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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의 진화' 보여준 한국-대만 연예인 야구 자선경기

김표향 기자

기사입력 2014-03-17 06:50


기념 촬영 중인 한국-대만 연예인 야구 대표팀. 사진공동취재단

한국팀 선발 오만석. 사진공동취재단

선발투수 오만석이 마운드에 올랐다. 주무기는 몸쪽 직구와 바깥쪽 슬라이더. 글러브를 빠져나온 공이 묵직하게 깔리며 포수 미트에 힘있게 꽂혔다. 깨끗한 스트라이크.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주심의 '플레이볼'. 이제 그들은 연예인이 아닌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다. 유니폼에 새겨진 태극기가 승부욕에 불을 붙인다.

대만 중부에 위치한 도시 타이중의 인터콘티넨탈 구장. 201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예선이 열린 곳으로 한국 야구팬들에게도 친숙한 경기장이다. 대만 교통부 관광국과 대만 관광청이 주최하고, 대만 '싱싱얼(星星兒)' 사회복지기금회와 한국의 한스타 미디어가 주관하는 '대만 자폐아동을 위한 한국-대만 연예인 야구 올스타 자선경기'가 16일 오후 열렸다.

뜻깊은 행사인 만큼 양국을 대표하는 인기 스타들이 총출동했다. 한국에선 이근희, 이종원, 오만석, 박재정, 노승범(이상 배우), 김창렬, 고유진, 김준, 모세(이상 가수), 이봉원, 김현철, 김학도, 김수용, 변기수, 박성광, 김대성, 한민관(이상 개그맨), 박광수(만화가), 길윤호(넥센 히어로즈 마스코트 턱돌이) 등 총 19명. 한스타 연예인 야구리그에 참가 중인 10팀의 간판 선수들로 구성됐다. 대만은 '명성(明聖, 연예인이라는 뜻)' 팀에 소속된 개그맨 펑챠챠(澎恰恰), 개그맨 쉬샤오šœ(許效舜), 배우 웡지아밍(翁家明) 등 총 20명이 참가했다. 펑챠챠와 쉬샤오šœ은 한국의 유재석-강호동 같은 대만의 국민 MC다.


WBC가 열렸던 타이중 인터콘티넨탈 구장에는 이날 1만명이 넘는 현지 팬들이 몰려 프로 경기를 방불케 하는 열기를 뿜었다. 사진공동취재단
연예인 선수들의 표정은 자못 비장했다. 전날 기자회견에선 상대팀에게 "살살 봐주면서 해달라"고 엄살을 부렸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절대로 지지 않겠다"며 투지를 불태웠다. 넥센 '턱돌이'로 잘 알려진 포수 길윤호는 "기쁜 마음으로 즐겨야 할 친선 경기인데 어느 순간 다큐가 돼 버렸다"면서 포수 미트를 꼼꼼하게 점검했다. 타격감이 좋은 김창렬은 유니폼의 태극기를 가리키며 "좋은 취지의 행사이지만 국가간 자존심이 걸렸으니, 질 땐 지더라도 경기를 쉽게 내주진 않겠다"면서 훈련으로 구슬땀을 흘렸다.

어느 재질의 배트를 사용하느냐를 두고 양팀간 가벼운 해프닝도 벌어졌다. 대만 팀이 한국과 달리 나무배트를 사용했던 것. 반발력이 좋은 알루미늄배트를 쓰는 한국팀이 타격에 유리한 상황이다. 대만팀은 "괜찮다"며 원정팀을 배려지만, 한국팀이 오히려 "공정하게 하자"면서 대만 선수들에게 나무배트를 빌려와 적응 훈련을 했다.

7회까지 진행된 경기는 홈팀 대만의 승리로 끝났다. 최종 스코어는 21대 9. 큰 점수차로 졌지만 한국팀 선수들은 웃으며 관중석에 감사 인사를 했다. 경기 도중엔 가수들의 축하공연이 곁들여져 풍성한 볼거리를 연출했고, 4회 초 타석에 선 한민관은 '히트 바이 피치드볼(Hit by Pitched Ball)' 상황에서 1루가 아닌 3루로 질주하는 퍼포먼스를 펼쳐 큰 웃음을 선사했다.

이날 한국팀의 수훈갑은 '턱돌이' 길윤호. 6회 초까지 포수 마스크를 쓴 그는 6회 말에 마무리 투수로 변신해 전천후 활약을 펼쳤다. 한국 선수들 중에는 가장 빠른 시속 101km의 강속구로 대만팀의 불방망이를 틀어막았다.

한국팀의 첫 득점은 오만석과 김창렬이 합작했다. 선발투수였던 오만석이 1회 초 1번 타자로 나서 내야 안타로 출루한 뒤 빠른 발로 잽싸게 2루를 훔쳤고, 곧이어 4번 타자 김창렬이 통렬한 적시 2루타로 오만석을 홈으로 불러들였다.


이날 경기장에는 1만명이 넘는 현지 팬들이 몰려 프로 경기를 방불케 하는 열기를 뿜었다. 한국어 손팻말을 든 소녀팬부터 가족 단위 팬, 버스를 대절해 함께 이동한 팬들이 이른 아침부터 경기장 앞에서 장사진을 이뤘다. 전날 밤 12시부터 줄을 섰다는 정여(18) 양은 "한류 팬이기 때문에 오늘은 대만이 아닌 한국팀을 응원하겠다"며 파이팅을 외쳤다. 보위쉔(18) 양은 "인터넷 기사와 SNS로 경기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3시간 떨어진 타오위안에서 왔다"며 '꽃보다 남자'로 유명해진 김준에게 줄 선물을 들어 보였다. 경기에 앞서 열린 사인회에서도 대만 팬들은 한국의 스타들을 겹겹이 둘러싸고 연신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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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경기의 수익금 전액은 대만 자폐아를 위한 복지기금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경기장 밖에서 후원사가 판매하는 물품의 수익금도 기부된다. 싱싱얼 사회복지기금회 린메이수 이사장(68)은 "야구의 인기가 높은 양국의 연예인들이 사회적 약자인 자폐아동을 돕는 일에 앞장서자는 취지에서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며 "대만 자폐아들을 위해 어려운 발걸음 해준 한국 선수단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대만에서도 조승우 씨가 주연으로 나온 '말아톤'이란 영화가 자폐아 가정과 교육 현장에서 교본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번에 방문한 19명의 스타들도 전국 1만여 명의 자폐아 가족들에겐 꿈이고 희망이며 은인이 될 것이다. 한류가 선행으로 공유가치를 창출하게 된 셈이다"라고 의미를 짚었다.

지금 대만에선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큰 인기를 끌면서 잠시 주춤했던 한류가 다시 붐을 일으키고 있다. '꽃보다 할배'의 영향으로 대만을 방문하는 한국 관광객의 수도 급증했다. 양국간 문화 교류와 관광 교류가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이번 연예인 야구 자선 경기는 문화-관광 교류에 공익적 의미까지 더해지면서 한류의 진화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스타 미디어의 박정철 대표는 "이번 만남을 계기로 한국과 대만 연예인들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우애가 깊어지길 기대한다"며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가을에 대만 연예인 야구팀을 한국에 초청하고 싶다"고 말했다.
타이중(대만)=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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