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가왕'이 스포일러에 대처하는 법 "MBC 사장도 방청 불가"

김표향 기자

기사입력 2015-06-26 06:05


민철기 PD. 사진제공=MBC

사진캡처=MBC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도 이렇게 답답하진 않았을 거다. 시청자들의 찬탄이 쏟아지고 온라인이 들끓어도 정작 당사자는 정체를 꼭꼭 숨긴 채 꿀 먹은 벙어리가 돼야 한다. 사소한 말실수도 절대 엄금. MBC '일밤-복면가왕' 출연 가수들의 말 못할 고민이자 행복한 비명이다.

'복면가왕' 방송이 끝나면 시청자들은 복면가수들의 정체를 추리하느라 바빠진다. 음색이나 노래할 때의 습관, 인상착의 등으로 유추해 후보군이 좁혀지고, 실제로 몇몇 경우에선 이 추측이 맞아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네티즌 수사대'의 날카로운 추리가 아닌 프로그램 내부에서의 스포일러로 복면가수의 정체가 밝혀진 적은 한번도 없다. 최근에 '복면가왕'의 방송 영상을 독점 공개하는 음원사이트 벅스뮤직이 방송이 끝나기도 전에 '어머니는 자외선이 싫다고 하셨어'의 정체가 에이핑크 정은지라는 것을 밝혀 논란이 된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하지만 이 또한 현장 스포일러는 아니다.

이쯤 되면 기적에 가까운 '철통 보안'이라 할 수 있다. 제작진과 출연 가수들, 또 가수의 관계자들, 일반인 청중 평가단까지 입에 자물쇠를 채우고 함구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MBC '나는 가수다'가 스포일러로 몸살을 앓았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이례적이다.

그렇다면 '복면가왕'은 어떤 방식으로 스포일러에 대처하고 있을까. 한마디로 설명하면 '물 샐 틈 없는 사전 통제'다. 사소한 스포일러 하나라도 흘러나가면 방송 전체에 치명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면가왕'은 일반인 청중 평가단 신청을 받지 않는다. 공식 홈페이지에는 방청 신청이 쇄도하지만, 제작진은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런 방식을 택했다.

'복면가왕' 연출자 민철기 PD는 "외부에서 방청 요청이 들어오는 것은 물론이고 사내 방청도 엄격하게 막는다. 이건 MBC 사장님이 부탁해도 안 된다. 저희 어머니나 가족들이 부탁해도 냉정하게 거절한다"고 못 박았다. 일반인 청중 평가단 88명을 선정하는 방식이나 기준 등에 대해선 "영업비밀이니 더 이상 묻지 말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며 "다만 공정한 평가를 위해 청중 평가단의 직업 구성을 다양화하고 연령대 및 성별의 비율을 맞추려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제작진은 녹화에 앞서 청중 평가단에게 보안을 지켜달라고 읍소한다. 제작진이 청중을 강제로 통제할 수단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개개인의 선의와 협조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호부호형을 못하는 홍길동의 고뇌를 겪는 건 청충 평가단도 예외가 아닌 셈이다. 민철기 PD는 "다행히도 지금까지는 청중 평가단이 프로그램의 취지에 공감해 주고 비밀 유지에 적극 협조해 주셔서 스포일러 없이 프로그램이 잘 진행돼 왔다"며 "청중 평가단은 '복면가왕'을 함께 만들어 주시는 분들이다. 특별한 감사를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제작진은 방송을 통해 복면가수가 가면을 벗는 순간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다. 가발과 중저음 목소리로 정체를 감춘 홍석천, 여장까지 감행한 백청강, 음색이 전혀 노출되지 않았던 현쥬니 등 시청자들을 경악하게 했던 복면가수들의 무대에선 혹시라도 사전에 정체가 유출돼 김이 샐까봐 제작진 모두 조마조마했다는 설명. 민철기 PD는 "인터넷에 올라온 네티즌 반응을 살펴보면, 이것이 복면가수의 어떤 특징을 보고 정체를 유추한 것인지, 아니면 현장 스포일러인지 짐작할 수 있는데 아직까지 현장 스포일러는 없었다"고 거듭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청중 평가단뿐만 아니라 출연 가수들에 대한 관리도 엄격하다. '복면가수'에 출연한다는 소문이 조금이라도 새어 나가면 그 가수의 출연을 취소한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몇 번 있었다. 과거 김구라도 JTBC '썰전'에서 한 뮤지컬 배우가 자신에게 출연 사실을 알렸다가 출연이 무산된 일을 밝히기도 했다. 민철기 PD는 "방송 관계자들에게 낯이 익은 매니저를 통해 가수의 정체가 노출될 수도 있기 때문에 녹화할 때는 그 매니저가 가급적 방송국에 오지 못하게 한다"고 전했다.

시청자들은 복면가수가 누구인지 궁금해하며 일주일을 즐겁게 기다리지만, 제작진과 출연 가수들에겐 피가 마르는 시간이다. 연거푸 가왕이 될 경우 수개월간 가면을 못 벗을 수도 있어, 그 시간은 더 길어진다. 마치 벌칙 같은 특혜다. 1, 2대 가왕에 오른 '황금락카 두통썼네'의 루나는 3월에 녹화를 시작해 5월 중순이 돼서야 정체를 밝힐 수 있었다. '황금락카 두통썼네'는 가왕 자리에 앉아서도 "엄마도 모르기 때문에 입이 간질거리고 있다. 정말 자랑하고 싶다. 입이 조금 가벼운 편이라 정말 얘기하고 싶은데 참고 있다"고 '애환'을 토로했다. 4, 5, 6대 가왕을 석권하며 장기 집권에 들어간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 또한 "어디서 나라고 말도 못하고, 생활이 어렵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시청자들은 호기심과 기대감을 갖고 복면가수들의 감동적인 무대와 추리의 재미를 즐길 수 있게 됐다. 그러니 복면가수들이 더 굳건히 인내력을 발휘해주길 바랄 뿐이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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