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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모자 판결] 유명인 '퍼블리시티권' 논란, 무엇이 문제인가?

정현석 기자

기사입력 2015-02-16 08:40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영화 '강남 1970'(감독 유하) VIP시사회가 열렸다. 수지가 참석했다.

영화 '강남 1970'은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를 잇는 유하 감독의 거리 3부작 완결편이다. 1970년대 서울, 개발이 시작되던 강남땅을 둘러싼 두 남자의 욕망과 의리, 배신을 그린 액션 드라마로 김래원과 이민호의 만남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21일 개봉한다.
김보라 기자 boradori@sportschosun.com/2015.01.20/

법은 사회 현상을 반영한다. 그런데 속도가 다르다. 그 차이가 때론 분쟁을 부른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관련 산업이 큰 규모로 성장하면서 '퍼블리시티권(the right of publicity)' 관련 분쟁이 속출하고 있다. 수지가 한 인터넷 쇼핑몰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 배상 소송도 마찬가지. 문제가 된 '수지모자'의 퍼블리시티권 침해 여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불인정'이었다. 15일 서울중앙지법(민사32단독 이민수 판사)은 미쓰에이 수지(본명 배수지)가 한 인터넷 쇼핑몰을 상대로 "허락없이 이름과 사진을 써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했다"며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 쇼핑몰은 2011년 9월 한 포털사이트에 '수지모자'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자사의 홈페이지 주소가 상단에 뜨도록 하는 키워드검색광고 계약을 하고 지난해 2월까지 '수지모자'를 노출했다. 또 2013년에는 자사 홈페이지에 '매체인터뷰' '공항패션' 등 문구와 함께 배씨의 사진 3장을 게시했다. 하지만, 법원은 사람의 얼굴이나 이름을 상업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하는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의 성명, 초상 등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리는 성명권, 초상권에 당연히 포함되고, 별도로 퍼블리시티권이라는 개념을 인정할 필요가 없다"며 "초상권, 성명권이 침해됐다는 사정만으로 원고가 다른 사람과 초상, 성명 사용계약을 체결하지 못했거나 기존에 체결된 계약이 해지됐음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재산상 손해를 입었다고 볼 수 없다"고 청구 기각 취지를 설명했다.

이번 판결은 예상되는 향후 유사 소송 제기 가능성과 그 결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통신과 미디어 기술의 비약적 발전 속에 유명인의 명성이 곧 상업적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시점. '수지모자' 판결을 계기로 유명인 퍼블리시티권과 관련한 논란의 핵심을 짚어본다.

왜, 무엇이 논란인가?

유명인의 퍼블리시티권. 1950년대 미국 법원이 처음으로 인정해 영미법계에서 활성화된 재산권이다. 개인이 자신의 이름이나 사진 등을 돈을 받고 팔고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다. 이 권리를 인정할 경우 유명인이 자신의 초상이나 이름을 도용당했을 때 인격권을 근거로 하는 초상권 외에 재산권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며 실질적인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적용 사례가 조금 애매하다. 왜? 문제는 세가지다. 우선 법 조항 상 명문 규정이 없다. 기존 판례와 소송에서 제기된 개별 사안의 특수성을 고려해 판결이 내려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개별 판결 결과는 엇갈린다. 지난해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원더걸스, 배용준 등 연예인 55명이 포털사이트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법원은 기각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지난 2007년 배드민턴 전 국가대표 선수 박주봉 씨가 계약기간 만료 후에도 자신의 이름과 초상을 계속 사용한 스포츠용품 업체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승소했다. 이후 2008년 골퍼 최경주가 우리은행을 상대로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했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가 제시한 1000만 원에 합의조정안에 양측 모두가 합의하면서 그 해 11월 마무리됐다.

둘째, 대법원 확정 판결이 없다. 퍼블리시티권과 관련한 대법원 판결은 아직 단 한번도 나온 적이 없다. 헌법에 규정된 최고(最高)이자 최종심 판결기관인 대법원의 판결은 여타 하급심의 판단 기준이 됨과 동시에 유사 소송 시 구속력을 가진다. 하지만 아직까지 퍼블리시티권에 대한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나온 적이 없기 때문에 하급 판결기관들은 사안 별로 엇갈린 결과를 내놓고 있다.

