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국내 최초 좀비 재난 카드를 과감히 스크린에 꺼낸든 연상호(38) 감독.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감히 성공을 예측하지 못했던 그가 제대로 판을 벌였고 마침내 사건을 만들었다. 충무로 새 바람을 일으킬 천재 감독이 탄생했다.
좀비 재난 액션 영화 '부산행'(연상호 감독, 영화사 레드피터 제작)은 전대미문의 재난이 대한민국을 뒤덮은 가운데, 서울역을 출발한 부산행 열차에 몸을 실은 사람들의 생존을 건 치열한 사투를 그린 작품. '좀비랜드'(09, 루벤 플레셔 감독)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 '웜 바디스'(13, 조나다 레빈 감독) '월드워Z'(13, 마크 포스터 감독) 등 할리우드 좀비 영화가 아닌 충무로 감독과 배우들이 국내 기술을 바탕으로 만든 한국산 좀비 프로젝트다.
이러한 '부산행'은 연상호 감독의 첫 번째 상업영화로 제작단계부터 개봉까지 영화계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물론 이 관심 속에는 실패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영화에서는 좀비를 다룬 소재의 영화가 단 한 편도 성공한 적이 없었기 때문. 어설픈 특수분장과 코미디 같은 CG로 엉성하기 짝이 없었던 좀비물은 당연히 관객으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었다.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도 이런 우려를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부산행'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확신에 차 있었다.
"처음 '부산행'을 실사영화로 만든다고 했을 때 확신에 찬 이들은 감독인 저와 제작을 맡을 영화사 레드피터, 그리고 투자·배급을 담당하는 NEW뿐이었죠. 딱 이 세 집단만 확신에 찼어요(웃음). 나머지는 '이게 잘 되겠어?' '시도는 좋은데 안될 것이다'며 개봉 당일까지 근심, 걱정만 늘어놨죠. 그래도 전 될 거라 생각했어요. 물론 지금처럼 이렇게 폭발적인 사랑을 받을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지만 중박은 할 거라 예상했죠. 하하."
'부산행'의 흥행을 예견했다는 연상호 감독은 첫날 스코어에 대해 '50만명'을 목표로 했다고. 혹여 운이라도 따른다면 "역대 최고 흥행작인 '명량'(14, 김한민 감독)의 오프닝 스코어(68만명)도 넘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작은(?) 소망도 가졌다고. 그리고 그의 바람처럼 '부산행'은 역대 최고 오프닝 스코어(87만2232명)를 기록했고 지난달 31일까지 누적 관객수는 840만8977명을 돌파했다. 1000만 관객 돌파가 멀지 않았다.
"'부산행'은 전반적으로 반응이 좋았어요. 제일 걱정했던 중장년층 관객도 생갭다 많이 봐준 것 같아요. 사실 좀비 마니아들은 다 아는 설정이지만 남녀노소 누가 봐도 이해할 만큼 좀비를 자세하게 그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부산행'에서 감염 과정을 좀 더 디테일하게 표현하려 했고요. '이 세상 처음으로 만드는 좀비 영화다'라는 생각으로 '부산행'을 시작했는데 의도가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좀비를 처음 보는 사람들도, 노년층 관객도 '좀비가 말이야…'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풍경을 원했는데 어느 정도 소원을 이룬 것 같아요. 하하."
연상호 감독은 좀비물을 성공으로 이끈 성과 외에도 애니메이션 감독에서 실사영화 감독으로 출사표도 주목을 받았다.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는 엄연히 다른 장르. 한 번도 실사영화를 촬영한 적 없는 연상호 감독이 순 제작비 86억원(총 제작비 115억)의 거대한 프로젝트를 성공시킬지 이목이 쏠린 것. 일각에서는 영화에 대한 우려로 '감독 교체'를 운운하기도 했지만 이 또한 기우에 불과했다.
일단 충무로에서 극히 드문 '아침형 감독'이었던 연상호 감독은 영화계 관례처럼 굳혀진 늦은 밤, 새벽까지의 촬영을 일체 배제했다. 규칙적인 환경으로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컨디션을 조절했다는 후문. 또한 불필요한 예비 컷을 찍지 않고 정확히 필요한 컷만 촬영해 제작비 절감에 일조했다는 것. 덩달아 시간도 단축할 수 있어 애초 계획된 70회차에서 67회차로 촬영을 단축하는 '초능력'을 선보였다. 가편집은 이틀, 최종 편집은 한 달 만에 끝내는 신공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어떻게 찍어나?' 싶기도 해요. 하하. 기라성같은 많은 선배 감독들에 보다 한참 부족한 실력이지만 그 속에서 굳이 강점을 꼽자면 애니메이션으로 다져진 화면 구성력이 있지 않을까요? 애니메이션은 다들 알다시피 예비 컷이 존재하지 않아요. 쓸 프레임만 만들죠. 그래서 처음 '부산행'을 촬영할 때도 예비 컷을 만들 생각조차 못 했어요. 계획했던 화면 구성대로 찍기만 하면 되는데 왜 예비 컷을 찍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시간도 단축됐고 일찍 퇴근이 가능했죠(웃음). 나홍진 감독이 '곡성'을 편집할 때 저도 '부산행'을 편집하고 있었는데 제가 편집을 다 끝낼 때까지도 '곡성'을 붙잡고 있더라고요. 하하. 그때 나홍진 감독과 술 한잔 기울였는데 8개월째 편집만 하고 있다고 토로하더라고요. 전 거기에서 '난 이틀 만에 끝냈는데?'라며 얄밉게 자랑하기도 했죠(웃음). 물론 영화적 성격이나 호흡이 달라서 편집 시간의 차이가 있었겠지만 '부산행'은 최대한 군더더기 없게, 깔끔하게 마무리 짓고 싶었어요."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영화 '부산행'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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