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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문학상' 수상자인 박후기 시인이 첫 사진산문집 '나에게서 내리고 싶은 날'(문학세계사)을 내놓았다. 이 산문집은 삶의 굴곡에서 찾아낸 감성적 순간을 포착한 사진과 그 결정적 순간의 단상을 글로 섬세하게 그려냈다.
박후기는 생이라는 비극과 그 슬픈 장르를 상생의 사유로 담아낸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낮고 남루한 곳, 텅빈 곳을 향해 있다. 때문에 그의 프레임을 통해 관찰되는 세상은 슬프거나 외롭다. 때때로 비루하고 위태롭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그 대상들 속에서 삶에 대한 숙연한 의지를 포착한다. 그 속에서 삶은 우리의 생각만큼 고고하거나 아름답지 않지만, 그럼에도 버텨낼 수 있게 만드는 따스한 것들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
'더 늙기 전에, 더 늦기 전에 들판에 아주 작은 방 하나를 얻고 싶다.
작은 방 안으로 해를 맞이하고 바람을 불러들이고 싶다.
해 저무는 들판에 서서 마침표 없는 허밍으로 훠이훠이 월세를 지불하고 싶다.'<늙기 전에, 늦기 전에> 중에서
글쓰기로 시작해 사진과 음악, 무대 연출과 그림 등 다양한 예술 활동을 펼치며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는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인간'이다.
박후기는 '사진을 위한 사진'이 아닌 '인간을 위한 사진', '글을 위한 글'이 아닌 '인간을 위한 글'을 추구한다. 그의 글은 겸손한 언어와 비범한 환유를 통해 깊게 응시한 자만이 그려낼 수 있는 따스한 생의 진경을 펼쳐 보인다.
박후기 시인이 페이스북(www.facebook/hoogiwoogi)에 올린 일련의 글과 사진을 모은 이번 책은 페이스북을 통해 이미 많은 페친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왔다. 그동안 그가 올린 사진과 글에 매번 수백 명의 페친들은 댓글과 '좋아요'라는 호응을 해주었다.
기지촌 출신으로 너무 일찍 세상을 알아버린 박후기는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지금까지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실천문학사),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췽) 등 두 권의 시집을 냈고, 첫 시집으로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사진을 통해 '기억을 감아돌리고' 있다"고 고백하는 그의 사진은 대상을 포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대상을 통해 사유하고, 대상을 통해 통찰한다. 그의 사진을 통해 우리는 미진한 우리의 삶을 새롭게 바라다보게 된다.
나성률 기자 nas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