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밀회'의 진짜 피아니스트 박종훈, 그가 연기에 도전한 이유?

김표향 기자

기사입력 2014-06-09 05:38


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

중후한 멋을 풍기는 은백색 긴 머리,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작은 귀고리,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큰 키와 체격.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친숙한 피아니스트 박종훈의 모습은 이러하다. 그가 점잖은 슈트와 검은색 짧은 머리 안에 자신을 슬그머니 감추고 드라마에 등장했을 때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뜬 사람이 꽤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화면 속 그 남자가 박종훈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마치 건반 위의 손가락이 음표 사이를 유영하듯, 그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대사를 '연주'하고 있었다.

JTBC 드라마 '밀회'의 서한음대 교수 조인서. 음악가가 아닌 연기자 박종훈의 첫 배역이다. 교육자적 양심을 지닌 조인서는 욕망을 향해 달려가는 서한음대 사람들과 대척점에 선 인물이다. 방영 내내 화제를 모았던 '밀회'의 뛰어난 완성도에는 실제 피아니스트인 박종훈의 존재감이 큰 몫을 했다. 안판석 감독은 과거 EBS 다큐멘터리 '음악은 어떻게 우리를 사로잡는가'의 진행자로 나선 박종훈을 눈여겨봤다가 드라마에 캐스팅했다. "2회까지 대본을 받았는데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많은 일들이 벌어지겠구나 싶어서 궁금해졌고요. 음악 드라마니까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출연을 결정하기까지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연기를 해보니 무척 어렵더라고 했다. "그동안 방송 경험이 많아서 카메라가 친숙하고 크게 긴장하지 않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이번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서 그 역을 소화해야 하니까 부담감이 컸죠. 실수라도 하면 한 장면을 위해 준비해온 수십명의 스태프에게 미안해지잖아요. 배우들과 대사를 주고 받으면서 감정을 맞춰야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작업이었죠. 그래서 연기 연습을 많이 했어요."

박종훈은 연기를 하는 듯, 안 하는 듯, 자연스럽게 극에 녹아들었다. 정성주 작가가 조인서 캐릭터에 박종훈의 실제 모습을 반영한 것도 도움이 됐다. '밀회'에 함께 출연한 김창완처럼 음악과 연기를 병행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제2의 김창완'이라고 치켜세우니,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김창완 씨는 제가 너무나 존경하는 분이에요. 수십년 동안 연기를 해온 분 앞에서 감히 제가 어떻게…. 저를 잘 모르는 누군가가 그러더라고요. 저 배우, 피아노 연기 잘한다고. (웃음)"

박종훈이 경험한 연기는 음악과 많이 닮아 있었다. 표현 수단의 차이는 있지만, 같은 예술 분야이기 때문에 상통하는 점이 많더라고 했다. "예술은 혼자 느끼는 게 아니라 보고 듣는 사람에게 전달이 돼야 의미가 있어요. 그 방법이 무엇이든 예술가는 감성을 표현하는 사람이니까. 특히 무대 예술인 무용과 음악과 연기는 너무나 비슷해요." 그런 의미에서 음악의 흐름에 배우의 표정과 몸짓이 완벽하게 부합하는 '밀회'의 디테일에 전문가인 박종훈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박종훈은 극 중 유아인이 연주해 화제가 된 '작은별 변주곡'을 직접 작곡했다. 선재 캐릭터에서 영감을 얻어 10분 만에 구상을 끝내고 바로 오선지에 음표를 옮겼다. 박종훈의 음악과 연기는 이렇게 교감했다.

올해 박종훈은 연기자로 첫 발을 내디딘 것과 동시에 피아니스트로서 데뷔 30주년을 맞이했다. 드라마 방영 중에 30주년 기념앨범 '더 피아니스트'도 발표했다. 어린 시절 바이올린으로 음악을 처음 접했고 이후론 오로지 피아노와 함께 한 길을 걸어왔다. 젊은 시절 세계적인 콩쿨에서 수차례 수상하며 전 세계로 연주 여행을 다녔다. 하지만 그는 굳이 클래식만 고집하지 않았다. 대중음악부터 뉴에이지까지 다양한 음악을 가리지 않고 들었다. 기억이 존재하는 순간부터 피아노가 늘 그의 곁에 있었지만, 그는 중학교 시절 돈을 모아 산 일렉트릭 기타로 첫 연주를 했던 그때의 전율을 더욱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처음 소리를 낸 순간, 처음 악기를 갖게 된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감격"이라고 그는 표현했다.

박종훈에게선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편견 없이 유연했고, 음악이라면 무엇이든 여유롭게 포용했다. 클래식 프로그램 진행자, 라디오 DJ, 음반 제작자, 작곡가, 그리고 연기자까지 다채로운 변신이 가능했던 것도 그래서일 테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일은 역시 무대에서 관객과 소통하는 일이다. "무대에 서는 건 중독 같아요. 절대 포기할 수 없죠. 사실 공연이 다가오면 하기 싫은 마음이 생기기도 하는데, 막상 끝나면 다음 공연을 기다리게 돼요. 무대에서 연주할 때, 그리고 곡을 쓸 때, 가장 몰입하고 희열을 느낍니다."

다시 피아노 앞으로 돌아온 박종훈. 벌써부터 수많은 무대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11월엔 독주회도 예정돼 있다. 지난 몇 달간 드라마를 통해 그의 연주를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이젠 그의 연주를 들어야 할 시간이다. 피아니스트는 역시 피아노와 마주 앉은 옆 모습이 훨씬 매력적이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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