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되살린 명의들, 게임계 '허준' 열전

이덕규 기자

기사입력 2015-08-04 16:29


1999년 방영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허준'을 기억하는가? 당시 한국과 중국의 의서를 참고하고 정리해 '동의보감'을 편찬한 것으로 잘 알려진 허준은 드라마에서는 침 몇 방으로 환자들의 병을 고치는 명의로 등장해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명의 하면 허준이 먼저 떠오를 정도다.

게임에도 허준과 같은 명의들이 있다. 게임 산업이 흐름을 놓치면 실패하기 쉬운 흥행 산업인 만큼, 한 번 망하면 재기가 어렵다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지금 소개할 게임계 허준들은 만들어지지 못 할 뻔한 게임을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게임이 망할지도 모르는 위기를 기회로 바꿔 성공했다. 심지어 죽어버린 시리즈를 다시 살리는 기적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럼 지금부터 게임계 허준들을 만나보도록 하자.

랙 때문에 세상에 나오지 못 할 뻔한 '피파온라인'을 살린 정상원

온라인 축구 게임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피파온라인' 시리즈는 현재 띵소프트 대표이자 넥슨 신규개발총괄 부사장에 있는 정상원이 없었으면 세상에 나올 수 없었다.


정상원 띵소프트 대표 겸 넥슨 신규개발총괄 부사장


최초의 '피파온라인'은 EA가 '피파 2005'를 기반으로 자체 개발한 게임이다. 하지만 큰 문제에 부딪혔는데 바로 '랙(Lag)'이다. 실시간 축구 게임이기 때문에 약간의 랙이라도 재미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었지만, EA가 만들던 '피파온라인'은 게임을 즐길 수 없을 정도로 랙이 심각했다. 결국, 랙을 해결하지 못한 EA는 그대로 개발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2년여 동안 잠들어 있던 '피파온라인'은 당시 정상원이 재직 중이던 네오위즈와의 합작을 통해 다시금 부활하게 된다. 정상원이 이끄는 개발팀은 EA가 프로젝트를 포기한 원인인 랙 현상을 잡는 데 기상천외한 방법을 사용했다. 온라인게임인 이상 존재할 수 밖에 없는 랙을 억지로 없애려고 하는 대신, '네트워크 딜레이'라는 기술을 활용해 일정한 수준으로 맞춘 것이다. 덕분에 2006년 4월 진행됐던 '피파온라인'의 1차 CBT에서는 랙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는 유저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가장 큰 문제였던 랙을 잡고 난 뒤에는 순조로운 개발이 이어졌고, 2006년 독일 월드컵 개최에 맞춰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후 시리즈를 거듭하며 인기 온라인게임이 된 것은 우리가 모두 아는 이야기.




10년간 잠들어있던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를 되살린 '오노 요시노리'

최근 '스트리트 파이터5'를 발표하며 화제의 주인공이 된 캡콤의 프로듀서 '오노 요시노리'는 '스트리트 파이터3: 서드 스크라이크' 이후로 10년간 잠들어있던 시리즈를 다시 되살린 사람이다.


캡콤 오노 요시노리 PD


1999년 출시된 '스트리트 파이터3: 서드 스트라이크'는 개발진이 모든 역량을 집중해 만든 게임이었지만, 대전격투게임과 아케이드 시장의 쇠퇴, 하나의 시리즈로 확장팩을 내며 우려먹는 캡콤의 전통 아닌 전통이 비판을 받으며 흥행에 참패한다. 그 때문에 캡콤 내부에서는 '스트리트 파이터는 돈이 안 된다'라는 의식이 팽배해졌고, 이후로 약 10년간 새로운 시리즈가 나오는 일이 없었다.

그래도 오노 요시노리 PD는 포기하지 않았다. 스트리트 파이터의 열성팬이기도 한 그는, 그런 자신이 스트리트 파이터를 끝내는 데 일조했다는 일종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죄책감은 그가 다양한 경력을 쌓아갈 때도 계속 남아있었고, 그가 프로듀서로 승진하자마자 스트리트 파이터4의 기획서를 쓰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캡콤도 한결같았다. 여전히 돈이 안 되는 죽은 프랜차이즈라며 거절했다. 오노 요시노리 PD는 다른 방법을 쓰기로 했다. 기자와 팬들이 캡콤을 압박하도록 만든 것이다. 오노 요시노리 PD는 만나는 기자마다 "캡콤에 메시지를 전하는 건 당신들 책임이다. 나는 힘이 없다."라고 말하며 계속 시리즈 신작에 대한 소리를 내달라고 했다.

