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린' 현빈, 이름 값의 무게를 견뎌라

김겨울 기자

기사입력 2014-05-14 05:57



톱스타는 어렵다.

무명일 때는 유명해지기만 하면 천하를 얻겠다 싶지만, 유명하다는 것은 또 다른 대가를 치러야한다. 일거수일투족, 사사건건 대중의 시선 앞에 알몸으로 노출된다는 점 말이다. 수많은 돈과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톱스타는 그만큼 거느린 식구에 대한 책임도 늘어간다. 그게 톱스타의 무게다. 현빈도 그럴 것이다. 영화 '역린'은 이름보다 '현빈 영화'로 불렸다. 개봉을 앞두고도 관계자들 사이에 "현빈 어땠어?", 마케팅에도 현빈의 등근육이 노출되며, 현빈 효과를 톡톡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현빈 영화'는 개봉했고,관객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현빈 영화'일 줄 알았는데, '현빈만의 영화'는 아니었기에….

세월호 참사로 영화 일정이 미뤄지며 '현빈 영화'는 '조정석의 영화', '정재영의 영화'라는 설명을 하지못했다. 그게 실망을 부추겼다. "언론시사 후 기사를 봤다. 평이 엇갈리더라. 어이쿠, 싶더라. 그때까지 영화를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걱정도 됐는데, 찬찬히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니, 관점이 달랐다는 생각이 들더라." 현빈은 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

"'역린' 시나리오를 처음 접했을 때, 난 정조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을수나 갑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또 다른 이인 혜경궁 홍씨의 이야기도 될 수 있다. 그렇게 봤다. 정유역변이 일어날 때 처해진 각 인물들의 상황과 시각을 담은 영화인데, 정조 위주의 영화인 줄 알았던 관객들에게는 배반이 된거다. 이해한다. 어찌보면 관객들이 그런 기대를 하기 전에 내용을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텐데. 아쉽다." 현빈은 정조라는 한 인물에만 초점을 둔 평가가 아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린'에 대한 현빈의 믿음은 곧았다. 극본도 연출도, 캐릭터도 자신이 살아온 정조의 시간들에 대해 그는 여전히 믿음을 보여줬다.

"중화권 미팅을 하고 있을 때 처음 '역린'을 알게 됐다. 시나리오를 읽은 후, 한국에 들어와서 감독에게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준비를 시작했다. 실화와 허구가 가미된 사극이었다. 젊은 왕인데다, 즉위한 지 1년 밖에 안됐을 때 살해당할 위기에 처한다. 거기에 아버지(사도세자)에 대한 아픔도 가진 인물이다. 감독과 이야기하면서 정조라는 왕을 왕으로서 모습보다는 인간으로서 풀자고 많이 대화했다. 고작 1년 밖에 안된 어린 왕에게 위엄있는 모습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존에 사극에서 나오는 말투도 자제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정조를 이해하기위해 책과 다큐멘터리를 활용했다. "정조에 대해 알면 알수록 불쌍했다.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인데, 연기를 하면 할수록 가장 낮은 자리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왕이지만, 왕처럼 살지 못한 이 사람의 인생이 힘들었다. 상상이지만, 남몰래 운동하며 체력을 키우는 그런 모습도 아련하더라."

'역린'의 예고편부터 첫 장면을 사로잡는 정조의 체력단련 모습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역린'의 스틸샷이 공개되고, 개봉되자 현빈의 등 근육에 대한 여심은 술렁거렸다. '화난 등'이라는 닉네임까지 붙여졌다.


"처음에는 상의를 탈의하고 노출을 하는 장면이 쓸데없이 비춰질까 걱정도 됐다. 왕이라면 당연히 좋은 음식을 먹고, 태양 아래도 없었을 텐데, 그을린 피부에 마른 근육이 튀지 않을까. 하지만 왕으로서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라, 언제 죽을 지 모르는 그런 상황에서 처절하게 몸을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또 상중이었고, 검소함이 몸에 벤 사람이다. 마른 몸이 맞다고 봤다." 그래서 "3~4개월동안 노력했다. 몸무게도 빼고, 마른 몸을 가진 사람의 근육을 표현하기위해 세밀하게 작업했다. 근육들을 최대한 잘게 쪼개서 세밀하게 만드려고 운동했다"고 덧붙였다.


