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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랙레이블의 쿠시&자이언티, AOMG의 사이먼도미닉, 그레이 (왼쪽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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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박영웅 기자] 2014년 소유와 정기고가 부른 곡 '썸'은 그야말로 가요계의 대형사건이었다. 한해 22개의 트로피와 차트 최장기간 1위란 대기록을 세운 이 곡은 애매모호한 남녀간의 연애행태를 뜻하는 '썸'이란 트렌드를 발빠르게 캐치해 신드롬이 되었다. 대형 걸 그룹들의 맞대결로 달궈진 당시 가요계 분위기를 감안하면, 승자는 결국 엉뚱한 곳에서 터진 셈이다. 15년차 베테랑 가수 정기고가 본격적으로 대중에 노출되기 시작했고, 씨스타 소유는 믿고 듣는 솔로 여성보컬로 가능성을 인정받게 되었으니 메이저와 인디씬 윈윈(win win) 전략의 대표사례라 부를 만하다. 또 이것은 대중음악계의 또 다른 생태계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메이저 기획사와 인디 레이블의 교류. 단순한 협업에 머무는 게 아닌, 영리하게 서로의 장점만을 흡수하는 시스템의 형태다.
엔터테인먼트 생태계가 레이블 체제 중심으로 새롭게 재편되고 있다. 케이팝 신드롬, 단발성으로 끝나는 이벤트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대형 기획사들의 장기적 브랜드 이미징의 일환이다. 대중문화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끼칠 정도로 규모가 커져버린 업계가 그동안 케이팝 붐으로 글로벌 시장의 근간을 마련했다면, 이제는 그동안의 성공 사례를 기반으로 지속적인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롭고 막강한 콘텐츠 개발은 선택 아닌 필수다. 다양한 장르 뮤지션의 발굴과 탄탄한 시스템 확립을 위한, 메이저와 인디신의 영리한 동거생활이 시작됐다.
본래 '레이블'이란 레코드업계에서 제작 브랜드명을 가리키는 용어로 인디 록, 힙합, 재즈 등 장르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를 확보해 그들의 개성을 살리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독립 음반기획사를 의미한다. 올해 대형 기획사들 사이 붐처럼 확산된 '레이블 체제'란 아티스트와 음반제작을 위한 전문화된 기업 형태로, 대형 엔터 기획사 성장가능성이 있는 독립레이블의 일정 지분을 사들이면서 투자를 통해 회사 간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체제를 일컫는다. 레이블 체제 아래 소속사는 기존 고유의 색깔을 유지하면서 협업을 통해 성장해 나갈 수 있다. 다른 회사의 지분을 인수하거나 소속 아티스트들에게 독립 레이블을 만들어주는 등 방식도 다양하다.
스타쉽 엔터테인먼트는 정기고, 주영, 매드클라운 등 힙합 알앤비씬의 실력파 아티스트를 영입한 '스타쉽 엑스'란 레이블을 꾸려 성공을 거뒀고, YG는 소속 가수인 에픽하이 타블로에게 '하이그라운드'(HIGHGRND) 라는 레이블을 차려주며 인디신에서 가장 핫한 밴드라 불리는 혁오를 영입해 주목을 받았다. 여기에 YG의 핵심 프로듀서 테디가 이끄는 더블랙레이블은 블랙뮤직을 중심으로 하는 YG레이블의 또 다른 축이다. 또 로엔엔터테인먼트는 산하 레이블인 로엔트리와 콜라보따리로 나눠 차별화된 시스템을 구축했고 '문화인'이라는 굵직한 인디 합동 레이블 회사를 내부에 설립했다. 개성강한 음악의 독립성을 보장하면서도 상위기획사의 든든한 후원을 받는 상호 협력관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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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 EDM 레이블 'ScreaM Record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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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계 대형기획사들은 올해를 사업확장 원년의 해로 삼고 변화의 길을 걷고 있다. 힙합, 알앤비, 록 등 다양한 장르음악에 큰 관심을 갖고 전문적인 레이블 체제를 구축한 것은 이들의 공통적인 행보다. SM은 케이팝의 다양성을 부각시키고 세계화시키기 위한 인디 레이블 '발전소'에 지분투자를 하며 글로벌 유통과 마케팅, 부가사업 등에서 굳건한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또 SM이 EDM 장르에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며 본격적인 레이블 'ScreaM Records' 설립을 발표했다. 이는 지난 1월 개최된 프레젠테이션 쇼 'SMTOWN: New Culture Technology, 2016'에서 이수만 프로듀서가 발표한 2016년 SM 신규 프로젝트 중 하나로, '보고 듣는 퍼포먼스'에서 '함께 즐기는 퍼포먼스'로 확장하고 음악적 다변화를 꾀하고자 론칭한 것이다. 국내외의 세계적인 EDM DJ, 프로듀서는 물론 다양한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을 통해 좋은 음악을 선보이기 위한 레이블이다. CJ E&M은 CJ뮤직 외에도 젤리피쉬, 뮤직웍스, MMO, 하이라이트레코즈 등 장르별로 대형 레이블 체제를 확립했다. 