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 인터뷰③] 황석정·박정민·이다윗, 서로에게 궁금했던 이야기

김표향 기자

기사입력 2016-02-24 08:30


신사동=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

[스포츠조선 김표향 기자] 가까운 사이일수록 낯 간지러워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얘기들이 있다. 영화 '순정'에서 가족의 정을 나눴던 황석정, 박정민, 이다윗에게도 그런 마음 한 조각쯤 있을 것 같았다. 평소 서로에게 궁금했던 것을 물으며 마음 속 고민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오고가는 진솔한 얘기에 귀를 기울이다, 문득 이들의 만남이 '인연'이었다는 생각이 스쳤다. 연기에 대한 신념과 열정, 그리고 작품을 위한 헌신이 놀랍도록 닮았다. 이렇게 좋은 배우들을 만난 것이, 영화 '순정'에겐 최고의 행운이 아니었나 싶다.


신사동=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
-(박정민) 영화 '동주'에서 연변사투리를 해야 해서, 황석정 선배님이 출연한 '황해'를 다시 유심히 봤다. 그런데 그 영화에서 그 사투리를 가장 완벽하게 구사하는 사람이 선배님이었다. 정말 깜짝 놀랐다. 잠시 출연하는데도 장면을 완전히 장악하시더라. 연습을 많이 하는 건지, 천부적인 재능인 건지 궁금하다.

(황석정) 현지인이냐는 얘기도 많이 들었지. 꺄하하. 사실 연습을 많이 한다. 사투리가 리듬이 있고 음이 있다. 잘 캐치해야 한다. 많이 나오는 역할도 아니고, 딱 한번 등장하는데도 엄청나게 오디션을 보더라. 연변 암달러상으로 보여야 하니까. 그게 목표라 다른 생각은 아예 안 했다. 진짜 그런 사람으로 보이는지 아닌지가 중요할 뿐이다. '순정'에서도 실제 바닷마을에 사는 사람처럼 보이느냐에만 집중했다. 그것만 해낸다면 소원이 없다. 그런데 그게 너무나 어렵다. 사실 잘하지 못한다. '황해'에서는 얼굴로 먹고들어간 거지. / (박) 에이~ 그건 아닌 것 같다. 사실 흘러가버릴 수도 있는 장면인데, 모두 선배님이 만드신 거다. / (황) 나만 등장하면 다큐 찍는다고들 하더라. 연변 분들이 진짜 연변 사람이냐고도 묻고…. (황석정이 '황해' 출연 장면을 재현해 모두가 박수치며 감탄했다)

-(박) 사실 지난해 겨울에 다윗이가 많이 힘들어했다. 군대에 가려는 생각도 했다더라. 그리고 얼마 지나서 드라마 '후아유-학교 2015'와 영화 '순정'에 출연하게 됐다면서 연락이 왔는데, 목소리가 오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자신감을 찾은 것 같아서 나도 기분이 좋았다. 지금은 좀 괜찮아졌는지?

(이다윗) 이러니 내가 형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사실 지난해 겨울 힘들 때의 여파가 지금도 약간 남아 있긴 하다. 정민이 형에게 고민 털어놨을 때 못지않게 우울했다.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던 감정이라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이유도 모르게 연기에 대한 회의감이 몰려왔다. 무엇 때문에 배우라는 단어에 집착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후아유-학교 2015'와 '순정'을 연달아 찍을 때는 정말 신이 났다. 그런데 모든 촬영이 끝나자마자 잠시 일시정지됐던 고민들이 다시 시작됐다. 더 크게 확 덮쳐오더라. 감당이 안 될 정도였다. 그러다 무심결에 영화를 틀었는데 너무 재밌는 거다. 이게 재밌어서 연기를 하려고 했던 건데, 뭐가 그리 복잡했던 걸까. 마음을 다시 누그러뜨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끝까지 하자고 다짐했다.


신사동=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
-(이) 황석정 선배님과 정민이 형에게 궁금하다. 나는 연기할 때 나만의 방식이 있다. 체계적으로 연기를 배운 적이 없어서 어떻게 설명하긴 어렵지만 말이다. 누군가에겐 내 연기가 자연스러워 보일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요즘엔 왠지 밋밋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두 분은 캐릭터 자체로 존재하지 않나. '순정'에서 두 분만 나오면 기대가 된다. 연기할 때 어디에 중점을 두는지 궁금하다.

(황) 에유~ 나는 목소리로 하는 거다. 비주얼로 하고. 우리 역할 자체가 그런 거니까. / (박) 주연과 조연 차이 아닐까. 조연은 살짝 나와서 열심히 하고 가야 하고, 주연은 호흡 조절이 필요하니까.

-(이) 그렇다면 '순정'에선 어땠나?


(박) 선배님 말씀대로, '순정'에서는 그 마을 사람으로 보이는 게 제일 중요했다. 맏형으로 보여야 했고. 대사에 어떤 의미가 함축돼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않나. 막 질러대는 행동이나 말이니까. 그래서 사투리를 어떻게 더 자연스럽게 구사할까, 1991년의 시대 분위기를 어떤 디테일로 표현할까 고민했다. 그래서 해태 유니폼을 입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여러 사정 때문에 결국엔 빨간색 트레이닝복을 입게 됐다.


신사동=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
(황) 나는 우리 셋의 공통점을 지금 발견했다. 우리 셋은 배우로서 고민이 많아. 어떤 캐릭터를 만나면 번데기가 변태하듯 고통스러워한다. 서로 방식은 다르겠지만, 그 고통을 기꺼이 택하는 사람들이다. 왜냐면 계속 변하려고 하니까. 자기 이미지로 줄곧 가는 배우도 있다. 그걸 나쁘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우리 셋은 어떤 캐릭터를 만나든 해내려 하고, 그 사람이 되려고 하고, 그 몫을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과 중압감이 강한 것 같다. 사람들이 보기엔 변신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중압감에 잠도 못 자고, 자괴감에 고통스러워하고, 내 방법이 옳은가에 대해 늘 의심한다. 이 고통을 짊어지고 계속 이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싶은 순간도 많다. 우리는 아주 소심하고 예민한 사람들이다. 그런 자신을 변신시키려 내동댕이치는 인간형인 거지. 그런 사람들이 다 내면이 어둡다. 내가 또 그런 배우 중에 하나니까. 매 작품마다 누구보다도 그럴싸한 캐릭터가 되기 위해 애를 많이 쓴다. 가슴을 갈퀴로 쓸어내리는 듯한 괴로움을 겪는 거지. 배우라는 직업이 자유로워 보이지만, 어떨 땐 수행자 같다는 생각도 든다. 자기를 희생해서 새 캐릭터를 창조하면 안심하고, 그러다 다시 괴로워하고. 이 과정의 반복 같다. (박정민과 이다윗을 돌아보며) 너무 바쁘게 거대한 곳에 가려하지 마. 그냥 가기만 하면 돼. 가는 과정에 익숙해져야 한다. 빨리 온 만큼 빨리 가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다. 천천히 걸어도 괜찮다. 그게 더 많은 걸 가져다 줄 수도 있으니.

suzak@sportschosun.com

[순정 인터뷰④]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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