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화 '협녀, 칼의 기억'(이하 협녀)은 배우 이병헌을 바라보는 영화팬들의 정서를 측정해 볼 수 있는 온도계가 될 전망이다. 불명예스러운 사건 이후 처음 선보이는 한국영화 출연작. 앞서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터미네이터: 제네시스'는 출연 분량이나 역할 면에서 이병헌의 이미지가 크게 영향을 끼치진 않았다. 하지만 '협녀'는 다르다.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이 온통 이병헌에게 쏠리고 있다. 그가 이 영화에서 어떠한 활약상을 보였는지, 그리고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에 따라 이병헌의 재기 시점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온전히 이병헌에게만 초점을 맞춰보면, 이영화에서 그의 연기는 단연 압권이다. 고려를 손아귀에 넣기 위해 배신을 택한 유백 역을 맡아, 멜로와 무협, 정치투쟁까지 자신의 몫을 100% 이상 해냈다. 월소 역의 전도연과의 멜로에선 애증과 그리움에 몸을 떨고, 액션 장면에선 절제된 동작 몇 가지만으로도 스크린을 장악하는 카리스마를 발산한다. 권력욕에 사로잡힌 눈빛은 예리하게 벼린 칼날처럼 서늘하다. 그야말로 명불허전 연기력. 이병헌이 등장할 때마다 영화의 장르색이 확연히 바뀔 정도다. 특히 유백이 고려 왕을 겁박하는 장면과 월소-홍이(김고은)와의 비극적 엔딩은 이병헌의 가치와 존재감을 다시금 확인하게 하는 명장면으로 꼽을 만하다.
'협녀'는 지난해 2월 촬영을 마치고 연말 개봉할 예정이었으나 이병헌이 이른바 '50억 협박사건'에 휘말리면서 개봉이 반년 이상 연기됐다. 이병헌에게 사적 동영상을 들이밀며 금품을 요구한 협박 여성 2명은 1심에서 징역형을 받고, 2심에서는 이병헌의 처벌불원서가 참작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병헌은 협박 피해자임에도 사건의 빌미를 제공한 부적절한 행동으로 인해 대중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이병헌의 소름 돋는 연기력은 개봉 지연에 대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일정 정도 상쇄할 만큼 뛰어나다. 문제는 관객들의 반응이다. 싸늘한 민심을 돌리는 데서 나아가 다시금 그가 한국영화계에 공고히 자리매김할수 있는 토대를 이 영화를 통해 마련해야 하는데, 쉽진 않아 보인다. '협녀'의 흥행 성적은 이병헌의 다음 영화 '내부자들' 개봉 시기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 최악의 경우 이병헌의 재기가 더 미뤄질 수도 있다. '협녀'와 이병헌은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영화는 13일 개봉한다.
suzak@sportschosun.com
[
※보도자료 및 기사제보 news@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