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악플이 두렵지 않다.
남규리는 가수 씨야의 보컬로 시작해 배우로 전향한 가수 출신 배우다. 가수 출신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색안경을 낀 일부의 혹평을 받았던 남규리. 하지만 남규리는 이번 SBS 주말극 '그래 그런거야'의 이나영 연기를 통해 끈질기게 쫓아온 꼬리표를 떼어냈다. 안정된 연기를 선보이며 배우 남규리의 면모를 시청자들에 각인한 것이다.
남규리는 오랜 기간 쌓아온 설움을 '그래 그런거야'의 이나영을 통해 폭발시켰다. 남규리가 연기한 이나영은 배우 지망생이자 사랑의 도피 까지 감행하는 주체적인 캐릭터다. 정해인과 사랑의 도피를 감행하지만 가혹한 생활고에 좌절하고, 극복해내는 캐릭터 이나영. 김수현 작가는 남규리의 이나영 연기를 보고 "막걸리가 터졌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툭 던지신 말이었어요. 저는 자신에 대해서 인정을 많이 안하는 편이거든요. 스스로 채찍질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어서 그런 말씀을 듣는 게 조금 어색했어요. 그 순간에도 그 의미를 모르고 좋은 의미라는 생각만 들었어요. '숙성?榮募 뜻인가?'평소에 이해하는데 템포가 좀 느린 편이라 곱씹어 생각해야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래도 다른 어떤 칭찬보다 행복했어요."
6년만에 재회한 김수현 작가, 한국을 대표하는 극 작가 김수현이기에 이 칭찬은 남규리에게 더욱 값졌다.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30개가 넘는 작품을 집필한 김수현 작가는 김해숙, 이미숙 같은 베테랑 연기자도 긴장하게 하는 전설적인 존재다. 대사 한 글자, 숨을 쉬어가는 부분마저도 체크한다는 김수현 작가의 완벽주의에 여러 연기자가 혀룰 내두르기도 했다. 하지만 남규리는 달랐다. 김 작가 특유의 세밀한 연기 디렉션이 남규리에겐 안성맞춤 이었던 것.
"김수현 작가님이 소문만 들으면 무서운 이미지지만 실제론 애정이 많으세요. 다른 배우들도 한 번씩 칭찬을 받았고요. 방관자가 아니라 채찍질 해주시는 부분이 좋았어요. '잘 하고 있어. 근데 그 장면에선 이런 식으로 연기 했어야지' 이런 식의 연기 디렉션이 정말 좋았어요. 칭찬만 들으면 오히려 불안해요. 사람이기 때문에 기분이 좋아지면 실수하거나, 안주해버릴 수 있잖아요. 그래서 칭찬을 칭찬으로 잘 안 듣는 편이에요."
이런 높은 자기 기준 덕분일까. 남규리는 이번 이나영 역할을 통해 한 층 나아진 연기를 보였다는 평을 듣고 있다. 특히 꿈을 쫓는 배우 지망생, 경제적 어려움을 딛고 사랑을 쟁취하는 이나영이라는 캐릭터가 삼포세대로 대변되는 힘든 시기의 20, 30대 시청자들의 취향을 저격했다.
남규리는 이나영의 주체적인 모습이 자신과 닮았다며 유독 좋았던 캐릭터 소화력에 대해 설명했다. 가혹한 현실에서도 주체적으로 사랑을 쟁취하고, 인생을 개척해 가는 모습이 자신과 닮았다는 것. 남규리는 현실에서도 사랑, 일 등 원하는 바를 위해 열정적으로 살아왔다고 말했다. 주변 사람은 이처럼 열정적이고 바쁘게 살아가는 그를 보며 '아톰'이라고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엄마를 위해서 산다'라는 부분이 이나영과 조금 다르지만, 주체적인 성격은 닮았어요. 이나영이 세준이(정해인)를 사랑하듯이 전 일을 하고, 사랑을 하고, 열정 있게 살아온 것 같아요. 물론 실생활에서 주체적으로 자존감을 갖는 건 막연하고 어렵죠. 하지만 그래도 이런 막연한 확신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확신이 있으면 도태되거나, 정신적인 나태는 안오는 것 같아요. 조금이라도 더 자기를 채우려고 하게 되니까요."
