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나의 운명이자 삶 그 자체", 연극 인생 60년 기념무대 여는 연출가 임영웅.

김형중 기자

기사입력 2014-07-27 16:06


◇연출 데뷔 60년 기념 무대 '가을 소나타'를 연습 중인 극단 산울림의 임영웅 대표. 그는 사진기자에게 "피사체가 시원찮아 미안하다"며 농담을 던졌다. 그의 뒤에 있는 사진들은 그동안 극단 산울림과 인연을 맺었던 배우들의 얼굴이다. 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연극한다, 고로 존재한다.'

평생 집에 월급봉투 한 번 안 갖다준 남자가 있다. 연극 한다고 동분서주만 한다. 이런 남자, 매력 있을까.

연극 연출가인 극단 산울림의 임영웅 대표(78)가 바로 이런 사람이다. 중학교 시절 이후 연극에 미쳐, 오로지 연극 안에서 살아왔다. 연출가 데뷔를 기준으로 올해 60년이다. 노(老) 연출가는 다음달, 연극 인생 60년을 맞아 스웨덴의 거장 잉마르 베르히만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 연극 '가을 소나타'를 대학로예술극장 무대에 올린다. 마르지 않는 열정의 화신이다. 임 대표의 오랜 연극 아지트인 홍대앞 산울림소극장에서 그를 만났다.


◇연출가 임영웅 헌정 연극 '가을 소나타' . 사진제공=신시컴퍼니
"할 게 없어서 해왔죠…(웃음). 연극을 직업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나한테 연극은 그냥 삶이고 생활이지요. 잠시 방송사 PD, 신문사 기자를 한 적도 있지만 연극을 안 하면 온 몸이 쑤셔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임 대표는 휘문중 1학년 때 국어교사이던 조흔파 선생(소설 '얄개전'의 작가)의 권유로 연극반에 가입했다. '마의태자'란 작품에서 대신 역할을 했다. 운명의 출발점이었다. 연출 데뷔작은 1955년 휘문 후배들이 전국 경연대회에 나가기 위해 준비하던 '사육신'. 밤새워 애쓴 보람이 있었다. 당시 고 1이던 '꽃할배' 중견배우 박근형이 연기상을 받았다.

'사육신'을 필두로 셀 수 없이 많은 연극과 뮤지컬을 연출했다. 1969년 국내 초연한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지금도 1년에 한 번씩 꾸준히 공연되고 있고, 1966년 연출한 패티 김 주연의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는 창작 뮤지컬의 효시로 꼽히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1985년 산울림소극장을 연 뒤 '위기의 여자',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등으로 세상에 여성연극 붐을 일으켰다. 그의 외길 인생은 한국 연극, 특히 소극장 연극의 살아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는 '연극은 인간을 그리는 예술'이라는 지론을 갖고 있다. 그의 모든 연출작에 일관되게 투영되어 있는 철학이다.

"연극이 보여주는 것은 매우 다양합니다. 수많은 사연들과 이야기들이 있어요. 하지만 연극의 목적은 하나예요. 어떻게 하면 사람답게 살 수 있느냐, 바로 그거예요. 그걸 관객에게 보여주는 거지요."


그는 한 편의 좋은 연극이 한 사람의 인생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이렇게 한 명, 한 명이 감화를 받는다면 세상은 좀 더 밝아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자신을 '사실주의 연극의 대가'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사실주의건 상징주의건 인간을 담아내는 예술이라는 연극의 본질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하다. 그의 아바타와도 같은 '고도를 기다리며'에 진한 애정을 갖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고도' 만큼 현대인의 상황을 잘 표현한 작품도 없어요. 인간이 살아있는 한, 세상이 존재하는 한 영원이 계속될 인간 존재의 본질을 담고 있지요."

말이 나온 김에 그가 기다리는 '고도'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글쎄…, 돈 걱정 없이 맘 편히 연극 할 수 있는 세상?"이라며 고개를 살짝 갸웃한 그는 "올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노력하며 기다리는 과정"이라고 마무리한다.

'가을 소나타' 역시 인간을 그린다. 그에게 친숙한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다. "여자는 딸로 태어나 엄마가 되잖아요? 그래서 엄마와 딸의 이야기는 여성의 일생을 녹여낼 수 있어요."

'가을 소나타'에는 흔히 '임영웅 사단'이라고 불리는 연극인들이 총 출동한다. 그의 페르소나인 중견 배우 손 숙과 서은경, 한명구가 출연하고, 신시 컴퍼니 박명성 대표가 제작을 맡았다. 무대세트는 박동우 디자이너의 몫. 노 연출가의 의미있지만 고됐던 삶의 풍상(風霜)을 되새기는 의리와 보은의 무대다.

"연극 하면서 세상 탓, 남의 탓 하면 안되요. 누가 나더러 연극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자기가 좋아서 한다면 끝인 거예요. 돈벌이 하려면 딴 데 가서 해야죠."

여전히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임 대표는 배우와 스태프에게 엄격한 연출가로도 유명하다. 물어봤더니 "무슨 얘기냐?"며 펄쩍 뛴다. "내가 배우들에게 얼마나 잘 해줬는데 그래요, 손 숙 씨한테 한 번 확인해봐요"라며 껄껄 웃는다. 동안(童顔)의 잔상이 남아있는 그의 주변엔 항상 따뜻한 유머가 흐른다.

그의 연출 인생 60년 헌정 무대인 연극 '가을 소나타'는 8월 22일부터 9월 6일까지 대학로예술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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