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조선 최보란 기자] 일명 '금수저 망나니'가 악역의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죄를 짓고도 이를 뉘우칠 줄 모르는 안하무인 한세규를 완벽하게 소화해 낸 이동하였지만, 연기할 때는 너무 힘들어 실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그만큼 실제로 만난 이동하는 한세규와 겹쳐보기 어려울 정도로 반대되는 성격이었고, 새삼 그의 연기에 다시 감탄하게 됐다.
그처럼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동하는 '시그널' 촬영장의 열정적인 분위기와 환상적인 팀워크를 이야기하며, 함께 한 것에 대한 고마움과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잠깐의 출연만으로도 느껴지는 촬영현장의 그 에너지가 '시그널'의 인기 비결이 아닐까.
|
사실 처음엔 어떤 역할을 맡게 될 지 몰랐다. '미생'을 재밌게 봤는데, 김원석 감독님이 연출한다는 것만 듣고 갔다. 미팅 자리에서 대본을 읽으면서 한세규 역할을 처음 알게 됐다. 읽으면서도 '진짜 나쁜 놈이구나. 악질이구나' 싶더라. 캐스팅이 되고 나서 '쉽지 않은 역할이지만, 보시는 분들이 극에 몰입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제작진과는 어떻게 연이 닿았나.
김원석 감독님이 제 전작인 MBC 아침극 '이브의 사랑' 편집 영상을 보고 연락을 주셨다.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기대는 크게 하지 않고 미팅하러 갔다. 보통 미팅이 15분 정도면 끝나는데, 그날은 3시간이나 걸렸다. 쉬지 않고 5회에서 8회까지 대본을 모두 읽었거든. 그야말로 미팅이 아닌 대본리딩이었다. 끝나고 아무 별말 없어서 안 된 줄 알았는데 캐스팅 됐더라.
-'이브의 사랑'에서는 순정남으로 나왔는데, 그 작품을 보고 한세규 역을 맡겼다니 의외다.
그러게. 하하. 어떤 면을 보셨는지 저도 의아 했다. 촬영 끝날 때 쯤 한 번은 감독님이 저한테 '부잣집 아들 이미지가 있다'고 하시더라. 그 덕분인가 싶기도 하다.
-혹시 실제로도 '엄친아'인 것 아닌가. 포털 프로필에 보니 출생지도 이탈리아로 나왔던데.
'엄친아'는 좋은 집안에 좋은 스펙을 가지고 있는, 남들이 선망하는 그런 사람아닌가. 저는 좋은 스펙도 없고, 부모님도 평범한 집안에서 자라신 분들이다. 부모님이 두 분 다 예술을 공부하셨는데, 이탈리아에 유학을 가서 저를 낳으셨다. 그래서 출생지가 이탈리아이긴 하지만 3~4살 무렵까지만 있었기 때문에 기억은 없다. 이탈리아어도 못하고.(웃음)
|
'한 번 더 해피엔딩'에서는 바람둥이였고, '시그널'에서는 살인범. 최근 의도치 않게 악역이 많이 들어왔다. 이상하게 공연 할 때도 착한 역할 보다 악역을 했을 때 더 많이 좋아해 주시긴 하더라. 하하. 제가 아직 역할을 가릴 입장은 아니어서, 주어진 대로 잘 소화하고 싶은 마음이다. 어떠 역이든 내 것으로 만들어서 잘 표현하고 싶다.
-한세규라는 인물은 어떻게 분석했나.
감독님이 '생각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채 어른이 됐고, 그로인해 일반적인 사람들과 사고방식이 다른 인물'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특히 '모든 사람이 내 아래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하셨다. 장현성 선배님과 대작하는 신이 있는데, '선배라고 생각말고 깔아뭉개라'고 조언 하시더라. 선배님도 '편하게 하라'셨는데 막상 생각처럼 잘 안 돼서 애를 먹었다. 감독님이 '장현성 배우가 네 한참 밑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상황을 즐기라'고 조언했다.
-실제로 즐기게 되던가.
처음엔 어색했는데 어느 순간 몰입해서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웃음) 한세규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같은 인물. 나와 정반대다. 나는 예의를 가장 중시하고, 남에게 피해주는 것을 싫어한다. 앞에 나서기 보다는 멀리서 지켜보는 타입이다. 그래서 이 역할이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촬영이 끝난 뒤 감독님과 선배님들 모두 '고생했다'고 격려를 해주셨다.
-'시그널' 촬영하면서 그 장면이 가장 어려웠던 신이었나?
