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풍에 돛 단 '명량', 세월호 참사가 전화위복 됐다

정현석 기자

기사입력 2014-08-08 08:18



요즘 극장가. 대세는 하나다. 한마디로 '명량 열풍'으로 요약된다. 말 그대로 '블록버스터'가 투하된 도시처럼 주위가 고요한 정적 속에 조용히 잠든 모양새. 그나마 '해적'이 개봉 첫날 30만 가까운 관객을 모으며 대항마로 나설 채비를 한 정도가 '경쟁' 구도의 전부다.

하루가 머다 않고 100만 고지를 점령하는 스피디한 관객 모으기. 트렌드를 넘어 하나의 현상으로 굳어진듯 한 관람 열기. 빠른 입소문 속에 '꼭 봐야할' 머스트 해브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하는 모양새다. 이런 가운데 '명량'은 온갖 신기록을 경신하며 역대 최고의 흥행 스코어를 기대케 하고 있다. 개봉 9일만인 7일 현재 796만9625명의 누적 관객수. 이르면 이번 주말쯤 천만 관객 돌파가 예상된다. 역대 최단 기간 천만 돌파란 수식어가 붙을 것이 확실시된다.

사람의 입에 많이 회자되는 작품. 그만큼 뒷말도 무성하다. 비 정상적으로 느껴질 정도의 흥행 속도에 '딴지'를 거는 의견도 제법 많다. 문화평론가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명량'을 대놓고 혹평했다. 6일 자신의 트위터에 "영화 명량은 솔직히 졸작이죠. 흥행은 영화의 인기라기보다 이순신 장군의 인기로 해석해야할 듯"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김한민 감독의 전작 '최종병기 활'을 언급하며 "'활'은 참 괜찮았는데"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화제작에 대한 직격탄. 진 교수의 혹평에 대한 찬·반 논란이 세게 붙었다.

사실 진 교수의 주장은 다소 극단적이다. 트위터란 한정된 공간에 펼친 개인의 주관적 견해임을 감안하더라도 다소 심했다. '이순신 장군의 인기' 빼곤 아무 것도 없는 영화라는 식의 혹평은 논리 근거가 약해보인다. 61분의 해상전투신에 대해 '역대급'이란 평가를 내린 평론가들은 눈 뜬 장님인가? 신적으로 추앙받는 '영웅' 충무공을 고뇌하는 인간 리더 이순신으로 살려내기 위해 흘린 제작진는 땀방울은 일찌감치 메말라 버린 것인가? 진 교수의 사견에 동조하기는 어렵다. 단, '이순신 장군의 인기'가 영향을 미쳤다는 논리는 부분적이나마 인정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왜 이순신 장군이 주목받고 있을까에 대해 주목한다면 말이다.

'이순신 장군'의 인기는 세월호 참사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세월호 참사가 터졌을 때 문화계 전반은 크게 위축됐다.극장가 역시 긴장했다. 특히 여름 성수기에 맞춰 준비한 '해양 블록버스터'들은 자칫 개봉을 연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할 정도의 불안감에 휩싸였다. 배와 바다를 보는 국민들의 심정이 어떻겠느냐하는 우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세월호 참사는 '명량'에 전화위복이 됐다. 세월호 사건은 전 국민에게 진정한 리더 부재의 시대임을 각성시키는 계기가 됐다. 리더 부재의 사회에 대한 사회적 개탄과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더욱 진해지는 그리움. 이순신 장군의 재조명에 대한 관심과 대리만족으로 이어졌다. 최악의 불리한 역경 속에서도 민중의 편에서 정확하게 판단하고 과감하게 결단했던 리더. 그가 바로 '명량해전'을 앞둔 충무공이었다. 영화는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인 고뇌 속에 바로 이 리더십을 집중 조명해내는데 성공했다.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 열풍에 대통령도 영화관에 직접 와서 '명량'을 보고 갈 정도다. 김한민 감독은 개봉 전 "장군을 새롭게 해석할 생각은 없었다. 그 분의 확고한 원칙과 나라관을 그려낼 수 있다면 만족이다. 화석화되고 굳어있는 이순신 장군을 감히 이 영화 속에 불러내 공감하고 살아있는 정견, 바른 안목과 원칙, 정신이 깃드는 봄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감독의 바람은 메가히트 속에 현실이 됐다.

반대로 '군도'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는 데 실패했다. '민란의 시대'란 부제가 붙었지만 정작 '민중', '영웅'에 대한 포커싱은 약했다. 자칫 무거워질 것을 우려해 배치한 유머 코드가 가벼운 웃음을 자아냈지만 가슴을 울리는 묵직한 메시지는 발견되지 않았다. 세상을 구할 영웅이 없는 영화. 윤종빈 감독은 개봉 전 "위대한 인물이 나라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주인공의 영웅성을 강조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착취 받는 계급의 상징 하정우가 다소 코믹하게 그려진 반면, 착취 계급의 상징이자 악인 강동원은 멋지게 그려졌다. 자칫 무거워질 것을 우려한데다 영화적 재미를 높이기 위한 사전 장치. 아쉽게도 지금 이 순간 관객 심리와는 엇박자가 나고 말았다.

세월호 이후 진정한 이 시대의 영웅같은 리더십에 대한 간절에 가까운 사회적 열망. '명량'과 '군도'의 희비를 갈랐다. 세월호 사태는 담담하게 성웅 이순신의 리더십을 그려낸 '명량'에 전화위복을 안겼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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