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피의 전쟁에서 끝내 최후를 맞이한 잔트가르(최강의 사나이). 마지막까지 찬란했던 영웅 정도전을 '사극본좌' 김명민이 아니면 그 누가 감당할 수 있었겠나.
결국 정도전이 피신한 성균관을 포위한 이방원은 군사들에게 "모두 날 따라 외치거라. '정도전 나와라' 하고 외치면 된다"며 도발했다. 이어 "지금 역사를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삼봉, 쥐새끼처럼 도망쳐야지"라고 섬뜩한 야욕을 표출했다. 군사들은 이방원의 지시에 따라 "정도전 나와라"라며 소리를 질렀고 수세에 몰린 정도전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이방원에게 쪽지를 건넸다.
일촉즉발 상황에서 정도전이 보낸 쪽지에는 '좀 조용히 하거라. 금방 나간다'라는 짤막한 말이 적혀 있었다. 최후의 순간에도 특유의 여유로움을 잃지 않는 잔트가르의 모습이었다. 굽힘 없는 정도전의 모습에 더욱 약이 오른 이방원은 "모두 조용히 하거라. 스승님께서 시간이 필요하시단다"라고 비꼬았다.
스스로 성균관의 문을 열고 나타난 정도전은 이방원에게 산책을 제안했고 이방원 역시 이런 정도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방원은 정도전을 향해 "왜 도망가지 않으셨습니까?"라며 의중을 물었고 정도전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사실 너와 내가 꿈꾸는 나라는 같은 것이지 않으냐. 내가 한들, 네가 한들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너는 나의 사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잘해낼 것이다"고 조언했다. 이에 치기 어린 이방원은 "요동정벌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발끈했고 정도전은 "그건 살아남는 자가 알아서 할 것이다. 승자는 시대를 이끈다. 망자가 시대를 이끌어서야 하겠느냐"라고 전했다. 한때나마 존경했던 스승의 마지막 가르침이었다.
정도전의 이상에 잠시 멈칫한 이방원. 멋진 잔트가르를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만 한다는 현실이 괴로웠고 또 망설여졌던 순간이다. 흔들리는 이방원을 본 정도전은 "고단하구나, 방원아"라는 말로 죄책감을 덜어줬고 결국 이방원의 칼에 숨을 거뒀다. 정도전은 먼저 세상을 떠난 포은 정몽주(김의성)를 떠올리며 '가혹하게 살거나 가혹하게 죽거나 나 또한 그렇게 되었소, 포은'이라며 곱씹었다.
이렇듯 첫 등장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전율의 정도전을 선보인 김명민은 '사극본좌'의 품격을 또한번 입증하며 장렬하게 퇴장했다.
역사가 스포였던만큼 뻔한 결말을 보일 것이라 예상됐지만 김명민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본 적 없었던, 새로운 정도전을 구축해 마지막까지 시청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것. 이제 정도전은 김명민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됐다.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SBS '육룡이 나르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