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영화상] 청룡의 별들 어떻게 뽑았나…심사표 공개

김표향 기자

기사입력 2013-11-24 17:40 | 최종수정 2013-11-25 08:25



22일 서울 경희대학교 평화에 전당에서 열릴 예정인 제34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 앞서 심사위원들이 수상작을 심사하고 있다. 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3.11.22/


무려 4시간에 가까운 난상토론이었다. 어느 한 부문도 쉽게 결론나지 않았다. 어느 해보다 막강한 후보들이 두루 포진한 만큼 심사위원들의 고뇌는 시간이 갈수록 깊어져만 갔다. 시상식까지 불과 몇 시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행사 진행을 해야 하는 주최 측의 마음도 타들어갔다. 결국 올해도 트로피에 수상자 이름을 비워놓고 시상식이 끝난 뒤 이름을 새겨 주인에게 돌려주는 수밖에 없었다.

신인감독상 부문부터 격렬한 토론이 오갔다. 이 부문 심사에만 1시간이 걸렸다. 심사위원들은 전 부문 중 가장 어려운 심사라며 혀를 내둘렀다. 한 작품에만 상을 주기가 미안할 정도로 다섯 작품 모두 뛰어나다는 공통된 평가 속에 표심은 조금씩 엇갈렸다. 김병우 감독의 '더 테러 라이브'는 한정된 공간에서 하나의 캐릭터를 놓고 복잡한 이야기 구조를 긴장감 있게 이끌어간 노련함이 높이 평가됐고, 허정 감독의 '숨바꼭질'은 한국사회의 빈부격차와 소유 문제 등을 공포영화 장르 안에 거침없이 풀어냈다는 점에서 지지를 받았다. 결국 심사위원 9표 중 5표를 받은 김병우 감독이 3표를 받은 허정 감독을 누르고 수상자로 결정됐다. 비록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새로운 형식과 독특한 시각을 보여준 '연애의 온도'의 노덕 감독도 심사위원들의 칭찬을 받았다.

여우조연상 부문은 2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이 벌어졌다. 1차 투표에서 '소원'의 라미란과 '관상'의 김혜수가 각각 3표를 받았고, '설국열차' 고아성, '늑대소년' 장영남, '숨바꼭질' 전미선이 각각 1표씩 받으며 5명의 후보가 골고루 표를 나눠 갖는, 보기 드문 상황이 벌어졌다. 심사위원 9표 중 과반수인 5표 이상을 얻어야 수상이 확정되는 규정에 따라 결국 상위 득표자 2명을 놓고 2차 투표가 진행됐고, 무르익은 생활연기를 선보인 라미란이 7표를 받아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심사위원들은 주연급 배우임에도 조연 자리에서 영화에 힘을 더한 김혜수의 변신을 높이 평가하며 트로피를 안기지 못해 아쉬워했다.

'남우주연급' 노미네이트라는 얘기를 들었던 남우조연상 부문에선 '관상'의 이정재가 6표를 받아 수상자로 결정됐다. 이정재 또한 "주연급 배우가 조연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몫을 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5년 신인남우상(젊은 남자)과 1999년 남우주연상(태양은 없다)에 이어 14년 만에 남우조연상 트로피를 추가하며 마침내 연기상 부문 '트리플 크라운'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쟁쟁한 후보들 사이에서 표를 독식한 수상자도 나왔다.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의 여진구는 심사위원 9명 모두의 지지를 받았다. "여진구의 카리스마를 당해낼 수가 없다", "주변 배우까지 위협할 만큼 힘을 가진 배우다"라는 평가와 함께 단 5분만에 심사가 끝났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다른 후보들에게도 애정 어린 격려와 응원을 잊지 않았다. "'무서운 이야기2'를 이끌어가는 고경표의 연기 내공과 무한한 가능성이 놀랍다"고 했고, "서영주와 이현우의 무시무시한 잠재력이 기대된다"고 칭찬했다.

신인여우상 부문에서는 '돈 크라이 마미'에서 남보라가 보여준 힘 있는 연기와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 녹아든 정은채의 자연스러운 연기도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마이 라띠마'에서 이주민을 연기한 박지수에 좀 더 힘이 실렸다. 심사위원들은 "인물에 감정이입이 돼서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감정을 과잉하지 않고 영화를 이끌어가는 힘이 돋보였다", "전형적인 연기가 아니라 인물 안으로 들어가 실제처럼 표현했다"며 박지수의 등장을 반겼다.

충무로의 간판 얼굴이 모두 포진한 남우주연상 부문 심사가 시작되자 심사위원들은 "난제를 만났다"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황정민은 '신세계'를 통해 한 단계 도약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소원'의 설경구는 진정성 있는 연기로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실제 투표 결과도 박빙이었다. 결국 심사위원 8명의 표심은 황정민 4표, 설경구 4표로 나뉘었고, 네티즌 투표에서 1위를 한 황정민의 표가 더해져 결국 황정민이 수상자로 결정됐다. 설경구를 지지했던 심사위원들은 "남우주연상 부문을 재투표 하고 싶다"고 농담 삼아 말할 정도로 설경구의 수상 실패를 무척 아쉬워했다.

한효주의 여우주연상 수상 역시 쉽게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자연스러운 감정과 섬세한 표정 연기가 돋보였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배우로서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여배우의 발견이라 할 만하다"는 평가 속에 한효주는 쟁쟁한 선배들을 누르고 6표를 받았다.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 심사에선 심사위원들의 평가 기준이 대체적으로 일치됐다. 작품상은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사회에 어떤 가치가 있는가 하는 부분까지 심사에 고려됐다. 감독상은 영화적 완성도와 함께 감독이 자신의 생각을 얼마나 잘 풀어냈느냐에 무게를 뒀다. 결국 외국 배우와 스태프를 아우르면서도 감독의 세계관을 이야기 속에 힘 있게 녹여낸 봉준호 감독에게 감독상이 주어졌고, 드라마의 감동을 넘어 사회적 화두를 던진 '소원'에 최우수 작품상을 안겼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심사위원 명단

조혜정(교수 / 중앙대 예술대학원), 조진희(교수 /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노종윤(제작자 / 웰메이드필름 & 웰메이드스타엠 대표), 원동연(제작자 /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 김대승(영화감독), 민규동(영화감독), 김소현(뮤지컬배우), 김형중(스포츠조선 문화사업부 팀장), 네티즌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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