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백지은 기자] 이준기와 강하늘이 집 나갔던 개연성을 되찾아 왔다.
SBS 월화극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이하 달의 연인)'가 드디어 제자리를 찾은 듯하다. 말도 안되는 판타지와 역사를 무시한 전개로 점철됐던 전반부의 부진을 딛고 판타지 멜로 사극의 본연에 충실해졌다.
'달의 연인'은 21세기 대한민국 현대 여성의 영혼이 깃든 고려 여인 해수(이지은, 아이유)와 고려 황자들의 궁중 로맨스를 그린 작품이다. 총 20부작으로 기획된 이 작품은 전반 10부까지 굴욕을 면치 못했다. 맥락도 팩트도 없는 무자비한 전개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죽고 살기로 물어 뜯던 해수와 황자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마음을 나누게 되고, 모든 황자들이 해수에게 빠져드는 모습이 아이러니하고 지루하게 그려졌다. 특히 8황자 왕욱(강하늘)과 해수의 로맨스는 꽤 난감했다. 강하늘이 하드캐리로 설득력과 현실감을 만들어내서 감동을 주긴 했지만, 사실 흐름 자체는 황당했다. 아픈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던 왕욱이 이제까지 별다른 관심도 없던 해수에게 급격하게 중독되는 이야기는 쉽게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었다. 딱히 내용 없는 왕욱과 해수의 로맨스가 지지부진하게 이어지고, 시대적 상황이나 황궁과 관련한 이야기는 곁다리 취급을 당하며 드라마의 인기도 뚝뚝 떨어졌다. 8월 29일 7.4%, 9.3%(닐슨코리아, 전국기준)로 시작했던 작품이 5%대까지 시청률이 하락했다.
하지만 2막이 시작되고 나서는 언제 그런 만행을 저질렀냐는 듯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됐다. 갑자기 시작된 4황자 왕소(이준기)와 해수의 로맨스가 뜬금없다는 의견도 상당하지만 2막부터 그려지고 있는 왕소의 각성과 왕욱의 흑화는 이제까지 본적 없는 새로운 극적 재미를 주고 있다는 평이다.
특히 왕소가 '피의 군주'가 되어가는 과정을 촘촘하게 그려내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역사 속에서 왕소, 즉 광종은 왕권 강화를 통해 고려 기반을 닦은 인물이다. 과거제를 최초로 도입해 인재를 양성하고 민심을 살피는 총명한 군주였지만, 한편으로는 최악의 공포정치를 편 '피의 군주'이기도 하다. 왕권 강화 정책에 반발하는 세력들을 무참히 제거한 것은 물론 이복동생 효은 태자, 조카인 흥화군, 경춘원군까지 가차없이 죽여버렸고 심지어는 자신의 친아들조차 의심해 끊임없이 괴롭혔다.
드라마는 왜 왕소가 이러한 결단을 내릴수밖에 없었는지, 그 배경을 설명한다. 왕소는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아픔을 간직한 남자다. 이 때문에 마음의 문을 굳게 걸어잠근 채 세상을 떠돌았지만 처음으로 만난 사랑에 한껏 젖어들었다. 하지만 자신이 갈고 닦은 무예 실력 외에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상태. 그래서 첫 사랑 해수를 지켜내는 일은 항상 어렵고 버겁다. 황족과 호족들은 이런 왕소의 상황을 이용해 자신의 잇속을 채우려 든다. 내걸 것이 목숨밖에 없는 왕소로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수밖에 없다. 결국 힘이 없는 자는 이용만 당할 뿐 아무것도 지킬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달은 왕소는 스스로 황제가 되어 권력을 잡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씁쓸한 권력의 맛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그에 도전하는 이들을 잔혹하게 처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1일 방송에서도 마찬가지. 왕소는 선왕 시해죄를 해수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왕요(홍종현)의 뜻에 따라 왕은(엑소 백현)을 추격했다. 해수는 광종의 일대기를 기억하고 왕은을 숨겨주려 했지만, 황보연화(강한나)가 이를 눈치채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왕은은 위기에 놓였고 왕소는 "내가 황제가 되어야 겠다"고 다짐한다.
'달의 연인'은 이처럼 왕소가 왜 '피의 군주'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하며 역사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그러면서 개연성은 물론 배우들의 연기와 캐릭터도 살아나고 있다.
중심에 선 것은 누가 뭐래도 이준기다. 이준기는 늑대개처럼 날뛰기만 했던 왕소가 마음을 다잡고 황제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농염하게 그려내고 있다. 다이어트를 통해 한층 날렵해진 외관으로 한자루 칼과 같은 왕소의 성정을 표현해내는가 하면, 화면을 집어삼킬 듯한 눈빛 연기로 흡입력을 더하고 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이제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남성미다. "목줄을 끊는 개가 되겠다"고 각성을 예고하는 장면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남성적 섹시미를 풍기며 눈길을 사로잡는다. 강하늘도 그 무게를 나눠지고 있다. 자상하고 젠틀했던 왕욱이 선왕을 시해할 정도로 잔인하고 치밀한 계략가가 되어가는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왕요를 꼭두각시로 내세우고 배후에 서서 씩 웃는 모습은 섬뜩한 최종 보스의 모습 그 자체다. 이러한 이준기와 강하늘의 대립은 드라마의 큰 관전포인트가 되어 여심을 자극한다.
드라마 초반부터 꾸준히 지적받았던 이지은의 연기력 또한 훨씬 나아졌다. 초반엔 황당한 상황 속에서 갈팡질팡하며 흔들리는 연기력을 보여줬지만 2막부터는 캐릭터가 안정을 되찾으면서 섬세한 감정 연기를 보여줘 감정이입을 돕고 있다.
이에 '달의 연인'은 다시 8%대 시청률을 회복하며 탄력을 받고 있다. 아직 KBS2 월화극 '구르미 그린 달빛'과 MBC 월화극 '캐리어를 끄는 여자'에 밀려 시청률 면에서는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화제성 만큼은 뛰어나다.
'달의 연인'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silk781220@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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