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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있는 삶을 위해 이 가을 펼치고 싶은 책, '삶은, 풍경이라는 거짓말'

나성률 기자

기사입력 2014-10-19 21:08


LP 커버가 들려주는 '생활의 발견'을 담은 책 '레코드를 통해 어렴풋이'의 작가 김기연이 '삶의 발견'이 담긴 책을 들고서 이 가을 다시 찾아왔다. "당신, 대체 뭐하는 사람이오?"라는 질문에 우물쭈물하는 그를 두고 사진가 윤광준이 "잡다한 것을 다 하는 '잡가(雜家)'라고 불러야겠다"고 한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만은 않는다.

카피라이터로 잔뼈가 굵은 그지만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 위해 잘 포장된 가공품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때로 캘리그래피 작업을 하거나 사진을 찍어 전시를 하지만, 또렷한 작가주의를 내세우지도 않는다. 오고 가다 만난 '사물과 사람'의 내면이나 외면을 둘러싸고 있는 관계를 시선을 따라 옮겨놓을 뿐이다. 가타부타 말이 없고, 요란스럽지도 않다. 그저 어렴풋한 삶 안팎에 담긴 모습을 눈으로 보고, 손을 빌려 사진과 종이에 담아서 침묵의 언어로 나직이 말을 걸 따름이다.

이번에 그가 내놓은 '삶은, 풍경이라는 거짓말'도 그렇다. 자신의 속내를 분명한 어조로 내세우기보다는 독자의 몫으로 가만히 돌린다. 싱거운 듯싶지만 자꾸 눈이 가게 된다. 어느 조용한 공간으로 들어가 천천히 책장을 펼치고 싶게 만든다.

아등바등 지나쳐 가는 우리의 삶이란 무엇일까? 가을이 오면 늘 이런 질문 하나쯤 마음에 품게 된다. 보여지는 것 그대로가 아니라, 보고 싶은 것을 찾아 떠난 풍경의 섭섭함 때문일까.

언제부터인가 여행지에서 마주치는 풍광에 여백이 없어졌다. 그 자리를 대신해 꼭 들러야 할 맛집과 명소만이 가득하다. 떠나기 전부터 머릿속에 빡빡한 일정을 채우고 찾아간 여행지가 평온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 삶도 그와 다르지 않다.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따라 온종일 바삐 걷지만, 어느 날 되돌아보면 텅 빈 삶이 놓여 있음을 발견할 때가 있다.

거짓말처럼 되돌아가고 싶은 날의 풍경이 우리 삶에 있기나 할까? 가을이 오면 유독 생각이 깊어진다. 책 한 권을 벗 삼아 홀로 길을 떠나고 싶을 때, 김기연의 산문집 '삶은, 풍경이란 거짓말'은 은은하게 곁을 채울 듯하다.

"나는 여행을 다녔다기보다는 예상할 수 없는 것들과 마주 서서 언어를 생략한 대화를 나눔으로써, 내 삶을 둘러싼 것들에 대해 사소하게 가만히 들여다볼 마음을 얻었다. 그 가운데서도 먼저 내 눈에 띈 것은 아픈 사랑과 마음들이었다"는 작가의 말은 빡빡한 하루를 잘 견디고 있는 우리들에게 전하는 위안이자 격려다.(김기연 지음 / 맥스미디어 / 256쪽 / 1만3800원)


김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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