실은 찍다가 실신했던 적도 있다. 한세규가 머리채를 잡고 끌고 가고 강간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긴장을 많이 해서인지 과호흡 때문에 실신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 때문에한 시간 정도 쉬다가 촬영을 진행했다. 마지막에 취조실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최후의 발악을 해야하는 장면이라 계속 소리를 지르고 몸을 쓰다 보니까 진이 다 빠졌다. 힘들었지만 제작진과 배우들이 응원을 많이 해줘서 감동을 받기도 했다.
-실신했을 정도라니. 생각 이상으로 연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실제 성격과 달라서 몰입하는데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사실 '시그널'에서 범인으로 출연한 다른 배우들이 모두 순하고 성격도 굉장히 좋다. 아직 방송 전이었떤 11월에 모든 배우들이 같이 회식을 한 적이 있다. 우연찮게 범인으로 출연했던 배우들이 한 테이블에 모이게 됐다. '저는 1화에 나온 간호사 연쇄살인범이예요', '저는 5화에 나오는 사이코패스 변호사예요' 이런 식으로 자기소개를 하다보니 조금 이상하더라. 하하. 정말 다들 선한 인상있는데, 나중에 방송으로 보니 다들 반전이더라. 특히 1회 범인이었던 오연아 씨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눈빛 연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만큼 수사극에서 범인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다. 준비도 많이 했을 것 같은데.
한세규는 사이코패스적 성향이 있는 역할이었기에 '아메리칸 사이코'의 크리스찬 베일이나 '다크 나이트'에서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 등 작품을 많이 찾아봤다. 그 배우들이 어떤 식으로 접근했는지 참고하면서 많이 연구했다.
-일명 '금수저 망나니' 악역이 요즘 화제다. '베테랑' 조태오나 '리멤버' 남규만 연기를 본 적 있나.
'베테랑'도 재미있게 봤고, '리멤버' 얘기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일부러 찾아보지는 않았다. 나만의 방식으로 연기 해야하니까 참고를 할 수도 없는 부분이다. 무엇보다 유아인, 남궁민 연기와는 비교 될 수 있다는 생각조차 안 해 봤다. 같이 언급되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
실제로 말투 하나 행동 하나 세심하게 코치를 해 주셨다. 진짜 많이 배운 것 같다. 장면에 맞게 표정이나 억양까지도 조율해 주셔서 굉장히 인상깊었다.
-'시그널'에서 호흡한 이제훈. 조진웅, 이은우와 는'분노의 윤리학'에서도 함께 했었다.
'분노의 윤리학'에서는 단역이라 배우들과 호흡할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도 이제훈 씨가 알아봐 줘서 놀랐다. 조진웅 선배님과 이은우 배우는 영화에서 맞딱뜨리지는 않았기 때문에 서로 잘 모르지만 마음으로 반가웠다. 무엇보다 이번에 호흡이 너무 좋았다. 특히 조진웅 선배님 눈빛에 제가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덕분에 저절로 감정이 이끌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다른 배우들과 달리 김혜수와는 완전히 처음 만난 것이겠다.
TV나 영화에서만 봐서 막연히 우아하고 카리스마 있는 멋진 여배우의 이미지가 있었다. 그런데 친한 누나처럼 챙겨주시고 배려해주셔서 또 다른 느낌을 받았다. 촬영 후 다친 곳은 없는지 따뜻하게 물어봐 주시는 모습에 정말 감동을 받았다. 성품이 정말 훌륭하신 분인 것 같다.
-'시그널'에 이어 '내 딸, 금사월'에서 변호사로 등장해 화제가 됐다. 우연히 캐릭터가 겹친건다.
'시그널'을 보시고 캐스팅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시그널' 방송 후에 '내 딸, 금사월' 측에서 섭외가 오기는 했다. '시그널'을 촬영하기 2~3일 전에 연락을 받고 출연하게 됐는데, 마침 변호사 역할이라서 의상이랑 헤어스타일 등도 한세규랑 비슷하게 나온 것 같다. 대사는 많지는 않은데. 재판 장면이 중간 중간에 계속 있어서 마지막회까지는 등장할 것 같다. 아직 촬영이 더 남아 있다.
-이번에는 승률 좀 올릴 수 있을까.
이번에도 정의의 편이 아니기 때문에 이길 가능성이 낮지 않을까. 한세규의 승률은 여전히 0%일 듯하다.(웃음)
-앞으로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은지.
어린 시절부터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광팬이다. 배역마다 얼굴이 달라진다. 발걸음도 그런 느낌을 가진 배우가 되고 싶다. 이동하가 아닌 그 배역으로 기억에 오래 남아 있는, 그 역할에 완전히 빠져들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
-당분간은 한세규라는 이름으로 기억될 것 같다.
정말 좋다. 저로서는 무척 감사한 일이다. 빨리 다음 작품을 만나서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만한 새로운 모습 보여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다.
ran613@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