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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사도' 유아인, 날아간 화살 과녁을 꿰뚫다

김표향 기자

기사입력 2015-09-17 07:57


영화 '사도'의 배우 유아인이 8일 서울 삼청동의 커피숍에서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했다. 영화 '사도'는 어떤 순간에도 왕이어야 했던 아버지 영조(송강호)와 단 한 순간이라도 아들이고 싶었던 세자 사도(유아인), 역사에 기록된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를 담은 작품으로 16일 개봉했다.
삼청동=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5.09.08/

[스포츠조선 김표향 기자] 유아인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배우다. 눈을 깜박이는 찰나도 금세 과거가 돼 버리는 시간의 매정함. 그러니 쉽사리 놓쳐서도, 놓아버려서도 안 되는 것이 바로 '지금'이다. "지금에 대한 집착이 매우 강렬하다"고 스스로 말하는 유아인은, 그래서 지금의 그와 가장 닮아 있는 20대 청춘의 삶을 작품 안에서 '끈질기게' 얘기해 왔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종대는 답답한 현실에 총구를 겨눴고, '성균관 스캔들'의 걸오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변혁을 꿈꿨다. '완득이'가 공동체 안에서 화해하고 성장했다면, '밀회'의 선재는 파격을 통해 세상의 위선과 허위를 무너뜨렸다. 겉모양은 조금씩 달랐지만, 모두가 불안한 청춘이었고 그 자체는 바로 유아인 자신이었다.

"지금의 내 최대치를 끌어내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 유아인이 '지금' 맞닥뜨리고 있는 상대. 사도세자다.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숨을 거둔 비극의 주인공. 유아인은 사도세자의 용포를 입고서도 아버지로 대표되는 기성세대와 갈등하고 좌절하다 끝내 꺾여버린 청춘의 얼굴을 담아냈다. 그래서 영화 '사도'는 다른 누구도 아닌 유아인의 작품이다.

"사도세자는 제가 그동안 표현해왔고, 좋아했고, 그려보고자 했던 인물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작품의 톤이나 인물의 성질 면에서 불안한 청춘, 반항기 같은 것들의 집약체처럼 다가왔죠. 조금은 조심스러운 표현이지만, '완전한 공감대' 안에서 연기할 수 있었어요. 사도에게서 어마어마한 연민을 느꼈죠."

유아인은 연민의 다른 표현으로 '폐허'라는 단어를 꺼냈다. "저도 힘겨운 20대 초반을 지나왔고, 제 안에 축적된 에너지를 다 풀어내고 싶은 열망이 있었어요. 하지만 내 절망의 순간과 혼란, 방황이 뒤섞인 폐허를 꺼내보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하지만 배우이기 때문에 배역을 통해 그런 폐허를 끄집어낼 수 있는 것이고, 그게 바로 비극이 주는 매력 같아요. 그런 점에서 '사도'는 제게 와준 행운이에요."


유아인과 사도. 영화 속에서 두 인물은 분리할 수 없다. 그만큼 밀착력이 엄청나다.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당연시하지 않고 끊임없이 의심한다는 점에서 사도는 유아인과 무척이나 닮았다. "사도는 세자로 태어나 자신의 운명에 질문을 던진 사람이에요. 그건 기질의 문제라고 봐요.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하면 위대한 권력자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과연 한 인간으로서도 아름다울 수 있었을까요? 저도 기질적으로 질문이 많은 사람이에요. 학창 시절엔 공부를 썩 잘하는 편이었죠. 어느 날 문득 내가 왜 공부를 하고 학교를 가는 걸까, 누구의 의지인 걸까,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됐고, 거기서부터 시작된 의문이 '세상은 왜 이런 걸까?'로 이어지더군요. '왜'라고 묻기 시작하면 괴로워져요. 이유 없이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나 많잖아요. 그런 질문들이 저의 폐허를 만든 것 같아요. 사도도 마찬가지였을 테고요."

'사도'에서 유아인은 연기를 통해 하나의 세계를 완전히 부수고, 또 다른 세계로 진입한 듯하다. 그동안 우리가 알던 유아인은 더 이상 그가 아니다. 총명했던 사도가 시차를 두고 광기에 사로잡혀 일그러져가는 변화의 모습이 아프고 절절하게 다가온다. 특히 생모 영빈의 쓸쓸한 회갑연을 마친 뒤 궁궐 후원에서 행차를 이끌며 사도가 울부짖는 장면에선 그의 슬픔과 울분이 고스란히 관객을 덮쳐온다. 놀라운 연기다. "이 영화를 통틀어서 감독님이 가장 크게 칭찬해주신 장면이에요. 촬영을 마친 뒤 서울 올라가는 차 안에서 감독님의 전화도 받았어요. 그 이후로 완전한 신뢰를 보여주셨던 것 같아요. 저도 아주 기억에 남는 장면이에요."

'허공을 날아간 저 화살이 얼마나 떳떳하냐.' 기질이 자유롭고 진취적인 사도의 읊조림. 스크린 밖 유아인의 화살도 10점 만점의 과녁을 향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중앙을 꿰뚫었다'고 칭찬하는 말들 속에서 그는 자신을 경계한다. "연기력이 성장했다는 말에 대해 회의적이에요. 연기는 배우의 기질, 잠재력, 컨디션 등 다양한 요소로 완성되죠. 어쩌면 성장했다는 말이 퇴보일 수도 있어요. 어떠한 선입견도 없이 그 인물 자체로 살던 시절도 있었거든요. 사실 '완득이' 같은 연기가 저는 개인적으로 더 좋아요. 감정적 불순물이 전혀 없이 캐릭터 자체로 살아 있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저의 진지함, 천진함 등 다양한 면모를 균형감 있게 유지하고 보호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1200만 관객을 돌파한 '베테랑'에 이어 '사도'가 16일에 개봉했고 곧 이어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가 전파를 탄다. 그렇게 바야흐로 '유아인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청춘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붙들고 있다. 바로 '지금'에 대한 성찰이다. "누구보다 20대를 잘 헤아리며 산다고 자신했고, 나에게 그런 책무가 있다고 감히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저야말로 금수저를 물고 살고 있더군요. 제 또래 평범한 친구들의 상황은 생갭다 더 끔찍한 것 같아요. 그래서 청춘영화가 많이 만들어져야 해요.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고민과 일상을 담아낼 그릇이 필요합니다. 언젠가 다가올 '어른 배우의 세계'도 좋지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조금 더 보여드리고 싶어요." ●suzak@sportschosun.com


영화 '사도'의 배우 유아인이 8일 서울 삼청동의 커피숍에서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했다. 영화 '사도'는 어떤 순간에도 왕이어야 했던 아버지 영조(송강호)와 단 한 순간이라도 아들이고 싶었던 세자 사도(유아인), 역사에 기록된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를 담은 작품으로 16일 개봉했다.
삼청동=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5.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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