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방송평] '압구정 백야', 막장인 듯 막장 아닌 막장 같은 드라마

김표향 기자

기사입력 2014-10-07 12:28


사진제공=MBC

클래스는 영원하다. 불과 30여 분 남짓, 첫 방송만으로도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이토록 강렬하게 드러낼 수 있다니. 특유의 설명적 대사와 음의 높낮이 없는 대화톤, 분노를 유발하는 안하무인 여주인공, 그리고 슬그머니 끼워넣은 무속 코드까지. 역시 '막장극의 대모' 임성한 작가다웠다.

6일 첫 방송된 MBC '압구정 백야'는 시작부터 비범했다. 여주인공 백야(박하나)와 선지(백옥담), 가영(김은정)은 각각 비구니, 기생, 만신(무녀) 차림을 하고 나이트클럽을 찾았다. 술 취한 선지는 처음 만난 장무엄(송원근)에게 키스를 퍼붓고, 이 모습을 오해한 백야는 장무엄의 뺨을 때리고 말다툼을 벌인다.

이후 친오빠 영준(심형탁)을 만난 백야는 올케 효경(금단비)의 뒷담화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올케가 게으르고 아버지 제사상을 부실하게 차렸다고 못마땅해하더니 "차에 불이 나면 누구를 먼저 구할 거냐"는 희한한 질문까지 했다. 보안업체에서 일하는 영준이 급한 연락을 받고 떠난 뒤엔 만삭인 올케에게 전화해 데리러 나오라고 하고,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골라놓고서 올케더러 계산하라고 뻔뻔하게 떠밀더니 지갑을 안 가져왔다는 말에 구박을 했다. 집에선 올케 효경이 남편 영준과 통화하며 "오빠"라고 부르는 것을 트집 잡아서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지 말라" "잘못된 건 시정해라"라며 한바탕 쏘아대기도 했다. 비상식적으로 안하무인인 백야는 세간의 유행어인 '암유녀(암을 유발하는 여자)'를 갖다 붙여도 될 만큼 밉상 캐릭터였다.

백야 캐릭터를 제외하면 첫 회에선 막장의 징후는 뚜렷하게 드러나진 않았다. 임성한 작가의 전작들에 비하면 무난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평범함 속에 복선처럼 깔아놓은 비범한 설정들은 감춰지지 않았다. 한마디로, 막장인 듯 막장 아닌 막장 같은 드라마였다.

비구니, 만신, 기생 복장으로 등장한 백야와 친구들의 모습은 물론이고, 백야가 영준에게 "아버지 혼이 없다고 생각하냐, 정성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감동을 받아서 좋은 아이를 태어나게 해준다"는 대사는 임성한 작가 특유의 무속 코드를 떠올리게 했다.

전작 '오로라 공주'에서 논란이 됐던 '암세포도 생명이다'라는 대사는 "암세포 같은 것들"이라는 백야의 대사로 패러디됐다. 심지어 이 말에 영준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이기까지 했다.

장무엄도 형인 장화엄(강은탁)을 걱정하는 어머니 정애(박혜숙)에게 "형이 남자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다"고 동성애를 들먹이며 "게이엔 세 종류가 있다.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렌스젠더를 아울러 퀴어라고 부른다. 동성애자와 양성애자도 상남자 포스다, 겉으로 봐선 모른다"고 한참이나 설명했다. 장무엄 역의 송원근이 전작 '오로라 공주'에서 동성애자였다가 절에서 불공을 드린 뒤에 이성애자가 되는 나타샤 역으로 출연했다는 걸 염두에 둔다면 결코 가볍게 넘길 만한 대사는 아니었다.

또한 올케와 말다툼을 벌인 백야가 서러워하면서 어머니의 젊은 시절 사진을 들여다보는 장면 이후에 그 사진의 주인공인 서은하(이보희)가 조장훈(한진희)과 행복해하는 모습이 등장해 '출생의 비밀'을 의심케 했다.

임성한 작가는 또 한번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첫 방송 시청률은 9.9%(닐슨코리아 전국기준). 방송 이후 포털 사이트 검색어에 하루 종일 오르내렸다. 제작진은 사전에 논란을 막고자 제작발표회도 열지 않고 최대한 조용하게 방송을 시작했지만, 앞으로 논란이 없을 거라 보는 시청자들은 별로 없는 듯하다. '왔다 장보리'의 히트로 막장에 대한 거부감이 현저히 낮아진 요즘, '압구정 백야'가 차원이 다른 '막장의 격'을 보여줄지 관심이 모아진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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