 시상식에서도 희한한(?) 모습을 많이 보여줬어요. 그런 자리에 있는 제 모습이 편치 않고 불편해요. 잠깐 마음을 풀고 있더라도 갑자기 카메라 불이 들어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분명 내 모습이 방송으로 나오는 게 보이고 알고 있는데 아닌 척 연기를 하는 것도 이상해요. 하하. 이런 모습들이 배우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전 못하겠어요. 오글거리더라고요. 아, 이건 단지 제 개인적인 취향입니다. 하하. 다들 아시다시피 전 진짜 연기를 해야 할 때면 너무 뻔뻔스럽게 잘하는 애죠. 설정이 필요할 때면 기꺼이 연기해 배우 유아인이 되는 거고 또 자연스러운 모습이 필요할 때면 기꺼이 자연인 엄홍식으로 돌아가죠. 그러다 보면 굉장히 어설픈 모습이 보일 수 있고요(웃음). 지난해 청룡영화상은 아마 10년 전쯤 다른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받은 이후 아주 오랜만에 수상했는데 그런 상황이 벌어져 순간 당황했고 그래서 아주 솔직한 제 모습이 드러난 것 같아요. 덕분에 수상소감도 아주 바보같이 하고 내려왔고요. 하하."


유례없는 축하 세례가 익숙하지 않았던 유아인. 그는 호명된 순간 질끈 눈을 감았고 부끄러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머쓱한 상황에 애꿎은 귓불만 만지며 땀을 삐질 흘렸다. '남우주연상'으로 각인된 황금색 트로피는 그날따라 왜 그렇게 무거웠는지. 또 무대는 왜 그렇게 높아 보였는지. 집중된 시선은, 그리고 11년간 봐왔던 카메라는 왜 그렇게 부담스러웠는지. 알 수 없었다는 유아인. 민망. 단지 그 두 글자만 머릿속에 맴돌았다고.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얼굴이 화끈해지고 저절로 귓불을 향해 손이 올라간다며 헤죽헤죽 웃는 유아인이다. 어떤 자리에서도 유연하고 여유로움을 잃지 않았던 '선수' '꾼'이었던 유아인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흥미로웠던, 귀여웠던 인간 엄홍식의 역대급 순간이었다.

"귀여웠나요? 저는 요새 '귀엽다'라는 칭찬을 너무 듣고 싶어요. '유아인 귀엽다'라는 말이 좋아요. 하하. 귓불을 만지는 건 부끄러울 때 나타나는 습관이에요. 그런 수상 자리에서는 맨 처음 귓불을 만지고 그다음 손에 쥔 상을 한 번 바라보죠. 그 뒤에 소감을 말하는 게 제 패턴이죠(웃음). 솔직히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받은 장면을 많이 돌려봤어요. 전들 왜 그걸 많이 안 봤겠어요? 하하. 앞서 올랐던 다른 큰 무대에서보다 이번 청룡영화상은 유독 절 귀엽게 봐주시고 기특하게 봐주신 것 같아요. 수상소감을 단 한 번도 준비해 간 적이 없는데 즉흥적으로 나오는 말을 주저리주저리 말하는 것도 시상식의 재미인 것 같아요. 솔직히 우리나라 시상식 재미없잖아요. 시상식에서 갖춰야 할 고리타분한 관습이 있는 것 같아요. 전 그런 부분에 있어서 보여줄 수 있는 자리에서는 흥미롭게 보여주고 싶어요. 저의 이 순간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한숨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게 제 미션이라면 미션이죠. 위험성은 따르지만요."


지난 2003년, KBS2 성장드라마 '반올림'을 통해 이옥림(고아라)의 남자친구로 얼굴을 알린 유아인. 이후 7편의 드라마와 9편의 영화를 거쳐온 베테랑으로 거듭났다. 뚝심 있게 자신의 연기 행보를 펼친 끝에 찾아온 선물. 11년 만에 쥐어보는 첫 남우주연상에 대해 유아인은 고생 끝에 찾아온 '인정'이라 평했다. 나약한 자신에게 주는 관객의 응원이라고.

