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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토크①] 이정현 "박찬욱 감독님 덕분에 연기 계속...은인같은 분"

백지은 기자

기사입력 2016-10-13 11:47





※ 바쁜 별들을 위해 스포츠조선 기자들이 두 팔을 걷고 나섰습니다. 밀려드는 촬영 스케줄, 쏟아지는 행사로 눈코 뜰 새 없는 스타를 위해 캠핑카를 몰고 직접 현장을 습격, 잠시나마 숨 돌릴 수 있는 안식처를 선사했습니다. 현장 분위기 속에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스포츠조선의 '출장토크'. 이번 주인공은 만능 엔터테이너의 원조, 가수 겸 배우 이정현입니다.




[스포츠조선 백지은 기자] 지난해 제36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는 또 한번의 이변이 일어났다.

여배우로서 독보적인 캐릭터를 보여줬던 '차이나타운'의 김혜수, '무뢰한'을 통해 '칸의 여왕'의 위엄을 과시한 전도연, '암살'로 천만 관객 신화를 쓴 전지현, '뷰티 인사이드'로 여우주연상 연속 제패를 노리는 한효주를 모두 제치고 독립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이정현에게 여우주연상 트로피가 돌아갔기 때문이다. 대중적인 인기나 작품의 상업성, 혹은 흥행력과 관계없이 오로지 연기력 하나만을 보고 평가한 결과였지만 솔직히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던 반전 드라마이기도 했다. 장본인인 이정현 역시 깜짝 놀라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그로부터 1년여가 흐른 지금, 이정현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에 그를 찾았다. 서울 강남의 한 스튜디오에서 독창적인 화보 촬영에 몰입하던 그는 본지의 급습에도 특유의 사랑스러운 미소를 보여줬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아직도 그날의 기억은 이정현에게 생생하게 남아있다. 아직도 당시의 일을 얘기하며 눈물이 그렁그렁해질 정도다. "시간이 정말 빠르네요. 청룡 이후로 '군함도' 같이 좋은 작품도 만나고 많이 달라졌어요. 그때는 정말 꿈만 같았어요. 그때 영상을 보면 아직도 눈물날 것 같아요. 정말 제가 상을 받을 줄은 몰랐어요. 후보에 오른 것만해도 의미가 있었거든요. 독립영화가 상업영화 사이에서 노미네이트 됐다는 것 자체가 너무 놀라웠어요. 당연히 (김)혜수 언니나 (전)도연 언니가 받을 줄 알았고, 저는 그냥 즐기러 갔어요. 상 받을 때도 매니저도 차 빼러 가고 아무도 없었어요. 상을 받고 있는데 다들 왜 안 오냐고 막 그랬어요. 저도 너무 놀라서 호명됐는데 당당히 나가지도, 일어나지도 못하겠더라고요. 숨거나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감개무량 했어요. 앞도 안 보이더라고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왔던 수남이 자신의 행복을 가로막는 이들에게 복수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정현은 수남 역을 맡아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순진무구한 얼굴로 여유로운 여자의 일상을 그려내다가도 순식간에 그로테스크하게 돌변, 심장을 조여오는 카리스마를 뽐내는 이정현의 리듬감에 관객도 할 말을 잃었다. 이 잔혹한 블랙코미디를 풀어낼 수 있는 배우는 오직 이정현뿐이었을 것이다. 그런 폭발력에 청룡도 주연 배우가 노개런티로 출연했을 만큼 작은 독립 영화에 시선을 돌렸다.

"제가 딸 다섯 중 막내라 부모님께서 연세가 좀 있으세요. 그런데 청룡영화상을 받고 부모님 두 분 다 우셨어요. 집에서 트로피 들고 사진도 찍으시고 너무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연락 끊겼던 분들도 축하 전화를 하셨대요. 이게 청룡의 의미인가 싶었죠. 저도 축하 전화도 많이 받고 문자나 메신저도 100개가 넘게 받았어요. 답장 빠트리면 서운하실 테니 밤새워 답을 했죠. 제가 큰 소속사의 케어를 받고 큰 배우도 아니고, 제작비 억 단위 상업 영화도 아니었는데 상까지 주시니까 너무 감사했어요. 앞으로도 저는 계속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병행할 생각이에요. 작품만 좋으면 개런티는 안받아도 되요. 그래야 영화 시장도 커지고 여배우들이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도 다양해지지 않을까 싶어서요."


재밌는 사실은 이정현의 청룡 여우주연상 수상 일등공신이 바로 '아가씨', '박쥐' 등을 만든 박찬욱 감독이라는 것. 박찬욱 감독과는 2011년 영화 '파란만장'을 통해 처음 만난 뒤 꾸준히 연을 맺어오고 있다. 당시 '파란만장'에는 문소리가 출연하기로 했지만 촬영 당일 임신 사실을 알게돼 불발된 바 있다. 프로젝트가 무산될 위기에 놓인 박 감독은 촬영을 4시간 앞두고 배우 최민식에게 연락처까지 물어 이정현에게 전화했다. 만난 적은 없었지만 '꽃잎' 등에서 보여준 이정현의 연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정현은 단번에 오케이를 외쳤다.


"촬영 4시간 전에 감독님께서 전화하셨어요. 영화에 출연하겠냐고 물어보셨는데 심지어 여주인공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당연히 하겠다고 했죠. 그러니까 감독님께서 '무당 역할인데 괜찮겠냐'고 하셨어요. 저는 괜찮다고 너무 좋다고 하고 갔어요. 시나리오도 받지 못한 상황이라 촬영장에 가면서 급하게 대본을 보고 도착하자마자 촬영에 들어갔어요. 감독님께서 너무 고마웠다고 하시더라고요."


급하게 대본을 숙지하고 촬영에 돌입했지만 신들린 연기로 무당 캐릭터를 소화해냈고, 영화는 베를린 영화제 단편부문 황금곰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당시 사건 이후로 박 감독은 이정현의 멘토와 같은 존재가 되어줬다. 슬럼프를 겪고 있을 때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이번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역시 훌륭한 작품이라며 추천해줬다.

"제가 다시 연기할 수 있게 용기를 주신 분이 바로 박찬욱 감독님이에요. 아마 '파란만장' 때의 일 때문에 더 많이 챙겨주시는 것 같아요. 감독님을 만난 다음 배우로서의 길이 많이 트였어요. '범죄소녀'도 '명량'도 만나고요. 감독님께서 너무 좋은 연기자라며 배우로 계속 남아있길 바라셨어요. 왜 배우가 연기를 안하냐고 영화도 추천해주시고 배우로서의 자세를 가질 수 있게 조언도 해주셨어요. 저도 새로운 작품 제의를 받으면 감독님께 물어보고요. 가장 큰 게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였죠. 갱이 너무 좋으니까 출연하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감독님이 은인이죠."

1996년 '꽃잎'으로 제17회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을 받은 지 꼭 20년 만에 다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배우로서의 2막을 예고한 이정현이다. 이제까지 단 한번도 남들과 같은 평범한 행보를 걸었던 적이 없는 만큼, 앞으로의 활약이 더욱 기대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독립 영화가 많이 나오고, 후배들도 많이 독립 영화에 출연해줬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 영화팬들의 수준이 높으니까 그렇게 되면 관객들도 독립영화를 찾아주시지 않을까요. 그러면 독립영화 소재를 상업영화에서 크게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이 될 거고, 여배우들도 많이 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silk781220@sportschosun.com, 사진=엔터스타일팀 이새 기자 06sejo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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