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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기라는 배우를 생각해본다면. 쭉 뻗은 키에 악동같은 외모, 거기에 귀여운 말투까지 그는 누나들의 판타지를 사로잡는 달달한 로맨틱 가이로 여겨졌다. 그랬던 그가 영화 '몬스터'에서 살인마 역할로 등장하더니, 느와르 영화 '황제를 위하여'까지 색다른 행보다. 그동안 드라마 '달자의 봄', 영화 '해운대', '오싹한 연애', '연애의 온도'에서 보여졌던 이민기가 아닌 180도 변신한 그의 선택, 관객들의 반응에는 호불호가 나뉘는 것도 사실이다. 그의 위험한 선택에는 이유가 있었을까.
그럴 수도 있다. '몬스터'는 스릴러이고, '황제를 위하여'는 느와르다. 둘 다 장르 영화로 볼 수 있고, 거기서 내가 맡았던 역할이 아무래도 기존에 봐왔던 이민기와는 분명 다르다.그동안 해왔던 캐릭터가 다분히 인간적인 부분이 엿보이는 캐릭터였는데, 아무래도 이번 작품들이 그렇지 않아서 관객들이 낯설어 할 수도 있겠다.
-'황제를 위하여'에 애정이 많았던 작품으로 알고 있는데, 촬영까지 시간도 꽤 기다려주고, 세트장도 감독과 함께 찾아다닐 정도였다고.
-'황제를 위하여'에서 뻔하지 않은 지점이 있다면.
새로운 시도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느와르의 정통성을 가지고 왔지만, 그것을 표현해내는 방식이 감성 전달 방식이 다르고, 직선적인 면이 많았다. 구구절절한 설명이 없다고 해야할까. 사실 처음에 시사를 보고, 내 머릿 속에 있는 촬영한 그림과 편집본이 달라서 많이 놀랐다. 그리고 걱정도 됐다. 관객들이 이렇게 불친절한 영화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까. 그래서 감독한테 물어보기까지 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나 조차도 스토리에 집착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라. 날 것이라기 보다 센 것, 서정적인 것보다는 끝에 허망함으로 표현되는 그런 이색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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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작품을 뻔하지 않게 만든다. 이게 참 어려운 거더라.
그렇다. 내가 작품을 고를 때도 그런 부분이 있다. 입봉하는 감독들과 호흡을 맞추는 일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 뻔하지 않고, 독특한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오싹한 연애'때도 작가가 직접 연출을 하면 어떨까. 궁금했었고, '연애의 온도'의 노덕 감독도 처음 만났을 때 작품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결국 남녀 간에 뻔한 연애 스토리를 그리더라도 뻔하지 않게 그린다는 점이 이 작품들에 내가 매력을 느꼈던 이유다.
-'황제를 위하여'에서 이민기의 베드신이 큰 화제를 모았다. 그동안 멜로에서 보여지지 않았던 과감함이다.
베드신이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세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 영화 자체가 내숭없고, 솔직하고, 직선적인 영화라 그런 것 같다.
-배우 생활이 10년이 넘어간다. 사람으로서 배우로서 욕심도 날 거 같은데.
좀 더 관통하고 싶어진다고 해야하나. 예전에는 대사 밖에 안보인 순간도 있었던 것 같다. 어느덧 상대방 대사도 보이고, 내 대사가 보이더라. 그렇게 딴 사람의 역할도 보이고, 그러다 대본 전체가 보이고, 요즘에는 그런 것을 관통해서 좀 더 현명하게 일을 소화하고 싶더라. 역할 자체에 몰입하고, 표현하는 일은 배우라면 당연한 일일 수 있는데, 그 작업을 관통할 수 있다면 더욱 사소한 것까지 챙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고민이 드는 때다.
-관통을 이야기해서 말인데, 전체적인 그림을 고민한다는 지점은 사실 배우가 아니라 감독의 몫이 아닐까. 나중에 감독을 하는 것 아니냐.
너무 어려운 일이다.
-이 영화가 흥행과는 거리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민기라는 배우가 느와르 첫 도전에서 흥행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않더라도 또 다시 느와르라는 장르에 도전해주길 바란다. 무리일까.
센 장르를 하면 그것에 갇혀버릴 수 있다는 게 두렵긴하다. 배우 입장에서 천만 영화의 주인공이 되고, 흥행을 한다는 것이 영광이면서도 다음 작품에서 부담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장르가 세면 다음 작품에서 순한 역할을 하더라도 쉽지 않더라. 그래도 나는 배우 생활에 있어서 한계를 가진다는 것을 가장 경계하고 싶다. 앞으로도 매력을 느끼는 작품이나 캐릭터는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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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겨울기자 winte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