또 박재범, 사이먼도미닉, 그레이 등이 소속된 AOMG는 현재 가장 주목받는 힙합 레이블 중 하나로 지난 1월 CJ E&M 음악부문이 AOMG의 지분을 인수, 전략적 제휴를 맺고 CJ E&M 음악부문의 인프라, 노하우를 지원받으며 더욱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대형 엔터테인먼트들이 공통적으로 레이블체제를 구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형기획사는 기획부터 마케팅까지 올 프로세스를 마련하고 막강한 홍보 툴까지 갖췄지만 개성 있는 콘텐츠가 시급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가수를 발굴하고 대중에 알리는 것은 기획사의 당연한 숙명이지만, 보다 완성도 있으면서도 리스크를 줄인 시스템을 선호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개성 있는 음악을 선보이는 인디씬 아티스트들에게 눈을 돌린 이유다. 이미 씬에서 안정적인 마니아 층을 갖춘 아티스트라면 두 말할 것도 없이 영입 1순위. 이는 오버와 언더로 구분 짓는 시기가 이미 지나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도끼, 더콰이엇, 빈지노가 이끄는 힙합 레이블 '일리네어 레코즈'가 방송 활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대중에 낯설지 않은 이름이 되고, 그들의 공연장은 늘 팬들로 빼곡하다. 단단한 팬덤과 음악성 마저 확보했으니 더할 나위 없는 포지셔닝이다.
탄탄한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은 당연히 개성있는 '콘텐츠'라는 얘기다. 여기에 레이블 형태의 시스템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질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확실한 대안이다. 댄스음악이 주가 되는 아이돌 댄스그룹 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히다 보니 색다른 콘텐츠를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고, 아이돌 중심으로 사세를 확장해온 대형기획사들은 시스템을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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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그라운드 소속의 밴드 혁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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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기획사가 모든 장르의 음악을 하게 될 경우 가수의 개성이 묻힐 수 있다는 점에서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는 따로 독립적인 공간을 두고 협업의 형태로 가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대형 기획사는 록, 힙합 등의 레이블을 만들면서 다양한 소속 아티스트를 영입할 수 있고 아이돌 팬덤 뿐 아니라 마니아층의 지지 세력 또한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본격적으로 인디, 힙합, 록 등 타 분야에서 다양한 음악적 지분을 확보하기 시작한 것이다.
케이팝의 지속적인 성장으로 국내 음악시장을 넘어 세계 글로벌 음악시장을 대비해야 할 시점에서 기획사의 레이블 체제는 결국 '윈윈' 전략으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아티스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색을 지키면서도 제작, 홍보 등 이미 구축된 시스템 안에서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고, 기획사는 장르적으로 전문적인 레이블을 통해 아이덴티티를 구축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획일화된 가요계에 큰 자극이 되기도 한다. 기존 가요계가 다루지 않았던 장르의 시장을 넓히는 계기가 되고, 자본으로 인해 지속성을 갖는 것이 힘든 언더그라운드에도 서로 윈윈 효과가 되는 셈이다. 사업의 규모와 조직구성에 있어서도 경쟁력을 키우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부익부 빈익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대형기획사들의 몸집 불리기가 자칫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중소기획사의 설 자리를 빼앗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레이블 체제는 자본의 논리에 따라 대기업의 배만 불릴 수 있는 기형적인 구조로 전락할 수도 있다. 질 높은 컨텐츠를 생산해낸 중소 제작사나 기획사가 대형 엔터테인먼트로 흡수되는 현상이 지속되면 중소기획사의 제작의지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대형기획사가 모든 것을 장악하게 되는 형태로 음반시장이 고착화될 것이라는 의견이다. 대형 기획사들이 산하 레이블 체제로, 언더그라운드의 레이블을 영입하면서 언더그라운드에서만 가능했던 표현이나 인디씬에서 형성된 특유의 분위기가 위축되는 면이 있을 것이다. 오버와 인디씬의 영리한 공생을 고려해 체제를 구축해야 하는 이유다.
엔터테인먼트 레이블 체제의 목표는 음악적으로 자율성을 보장하고 시장지배력을 강화하는데에 있다. 이미 미국, 일본 등 해외에서는 성공한 모델로 자리잡은 만큼, 사례를 기반으로 기획사들 모두 먼 미래를 두고 장기적 시스템을 구축해가는 모양새다. 케이팝의 경쟁력은 결국 다양한 장르음악이 고루 발전할 수 있는 균형잡힌 시스템에 있다.
hero16@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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