그의 계획은 성공했다. 점점 많아지는 새로운 스트리트 파이터에 대한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던 캡콤은 오노 요시노리 PD에게 프로토타입을 만들 수 있는 정도의 예산을 주게 된다. 그렇다고 캡콤이 협조적으로 돌아선 것은 아니었다. 캡콤은 오노 요시노리 PD에게 '여기에 들어갈 돈이면 다른 프랜차이즈 게임을 몇 개나 만들 수 있는지 아느냐'며 질책했고, 출시일까지 일절의 도움도 주지 않았다.


스트리트 파이터4


그런 어려움 속에 등장한 스트리트 파이터4는 캡콤의 예상과 달리 대전격투게임의 부흥을 일으킬 정도로 엄청난 흥행을 했다. 콘솔판은 2009년 기준 전 세계 250만 장을 돌파했으며, 이후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4', '울트라 스트리트 파이터4'로 시리즈를 이어가며 5년 이상 캡콤의 주요 시리즈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2014년 말, '스트리트 파이터5'가 공개되며 시리즈의 완전한 부활을 알렸다.

오노 요시노리 PD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는 뱀파이어 시리즈, 사립저스티스학원 시리즈 등과 함께 캡콤의 죽은 대전격투게임 프랜차이즈로 남지 않았을까?


스트리트 파이터5


파이널판타지로써도, MMORPG로써도 문제작이던 게임을 다시 창조한 '요시다 나오키'

다음 주인공은 글로벌 온라인게임 순위 2위, 전 세계 600만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인기 MMORPG '파이널판타지14: 신생 에오르제아(이하 파이널판타지14)'의 프로듀서 '요시다 나오키'다. 그는 '망한 게임'이었던 '파이널판타지14(이하 파이널판타지14 오리지널)'를 '다시 만들어' 멋지게 성공하게 했다.


스퀘어에닉스 '파이널판타지14' 총괄 프로듀서 겸 디렉터 요시다 나오키 PD


파이널판타지14 오리지널은 여러 가지로 문제작이었다. MMORPG 20년 경력, 스퀘어에닉스에 10년째 재직 중이며 파이널판타지 팬인 요시다 나오키 PD의 표현을 빌리면, 파이널판타지14 오리지널은 MMORPG로써도 문제작이었지만, 파이널판타지 시리즈로써는 경악에 가까운 게임이었다. 무려 초코보가 없는 파이널판타지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요시다 나오키 PD는 '파이널판타지14'를 만들기 위해 원작에 반드시 등장해야 하는 요소부터 고민했다. 초코보와 모그리 같은 마스코트 캐릭터부터 훌륭한 클라이맥스가 있는 독자적인 스토리와 음악, 이펙트, 잡 명칭 등 세세한 부분도 신경 썼다. 누가 봐도 '파이널판타지'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파이널판타지의 마스코트격 캐릭터인 '초코보'와 '모그리'


또한, 그는 자신의 MMORPG 경력을 충분히 발휘해 콘텐츠를 채워나갔다. 단순히 사람만 모으는 파티 매칭이 아니라 퀘스트에 적당한 클래스를 구성해주는 '임무찾기 시스템', 힐러, 탱커와 같은 소수 클래스의 선택을 강제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선택하도록 만드는 파티 시스템이 대표적이며, 'PVP가 없는 MMORPG가 재미있을 리 없다.'는 생각에 따라 파이널판타지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PVP 콘텐츠로 추가했다.

서비스 초기부터 유저들과 소통하는 등 운영도 빠뜨리지 않는다. 요시다 나오키 PD가 MMORPG를 오래 즐겨온 유저라지만, 혼자서 모든 유저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는 다양한 방법으로 유저들의 이야기를 듣고 게임에 반영한다. 작년 지스타 2014에서는 직접 방한해 한국 유저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8월 14일부터 실시하는 한국 서비스에서도 운영 기조는 그대로 남아 개발자들이 유저들과 직접 소통하는 레터라이브를 진행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다시 태어나 전 세계를 열광시킨 파이널판타지14가 한국에서도 명성을 이어갈 수 있을지 기대해보자.

<게임어바웃 문의식mc8466@gameabou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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