셋째, 인정 범위가 애매하다. 법의 적용 범위는 명확해야 한다. 하지만 퍼블리시티권은 그 특성상 범위를 한정하기가 쉽지 않다. 많은 법조인들은 "퍼블리시티권을 한계 없이 인정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아 오히려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기 힘들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또한 "만약 한계 없이 인정할 경우 유명인이 잠깐 들렀던 사실을 매장 내 홍보로 활용하고 있는 음식점 등 수많은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소송에 내몰리게 될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해외 사례는?

퍼블리시티권 적용에는 문화적 차이도 영향을 미친다. 역사적으로 계약 개념이 발달한 영미권에서는 실제적 적용에 적극적이다. 특히 개인의 권리와 재산권 행사에 적극적인 미국의 경우 인격권적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재산권적 측면에서 퍼블리시티권을 비교적 폭넓게 인정해 유명인의 초상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시장규모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연예, 문화, 스포츠 관련 산업이 큰 규모로 성장하기 이전까지 퍼블리시티권은 생소한 개념이었다. 최근 관련 소송이 부쩍 증가하고 있는 것은 관련 산업 규모의 폭발적 증가세와 무관치 않다. 연예, 문화, 스포츠 시장의 향후 지속적 성장 가능성은 누구나 쉽게 예상되는 터. 퍼블리시티권에 대한 활발한 논의와 명확한 기준이 필요한 이유다.

일찌감치 연예계와 프로스포츠가 막대한 자본을 움직이는 큰 시장으로 발전한 미국에서는 자연스럽게 퍼블리시티권에 대한 사례가 많았고 그만큼 기준이 명확한 편이다. 하지만 미국 조차 그 인정 범위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한 법조인은 "미국에서조차 유명인의 배타적 권리를 지나치게 폭넓게 인정할 경우 많은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와 충돌할 소지가 있다는 점에 대한 고민이 있다. 그런 측면에서 퍼블리시티권을 보다 엄격하게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우리처럼 명문 규정이 없는 일본은 지난 2012년 대법원에 해당하는 최고재판소가 "유명인에게는 자신의 이름이나 사진 등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무단 사용되지 못하게 할 권리인 '퍼블리시티권'이 있다"는 첫 판결을 내놓은 적이 있다. 하지만 판결에서 '퍼블리시티권 침해는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도록 제한적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 무단으로 유명인의 초상이나 성명을 상품 광고에 활용했을 때만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했다고 봐야 하고, 보도 목적으로 사진을 사용한 것은 권리침해가 아니'라며 한계를 명확히 한 바 있다.

해결책이 있을까?

관련 산업의 성장과 함께 앞으로 유사 분쟁은 더욱 늘어날 터. 하지만 개별 판결은 여전히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가 뻔히 보이는 상황임에도 뚜렷한 해법이 없는 현실. 해결책이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구체적 규정을 포함한 입법이다. '법은 사회현상을 담아야 한다'는 취지와 무분별한 소송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감안할 때 명문화된 법 조항 신설에 대한 입법부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성문법이 존재하느냐 여부는 향후 판결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 실제 지난 2013년 걸그룹 '소녀시대' 멤버 제시카와 영화배우 수애가 최근 강남의 한 치과를 상대로 퍼블리시티권 침해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재판부는 "성문법주의를 취하는 우리나라에서 실정법이나 확립된 관습법 등의 근거 없이 필요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기는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물론 입법 과정은 결코 쉽지만은 않을 전망. 특정해야 할 범위 자체가 논란의 여지가 많은데다 문제의 사안 자체가 시시각각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 조항 속에 분란의 소지를 포괄적으로 아우르며 그 범위를 특정하기란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성문법의 부재가 길어질 경우 또 다른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은 대법원의 판단이다. 항소가 이어져 대법원까지 사건이 이어져야 가능한 케이스. 대법원 측은 이미 "하급심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에 대법원에 사건이 올라오면 전원합의체에서 판결을 정리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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