제대 후 달라진 것들

'역린'은 군 제대후 복귀작이다.지난해 12월 6일, 현빈은 21개월간의 해병대 군생활을 마치고 돌아왔다. "소중하다는 것을 그 전에는 몰랐다. 고등학교 때 연극을 하면서 연기에 대한 목표가 생기고, 좋아하는 일도 하고, 돈도 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러다 어느 순간 일적으로 점점 바뀌어가고 있더라. 직업이라 하는 부분이 생기더라. 내가 잠깐 잊었던 것들에 대해 소중함을 깨닫게 됐다. '역린'의 첫 촬영 때 어린이가 놀이공원 가는 것처럼 설레더라."

30대가 된 후로 마음가짐도 바뀌었다. "넓게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20대 때도 연기만 했던 것은 아니지만, 앞만 보고 달리는 느낌이 컸다. 그 당시에 내 나름대로 이것저것 신경을 썼는데, 크게 멀리서 보니까 별거 아니더라. 나는 배려한다고 한 행동이 상대에게 배려가 아닌 경우도 있었고, 결국 이런저런 이유를 댔지만, 결국 나를 위해 했던 선택이란 생각도 들더라. 모든 일을 넓게 보려고 노력하게 돼더라."

자신의 연기 생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던 사람들에대한 고마움도 잊지않았다. "내가 이 일을 하면서 일에 대한 부분에 대해 영향을 준 사람들이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줬다고 할 정도로 영향을 줬던 분들이다. 그 분들을 통해서 보게되고, 느끼게 되고, 듣게도 되고, 시간이 쌓이면 쌓일수록 배우는 게 많다." 그 고마움의 대상은 다름아닌 박중훈 장동건 주진모 황정민 차태현 등이 소속된 모임 '싱글벙글', 내노라하는 남자 톱배우들의 모임이다. 현빈은 이 모임에서 막내로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꼭 모인다. 얼마전 인터넷을 통해 사진이 공개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선배들과 내가 나이 차가 꽤 난다. 그러다보니 선배들이 많이 예뻐해주는 편이다. (막내를 오래했는데, 새로 영입하고 싶은 후배가 있다면) 사실 선배들이 추천을 한 후배가 있다. '한 번 만나보라'고 하더라. 그래서 연락처도 받았다."

직접 통화도 했던 그 후배에 대해 현빈은 처음에 밝히길 부끄러워했다. 잇단 추궁에 결국 "김우빈"이라고 털어놓으며 "괜히 그 친구가 부담느낄까봐"라며 쑥스러워했다. 인터뷰내내 현빈을 보면서 톱스타의 무게와 책임, 그리고 겸손을 봤다. 현빈이라면, 믿고 싶어진다.


[보너스 인터뷰-현빈의 뇌구조]

현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살까. 인터뷰와 별도로 현빈에게 본인의 뇌구조를 그려주길 부탁했다. 뇌구조를 다 그리고 난 뒤, 빵 터졌다. '역린', '관객수', '정조'까지 죄다 영화 이야기다. 그리곤 '여행'과 '잠'이 고프다고. 눈에 띄는 부분은 경쟁작인 '표적'. 현빈은 "하하. '표적', 두 영화 다 잘됐으면"이라며 웃었다. 참고로 '맥주'라고 쓴 부분은 사실 '등 근육'이었으나, 현빈이 "다들 등 이야기 뿐이다. 빼야겠다"라며 '맥주'로 바뀌었다. 마지막으로 팬은 뇌가 아닌 가슴에 있다고 전해달란다. 꼭~


김겨울기자 winte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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