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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물의 홍수, 창작의 영역을 위협한다. 작가의 창작 영역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오는 11월 23일 첫 방송을 앞둔 OCN '닥터 프로스트'도 지난 2011년 연재돼 독자만화대상 온라인만화상을 수상한 이종범 작가의 동명 웹툰이 원작이다. 현빈이 안방극장 복귀작으로 선택한 SBS 드라마 '하이드 지킬, 나'의 원작은 이충호 작가의 웹툰. 대학생들의 고민과 사랑을 담은 웹툰 '치즈인더트랩'도 현재 드라마화 작업 중이다.
tvN '라이어 게임'과 KBS2 '내일도 칸타빌레'는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노다메 칸타빌레'는 한국으로 오면서 '내일도 칸타빌레'로 이름을 바꿨다. 이들 두 작품은 일본에서 만화로 출간된 이후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크게 성공했다. 독자와 시청자들로부터 두 번이나 인정받은 인기 콘텐츠인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방송가에선 검증된 원작이 있거나 막장 요소가 있는 드라마만 편성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농담 섞인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원작은 막장만큼이나 실패 확률을 낮춰주는 일종의 안전장치로 통한다. 방송사와 제작사들은 드라마 스토리 개발과 투자는 등한시하고 원작을 찾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드라마 제작의 중요 역할을 담당해야 할 작가들이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사실이다. 창작자로서 자신만의 독창적 콘텐츠를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순수 창작물 발굴을 전제로 하던 극본 공모도 아예 원작을 지정해놓고 실시하는 경우까지 생겨났다. SBS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의 제작사 에이스토리는 네 번째 극본 공모를 하면서 웹툰 2편을 원작으로 제시했다. 나아가 작가들에게 최후의 보루가 돼야 할 단막극도 안심할 수 없다. MBC 드라마 페스티벌의 경우, 본격적으로 시리즈를 시작한 지난 19일에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한 2부작 '포틴'을 편성했다. 신인작가 발굴을 목표로 한 드라마 페스티벌의 기획의도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MBC 관계자는 "지금은 퇴사한 연출자 이윤정 PD가 지난 해 만든 드라마인데 당시 편성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올해 드라마 페스티벌에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한 드라마 관계자는 "이제 작가들은 드라마 극본을 집필할 때 참신한 에피소드와 캐릭터 개발보다는 원작의 각색에 더 주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작가들이 각색가로 '전업 아닌 전업'을 해야 할지 모른다"며 안타까워 했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