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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리뷰] 부서진 스무살 청춘, '글로리데이'는 없다

김표향 기자

기사입력 2016-03-17 08:01



[스포츠조선 김표향 기자] "우리도 이제 어른이잖아." 운전을 하다가, 술을 마시다가, 문득 이래도 되나 싶어 움찔하는 스무살에게 '어른'이란 말은 묘한 안도감을 준다. 그래, 우리도 어른이니까. 뭐든 괜찮을 거야.

영화 '글로리데이'의 스무살 네 친구는 이제 막 어른이란 이름의 '프리패스'를 손에 넣은 참이다. 그들이 어른의 자격으로 처음 한 일이란 참으로 사소하다. 엄마의 감시를 피해 담을 넘고(류준열), 야구부 훈련에서 도망쳐 나와(김희찬), 의기양양하게 차를 몰아서(지수), 학업 대신 군입대를 택한(김준면) 친구를 배웅하러 여행을 떠나는 것. 기껏 해야 하룻밤의 일탈일 뿐이다.

하지만 스무살이 처음 맞닥뜨린 세상은 그리 순진하지 않다. 우연히 남편에게 맞고 있는 여자를 발견한 네 친구는 이를 말리려 하다가 몸싸움에 휘말린다. 불의를 참지 않아야 진짜 어른이니까. 하지만 불륜이 들킬까 초조한 여자의 거짓말과 경찰의 무신경함에 그들은 졸지에 남자를 죽인 용의자로 몰린다. 더구나 경찰을 피해 달아나던 한 친구는 뺑소니 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매고 있다.

"우리가 죽이지 않았다"고 아무리 몸부림치며 호소해도 경찰은 물론 부모들마저 그들의 '억울함'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부모들은 "당신네 아이가 순진한 우리 아이를 꾀어냈다"면서 서로를 탓하느라 바쁘고, 경찰은 윗선으로 걸려온 전화 한통에 사건을 조용히 처리하기로 한다. 그리고 어른들은 말한다. "세상엔 친구보다 지킬 게 더 많다"고, 그러니 진실 규명보다는 사태 수습이 먼저라고,

"어른이 돼 봐. 어른들이 하는 말 이해하게 될 거야." 미숙한 스무살은 아직 어른이 아니었던 거다. 네 친구는 격렬한 저항 끝에 굴복한다. 어쩌면 그들이 어른을 자처했던 건, 미숙함에서 오는 불안을 떨쳐내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찬란한 '글로리데이'여야 할 스무살은 그렇게 산산이 부서져 버린다. 어른들이 쌓아 올린 세상은 철옹성처럼 견고했고, 네 친구는 너무나 무력했다.

영화 '글로리데이'는 어른이란 존재의 뻔뻔하고 비겁한 민낯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청춘의 오늘을 얘기한다. 스무살 문턱을 넘어선 이들이 처음 마주치는 건, 미래에 대한 꿈이 아닌 현실 사회의 부조리다. 힘이 없으면 죄가 없어도 죄값을 치러야 하고, 내가 살기 위해선 남을 짓밟아야 하는 비정한 세상. 희망보다 절망에 익숙해진 청춘은 성장하지 못하고 생존에 매달린다. 영화 속 네 친구들의 얘기인 동시에 이 시대 모든 청춘들에게 해당하는 얘기다.

영화 속 스무살에게, 이 시대 청춘들에게, '세상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말해줄 수 있을까. 영화에 그려진 부모들의 해법과 공권력의 행태는 새삼스럽지도 않을 만큼 익숙해서 뭐라 비난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죄책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극장문을 나선 뒤에도 답답하고 먹먹한 마음을 떨쳐낼 수가 없다. 반짝이던 청춘이 시들어가는 모습을 저릿하게 그려낸 주연배우 지수, 김준면(엑소 수호), 류준열, 김희찬의 열연도 한 가지 이유다.


영화에서 모든 책임은 결국 약자에게 떠넘겨진다. 스무살은 그렇게 세상의 가혹한 질서를 내면화한다. 청춘의 성장통이 이런 것이라면, 차라리 어른이 되기를 포기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래서 '글로리데이'는 성장영화도, 청춘영화도 아니다. 청춘의 오늘을 구겨버린 어른과 사회의 책임을 묻는 영화다.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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