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천하 제1화] 유공과 강 장군의 두룡천하

김겨울 기자

기사입력 2014-09-04 05:22


'무릇 예능천하를 읽지 않은 자와는 '무도'를 논할 수 없다.' 지상파 채널은 물론, 신흥 세력으로 떠오른 종편과 케이블 채널까지 현대 예능은 춘추전국시대. 시청률 경쟁이 과열될수록 예능인들의 삶은 더 치열해지는 법. 난세가 영웅을 낳는다고 했던가. 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유,강,신,규,재를 비롯, 전,유,성에 이르기까지 흥망성쇠로 본 예능 영웅담을 펼쳐본다.


경인년 12월, 유공과 강 장군 두 마리의 용이 천하를 호령하고 있을 때였다. 그 기운이 세상을 휘감던 시절, 후세 사람들은 이 시기를 전후로 여섯 해를 더해 '두룡천하'라 불렀다. 당시 예능계에서 입신양명 하려는 자라면 마땅히 두 룡의 눈에 들어야 했다. 이 둘을 우두머리로 섬기는 자들이 늘어나면서 예능계는 서서히 유당파와 강당파로 나눠지기도 했다.

유공과 강 장군은 종일 지치지 않는 체력과 끈기로 장시간 촬영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는 리얼리티 예능이 꽃피울 수 있는 토대 마련에 기여했다. 당시만해도 촬영 시간이 서너 시간을 넘지 않을 때였다. 여기에 유려한 말 재주와 넉넉한 인품, 카리스마까지 겸비해 따르는 이가 무척 많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생김새나 성격은 판이하게 달랐다. '예능 인물지'에 따르면 예능인의 성격은 '구징'으로 나타난다. 즉, 외부로 드러난 9가지의 징표란 뜻으로 예능인의 타고난 성정과 자질은 9가지 형태로 드러난다고 하였다. 균형과 치우침의 근본은 시선으로 결정되고, 총명과 우매는 리액션, 성실함과 게으름은 근육, 강함과 약함은 캐릭터, 단정함과 흐트러짐은 옷 매무새, 간사함과 정직함은 낯빛, 느긋함과 조급함은 말투, 화려한 언변과 우둔한 언변은 입 모양새, 통솔의 힘은 제스쳐로 결정된다고 하였다. 이 아홉가지를 잘 관찰하면 예능인으로서 자질과 사려깊음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

유공은 쳐진 눈꼬리와 가녀린 자태로 상대방을 무장해제 시키면서도 고른 시선으로 포용성을 갖췄다. 무엇보다 남들보다 세 치 튀어나온 입은 그의 화려한 언변을 짐작케 한다. 강 장군은 이와는 반대로 최소 일곱자는 돼보이는 덩치와 쩌렁쩌렁 울리는 말투, 앉은 자리에서 소고기 10여 인분은 먹어칠 수 있는 거대한 식성으로 보는 이들을 몰입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정통한 이의 말을 빌리자면, 이 같은 차이는 진행 방식에도 드러났다. 유공은 모든 이들에게 고루 마이크를 넘겨주는 배려의 진행이 몸에 배있다면, 강 장군은 무리들 중에서 으뜸인 자를 골라내 힘을 실어주는 선택에 능한 자였다. 이 둘의 성격의 장·단점에 대해서는 앞으로 하나씩 구체적으로 짚어가도록 하겠다.

여하튼 유공과 강 장군은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아, 한 해 동안 최고의 예능인으로 선정되는 '대상'을 무려 일곱 해 동안이나 주거니 받거니 했다. 무릇 예능인으로 태어나 이 상을 받는다는 것은 예능계에서 최고의 권력에 올랐다는 영광일 뿐 아니라, 대대손손 두고두고 명예롭게 회자될만 한 일이다. 그런 영예를 무려 일곱 해 동안이나 누렸으니 두룡천하기로 불릴 만 하다.

허나, 권불십년이라고 하였다. 두룡천하는 여덟 해를 넘지 못하고 무너졌다.


신묘년 9월, 강 장군에게 위기가 닥쳤다. 강 장군은 부도덕한 일에 휩싸이면서 스스로 낙향하여 자숙의 시간을 보냈다. 최고의 찬사와 영광의 구름 위에 머물던 시기였다. 당시 강 장군의 낙향을 반대했던 측근들의 말을 빌리자면, 그에게는 우산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가 오니 비를 맞았다고 하더라. 어려서부터 최선을 다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소박하면서 진정한 승리를 원한 자 였기에 한 수레의 비판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는 예능인의 정상에서 잠시 내려왔다.(계속)


김겨울기자 winte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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