연기의 발전, 그리고 인간 남규리의 성숙 덕분일까. 남규리는 이젠 댓글을 또박또박 다 읽을 수 있게 되었다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예전에는 무분별한 악플 때문에 댓글을 아예 못 읽거나, 혹은 그냥 휘리릭 스쳐가듯이 읽었지만 이제는 담대하게 시청자와 마주할 수 있다는 것. 남규리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마주할 수 있게돼 댓글로 용기도 얻곤 한다고 말했다.
"제일 고마웠던 댓글은 '드라마를 보고 얘기해'라는 말이었어요. 어떤 팬은 SNS에서 '규리씨 인터뷰 3번 넘게 읽었다.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응원할 테니 좋은 모습 보여달라'고 남기기도 하셨어요. 이런 소소한 칭찬에 힘을 얻는 것 같아요. 이런 분들 덕분에 '날 좋아해줄 사람이 생길 것이다' 라는 희망을 가지고 연기를 할 수 있었어요. 소수의 팬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연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남규리를 비롯한 출연진의 호연, 탄탄한 극본에도 불구하고 '그래 그런거야'는 6회 조기 종영되었다. 남규리는 "시원하고 섭섭하다"며 "'인생은 아름다워' 때 연장촬영이 많아 이번 작품도 당연히 연장될 줄 알고 있었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조기 종영, 시청자들의 사랑, 김수현 작가와의 재회 까지. 남규리는 이번 '그래 그런거야'를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유는 가수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왔던 그를 배우 남규리로 재탄생 시켜준 작품이기 때문이다. 남규리는 '그래 그런거야'가 공백기간 낮아졌던 자존감, 연기를 다시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해결해준 소중한 작품이라고 밝혔다.
"가뭄의 단비, 메마른 땅에 꽃이 피는 느낌이에요. 배우 생활 공백이 길어지면서 다시 열정을 갖고 연기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곤 했어요.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거든요. 그 때 '그래 그런거야'가 '평생 연기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해줬어요. '연기하니까 심장이 뛰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어요. 15시간 동안 감정신을 찍어도 끝까지 정신을 차리고, 심지어 즐기고 있더라고요. 모니터해주는 친구들이 '너 그러다 죽겠다'라고 걱정도 많이 해줬어요. 근데 열정이 있으니까 체력이 문제가 아니었어요. 그냥 저도 알 수 없는 힘이 솟아나는 느낌이었죠."
남규리는 소중한 작품 '그래 그런거야'에서 만난 인연도 잊지 않았다. 특히 극중 이나영의 상대역 유세준을 연기한 정해인은 남규리를 형이라고 부를 정도로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남규리는 "정해인을 리드 했던 키스신 이후 부터 자신안의 형 본능이 깨어난 것 같다. 그때 '아는 형님'에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그래 그런거야'로 시청자들에게 배우의 면모를 확실히 각인한 남규리, 그는 점점 '중성적'이 되면서 연기가 느는 것 같다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중성적이기에 가질 수 있는 여유, 냉정함을 가지고 돌아올 남규리의 복귀가 벌써 부터 기다려진다.
"제일 무서운 건 자기한테 빠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가수, 배우 뿐만아니라 사람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죠. 이런 생각이 오는 시점이 '중성적'이라는 게 아닐까요. 유연하게 볼 줄 알고, 냉정하게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고. 모성애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해요. 모성애를 느껴본 배우가 연기가 늘듯이, 저도 모호하게 '중성적'이라는 걸 느끼고 있어요. 정확하게 설명을 드릴 순 없지만 내려놓음 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스포츠조선 뉴미디어팀 이종현 기자], 사진 이정열 기자 dlwjdduf777@sylcompan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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