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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경쟁사 이적' 김민아 "女 나이 서른둘…도전은 필연적 선택"

이유나 기자

기사입력 2014-03-28 09:29


김민아 아나운서 인터뷰
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4.03.24/

프리랜서. 일정한 소속 없이 자유 계약으로 일하는 사람. 다르게 표현하면 정해진 퇴근 시간도 없고 휴일도 없는, 늘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실력이 없으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잊혀지는 냉혹한 정글. 어쩌면 김민아 아나운서가 앞으로 마주칠지 모를 현실이다.

최근 김민아는 7년간 몸 담았던 MBC스포츠플러스를 떠났다. 야구장을 누비며 선수들을 만나고 야구팬들의 사랑을 받던 '여신'에서 진짜 방송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마지막 승부수. 다만 모든 일이 너무나 갑작스럽게 결정되고 진행된 탓에 스스로 "어설픈 아마추어 같다"는 생각을 한다. 결혼도, 퇴사도, 소속사 계약도, 새 프로그램 발탁도, 모두 3월 한 달간 있었던 일이다. 2014 시즌 개막을 앞둔 김민아에게 3월은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는 스프링캠프였던 셈이다.

"여자 나이 서른둘이란 숫자가 어느 순간 무거운 의미로 다가왔어요. 이제 나이도 먹었고 결혼도 했고 앞으로 아이도 갖게 될 텐데 내가 방송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길어야 1~2년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어요. 2월에 오키나와 스프링캠프를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만난 분들이 '내년에는 민아 씨를 못 보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저는 열심히 하겠다고 여기까지 온 건데, 현실은 제 마음 같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언젠가는 힘없이 밀려나겠구나 싶은 생각에 우울감과 자괴감이 몰려오더라고요. 여자 방송인으로서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 같았어요."

프로야구 개막 전에 결정해야 했다. 출항하는 배에 승선할 건지 말 건지를…. 배가 항구로 다시 돌아오려면 1년이 걸린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김민아는 '방송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했다. 첫 줄엔 골프와 피겨. 그 다음으로 라디오와 요리 등이 목록을 채웠다. 아이를 낳기 전, 지금이야말로 인생을 제대로 살아봐야 할 때란 생각이 들었다. '도전'은 필연적 선택이었다.


김민아 아나운서 인터뷰
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4.03.24/
김민아는 SBS스포츠와 손을 잡았다. SBS가 골프 전문 채널과 피겨 중계권을 갖고 있다는 점이 마음을 움직였다. 하지만 MBC에서 프로야구 매거진 프로그램 '베이스볼 투나잇 야'를 4년이나 진행했던 그가 경쟁 프로그램인 '베이스볼S'을 맡은 건, 친정 MBC 입장에선 서운할 법하다. 심적 갈등.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김민아는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숨을 골랐다. 눈가엔 물기가 맺혔다. "비난받을 거라고 예상했고 제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해요. 일련의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 시기적으로 제가 실수한 부분도 많고요. 저를 믿어주셨던 분들에게 실망을 드린 것이 가장 죄송하고 마음 아파요. 하지만 저는 골프와 피겨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베이스볼S'는 정중히 사양했지만 제게 새로운 기회를 준 방송사의 요청을 외면할 수 없었어요. 저는 구원투수니까 선발이 자리를 잡으면 완투를 기대하며 미련없이 나와야죠."

1세대 야구여신. 김민아를 오랫동안 따라다닐 타이틀이다. 그는 "야구여신이 직업이 돼 버린 것 같다"고 했다. 그만큼 사명감을 갖고 현장을 누볐다. 하지만 대중의 날카로운 말에 상처도 많이 입었다. 특히 이번 시즌을 앞두고는 '진행을 잘하면 뭐하냐 이젠 늙었다', '결혼했는데 무슨 여신이냐' 같은 댓글이 달리는 걸 보며 크게 상심했다. "저는 여전히 예치금이 많은 통장인데, 대중들은 저를 휴면계좌처럼 보더라고요. 회사에서도 후배를 양성하는 역할을 더 요구했고요. 야구선수와 여자 방송인의 삶은 꽤 비슷한 것 같아요. 내가 공을 던질 수 있다고 하더라도 구단이 기회를 주지 않으면 어쩔 수 없잖아요. 구속이 느려지면 더 젊은 투수를 찾듯이 여자 방송인의 삶도 그런 것 같아요."

김민아를 옆에서 지켜본 남편은 이런 말을 했다. "크게 한번 망하는 것도 괜찮다. 그래야 네 선택에 후회가 없을 것 같다." 야속했을 것 같은데 김민아는 오히려 큰 힘이 됐다고 한다. 신뢰와 의리를 잃으면서까지 이루고자 했던 새로운 목표를 가다듬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고1 때까지 8년간 피겨선수를 했던 김민아는 지금 피겨 국제심판을 준비 중이다. 최근엔 태릉에서 열린 종별 선수권대회에서 심판으로 활약했다. 남편도 골프선수 출신인데다 김민아 또한 10년 전부터 골프를 시작했을 만큼 애정이 남다르다. 조만간 'SBS 골프 아카데미' 프로그램의 MC도 맡을 예정이다. 프리랜서 신분이지만, 스포츠 전문 아나운서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한 선배께서 이런 메시지를 보내셨어요. '야구장이 무슨 신전이냐, 너는 여신이란 단어에 얽매이지 말고 네 길을 가라'고요. 지난 7년을 돌이켜보면, 가장 인기가 많았던 적도, 크게 주목받았던 적도 없었어요. 2인자였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의 선택이 누군가를 실망시켰지만, 앞으론 누군가가 저를 롤모델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오래 갈 수 있는 스포츠 아나운서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오로지 제 힘으로요."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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