"다들 유아인이라고 하면 인정을 바라지 않을 것 같고, 뭐든지 '흥!'하며 시큰둥하게 반응할 거라 생각하잖아요. 그건 그냥 제가 설정한 애티튜드의 단편이죠.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인정을 바라는 순간부터 피곤해지고 불안해지니까 일부러 더 외면한 것도 있어요. 제가 선택한 이 길은 빨리, 쉽게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아니잖아요. '내가 이렇게 무거운 걸음으로 가고 있잖아' '내가 이렇게 진정성 있게 가고 있는 게 안 보여?' '난 특별한 걸음으로 가고 있다고'라며 바라고 애타게 굴면 결국은 자신만 힘들어지니까요. 당연히 인정받고 싶은 순간이 있죠. 저 역시 한없이 나약한 사람인걸요. 수상을 받을 때쯤 딱 그런 감정이 오기도 했고요. '이게 맞나?' '나는 어디로 가고 있지?'라며 고민하던 중이었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청룡영화상의 남우주연상은 관객으로부터 적어도 '네가 틀리지 않은 걸음을 걸어왔다'라고 인정받는 기분이었어요. '베테랑'의 흥행으로 이미 어마어마한 칭찬을 받은 셈이지만 남우주연상은 더 나아가 인정의 액기스, 결정체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요. 스스로 만족스럽고 행복했던 순간이었죠. 전 또 관객에게 인정받으려고 안달 나서 살아가겠죠?"



인정의 참맛을 느낀 유아인은 앞으로도 계속 관객의 칭찬을 그리워하며 더 치열하게 연기하겠다는 다짐을 세웠다. 그렇다고 수상에 집착하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혹시나 생길 아집과 나태함, 거만을 방지하고자 수상 트로피도 자신의 집이 아닌 소속사 사무실에 고이 모셨다는 것. 가끔 그때의 환희가 그리울 때면 소속사로 찾아가 곁눈질로 슬쩍 바라보거나 송강호 선배와 애틋하게 끌어안은 예쁜 사진들을 찾아보고 있다고. 과거의 영광에 발목 잡히지 않으면서 순간순간 감사한 인생을 살겠다며 곱씹었다. 생갭다, 상상외로 유아인은 굉장히 겸손한 30대 배우다.

"'사도'의 사도세자보다 '베테랑' 속 조태오가 흥행 면으로는 관객의 사랑을 더 많이 받았는데 배우 본연의 연기력이 부각됐던 작품은 '사도'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사도'로 후보에 오르고 상까지 받게 돼 감사했어요. 또 한 작품만으로는 수상할 수 없었을 거에요. '베테랑'과 '사도'가 한 패키지로 묶이지 않았다면 관객의 뜨거운 사랑도 식지 않았을까요? 애정 하는 '완득이'(11, 이한 감독) 때 이런 기분을 많이 느꼈거든요. 젊은 배우가 두각을 드러내려고 용쓰는 모습을 보고 '귀엽네' '기특하다' 정도로 받아주시긴 하는데 그게 곧 인정으로 발전되지는 않더라고요. 그런데 이번 두 작품을 통해서는 '완득이' 때보다 나이도, 내공도 조금 드러나서 그런지 인정을 조금 받은 것 같아요. 하하. 저도 알아요. 제가 칭창 받을 만큼 대단한 애가 아니라는 걸요. 그리고 무엇보다 송강호 선배보다 연기 잘해서 받은 상도 아니고요. '사도'는 진폭이 큰 캐릭터였고 그 애쓴 흔적을 치하해주는 게 아닌가 싶네요(웃음). (송)강호 선배도 저 같은 꼬맹이가 상 하나 받아 갔다고 질투하실 분도 아니고요. 청룡영화상 끝나고 뒤풀이 자리를 갔는데 자기 일보다 더 기뻐해 주시는 강호 선배를 보면서 '아, 청룡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을 3번 정도 받으면 저런 여유와 기품이 생기는구나!' 알게 됐죠. 하하."

<[출장토크③]로 이어집니다>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뉴미디어팀 이새 기자 06sejong@sportschosun.com·이정열 기자 dlwjdduf77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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