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 문학상'의 박후기 시인 첫 사진산문집, '나에게서 내리고 싶은 날'

나성률 기자

기사입력 2013-12-17 16:04


'신동엽 문학상' 수상자인 박후기 시인이 첫 사진산문집 '나에게서 내리고 싶은 날'(문학세계사)을 내놓았다. 이 산문집은 삶의 굴곡에서 찾아낸 감성적 순간을 포착한 사진과 그 결정적 순간의 단상을 글로 섬세하게 그려냈다.

그는 힘들고 남루한 생활 속에서 멀어지고 지워진 것들, 바삐 지나오며 우리가 잊은 것들, 그리고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들마저 탁월한 감성으로 우리 앞에 되살려 놓는다. 지난 10년간 시를 통해 처연한 경험의 미학을 보여준 박 시인은 이번 산문집에서 삶의 비애와 진실이 담긴 쓸쓸한 풍경들을 따스하고 투명하게 펼쳐 보인다.

글쓰기 이외에 사진, 노래, 연출 등 전천후 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박 시인은 우리의 보잘 것 없고 평범한 삶의 경험들을 렌즈를 통해, 그리고 시적인 짧은 산문을 통해 진한 울림과 아름다움으로 치환해낸다. '나에게서 내리고 싶은 날'은 현대적 삶에 물든 현대인들을 근원적인 시간과 공간 속으로 안내하며 인간의 한없는 고독을 예리하게 드러냄과 동시에 놓치지 말아야 할 정신의 단면을 충실하게 짚어내고 있다.

박후기는 생이라는 비극과 그 슬픈 장르를 상생의 사유로 담아낸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낮고 남루한 곳, 텅빈 곳을 향해 있다. 때문에 그의 프레임을 통해 관찰되는 세상은 슬프거나 외롭다. 때때로 비루하고 위태롭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그 대상들 속에서 삶에 대한 숙연한 의지를 포착한다. 그 속에서 삶은 우리의 생각만큼 고고하거나 아름답지 않지만, 그럼에도 버텨낼 수 있게 만드는 따스한 것들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

'더 늙기 전에, 더 늦기 전에 들판에 아주 작은 방 하나를 얻고 싶다.

사람들과 가까워지거나 멀어질 필요 없이, 나무들처럼 적당한 간격으로 서서

작은 방 안으로 해를 맞이하고 바람을 불러들이고 싶다.

해 저무는 들판에 서서 마침표 없는 허밍으로 훠이훠이 월세를 지불하고 싶다.'<늙기 전에, 늦기 전에> 중에서


글쓰기로 시작해 사진과 음악, 무대 연출과 그림 등 다양한 예술 활동을 펼치며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는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인간'이다.

박후기는 '사진을 위한 사진'이 아닌 '인간을 위한 사진', '글을 위한 글'이 아닌 '인간을 위한 글'을 추구한다. 그의 글은 겸손한 언어와 비범한 환유를 통해 깊게 응시한 자만이 그려낼 수 있는 따스한 생의 진경을 펼쳐 보인다.

박후기 시인이 페이스북(www.facebook/hoogiwoogi)에 올린 일련의 글과 사진을 모은 이번 책은 페이스북을 통해 이미 많은 페친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왔다. 그동안 그가 올린 사진과 글에 매번 수백 명의 페친들은 댓글과 '좋아요'라는 호응을 해주었다.

기지촌 출신으로 너무 일찍 세상을 알아버린 박후기는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지금까지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실천문학사),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췽) 등 두 권의 시집을 냈고, 첫 시집으로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사진을 통해 '기억을 감아돌리고' 있다"고 고백하는 그의 사진은 대상을 포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대상을 통해 사유하고, 대상을 통해 통찰한다. 그의 사진을 통해 우리는 미진한 우리의 삶을 새롭게 바라다보게 된다.
나성률 기자 nas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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