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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약의 날개를 펴고 있는 한국 e스포츠에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사실 WCG는 메인 스폰서이자 월드사이버게임즈의 대주주인 삼성전자의 전폭적인 후원을 바탕으로 명맥을 이어왔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사업 무게중심이 몇년전부터 PC에서 모바일로 전환되면서 지원 규모가 대폭 줄어들어 대회 존립이 어려워지기 시작했고, 결국 폐지에 이르게 됐다. WCG의 중단은 e스포츠 종주국으로 주도권을 잡아왔던 한국 e스포츠의 글로벌 전략에 큰 타격이 될 전망이다.
예견된 수순
한국을 비롯해 미국, 중국, 독일, 이탈리아, 싱가포르 등에서 그랜드파이널이 번갈아 열렸으며, 독일 쾰른에서 열린 지난 2008년 그랜드파이널의 경우 전세계 78개국에서 800여명이 참가, 'e스포츠 올림픽'으로 불리기까지 했다. 삼성전자가 매년 수백억원을 투자했고, 마이크로소프츠와 소니, 블리자드, EA 등이 적극 참여했다. 이를 통해 삼성전자는 IT 선도기업으로서의 인상을 확실히 심었다. 또 e스포츠 종주국으로서의 한국의 위상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윤 부회장이 2008년 현직에서 물러나고 e삼성이 해체되면서, WCG는 힘을 잃기 시작했다. 게다가 PC와 콘솔게임 위주로 경기를 진행했는데, 삼성전자가 '모바일 올인' 전략을 취하면서 더 이상 마케팅 툴로서 WCG의 활용가치는 떨어졌다. 2012년 대회를 앞두고 종목을 모바일게임으로 대폭 교체하려던 시도도 이에 기인한다. 하지만 모바일게임은 PC 온라인게임과는 달리 아직 '보는 스포츠'로서의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이 때부터 WCG는 사실상 시한부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중국 쿤산에서 개최된 WCG 그랜드파이널은 성황리에 끝났다. 지난해의 경우 무려 15만명이 대회장을 찾아 e스포츠의 향연을 마음껏 즐겼다. 온라인게임 최대국인 중국이었기에 가능했지만, 그만큼 WCG의 경쟁력이 여전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렇기에 WCG의 갑작스런 폐지는 큰 아쉬움을 준다.
향후 진로는?
지난 10여년간 ESWC, CPL, WEG 등 다양한 국제 e스포츠 대회가 열렸지만 WCG의 아성을 뛰어넘지 못하고 사라졌다.
비록 WCG가 삼성전자가 주도한 대회였지만, 이제는 한국 e스포츠를 대표하는 '자산'이 된 셈이다. 폐지를 결정한 삼성전자의 공과를 따지기 전에, WCG가 남긴 경험과 유산을 향후 얼만큼 활용할 지가 관건이다.
특히 한국e스포츠협회는 지난해 전병헌 협회장이 부임한 후 따로 운영되던 IeSF(국제e스포츠연맹)와 한 몸이 됐고, 올해 스포츠 어코드 준가맹단체로 가입하려는 등 e스포츠의 글로벌화와 정식 스포츠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매년 열리는 'IeSF 월드 챔피언십'를 지난해 처음으로 해외인 루마니아에서 개최한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WCG를 IeSF가 여는 국제대회의 '브랜드'로 적극 활용해도 괜찮을 것으로 보인다. IeSF 대회가 이미 10여년간 WCG가 구축한 전세계 SP(전략적 파트너)를 기반으로 개최되고 있기 때문이다.
월드사이버게임즈 관계자는 "WCG를 이어나갈 수 없어 너무 아쉽다. 전세계 e스포츠 팬들에게도 죄송한 마음이다"라며 "WCG 브랜드를 일반 사기업이 그대로 쓸 수는 없겠지만, 협회와 같은 공공성을 가진 기관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다. WCG가 남긴 유산을 이어받을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