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일일극 '오로라공주'가 또 한 명의 배우를 하차시킨다. 18일 MBC측은 홈페이지를 통해 스포일러 임에도 불구하고,사전공지까지 했다. 오로라(전소민)의 어머니 사임당(서우림)이 죽음을 맞는다는 내용이다. 벌써 11번째다. '오로라공주'는 지금껏 박영규 손창민 오대규 변희봉 이아현 이현경 임예진 등 10명의 배우들이 죽거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드라마 안에서 비중따위는 무시된 지 오래다. 주연을 조연으로 조연을 주연으로 엑스트라를 주연으로 만드는 비상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 임성한 작가다. 남은 회차동안 도대체 몇 명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오죽하면 '서바이벌 드라마'라는 오명이 만들어졌을까.
|
임 작가의 작품에서 가족은 뒤틀린 관계로 묘사된다. 상식적인 가족 관계를 벗어나 친어머니가 시어머니 사이로, 동생의 약혼자가 내 남편으로, 언니와 동생이 올케 사이로 둔갑한다. 50%의 시청률에 육박하며, 인기를 끌었던 '인어아가씨(2002)'에서 주인공 아리영(장서희)은 자신과 어머니를 버린 친아버지가 새로 꾸린 가족에게 복수를 꿈꾼다. 이 드라마에서 아리영은 새어머니(한혜숙)의 뺨을 때리고, 배 다른 동생(우희진)의 애인까지 뺏는다. 아무리 파렴치한 아버지에 대한 복수라지만 죄 없는 동생의 남자까지 뺏는 설정은 비난을 유발했다. 이처럼 한 남자를 두고 자매 간에 싸움을 하는 설정은 '왕꽃선녀님(2004)'과 같은 임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도 이어졌다. 자매가 아니라 원수 지간이다.
임 작가의 첫 장편 드라마 '보고 또 보고(1998)'에서는 겹사돈이라는 설정으로 등장했다. 어려서부터 편애를 심하게 받아 온 얼굴도 예쁜 대학원생 금주(윤해영), 집에서는 미운 오리새끼지만 악바리처럼 살아 온 은주(김지수)는 인정 많은 검사 기정(정보석)과 끼 넘치는 장난꾸리기 노총각 기풍(허준호) 형제와 눈이 맞는다. 친자매가 동서 사이로 얽힌 것이다. 이 드라마는 그 해 최고의 인기를 끌었을지 몰라도 방송기자단이 선정한 '최악의 프로그램'에 선정되는 굴욕을 맛보기도 했다.
|
2005년에 방송됐던 '하늘이시여'에서는 버린 친딸에 계획적으로 접근해 며느리로 맞이하는 간 큰 어머니(한혜숙)가 등장한다. 또 계모의 동생, 즉 삼촌(조연우)이 조카 이자경(윤정희)을 흠모한다. 친어머니가 시어머니가 되고, 삼촌이 조카에게 연정을 품는 설정은 방송 시작 전부터 논란을 일게 했다.
김동철 심리케어 전문가는 "상식적이지 않은 것을 자꾸 보게 되면 어느순간 그것이 상식으로 판단될 수 있다. 무의식적으로 용인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라며 "부정적인 관계, 왜곡된 관계를 가족이라는 나와 가장 친밀하면서도 울타리가 돼 줄 수 있는 관계와 매치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그릇된 가족에 대한 인식을 심어줄 위험이 있다"며 경고했다.
임성한 작가가 노리는 것?
논란이 일면 일수록 시청률은 올랐고, 연장됐다. 그리고 임 작가는 돈을 벌었다. 1997년 MBC 단막극으로 데뷔했던 새내기 임 작가는 2013년 회당 원고료 3000 만원을 육박한다. 그 사이에 한류 콘텐츠는 발전을 거듭했고, 임 작가의 작품은 국내를 넘어 해외에도 방영된다. 케이블 방송에 재방, 삼방, 사방까지 나오며 임 작가는 재방료도 두둑히 챙겼다. 대한민국 1% 안에 드는 '작가 권력'의 핵심인 임 작가는 PD의 고유 영역인 캐스팅은 물론 대본과 관련한 사전 협의 따위는 없다. 연기 경력 30년 박영규 손창민도 하소연 한 번 못하고 극에서 하차시켰다. 홍보가 필요한 신인 배우들의 인터뷰까지 쥐락펴락 할 정도다.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이게 바로 임 작가가 원하는 바다. 논란이 일수록 시청률이 오른다. 지난 15일 작가 퇴출 운동까지 보도가 됐음에도 '오로라공주'의 시청률은 17.4%(AGB닐슨 코리아)로 자체최고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리고 이 주 드라마 전체 시청률 2위를 차지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논란이 일수록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드라마의 속성상 시청률엔 득이 된다는 계산이다. 임 작가의 노이즈 마케팅에 빠져들면 들수록 임 작가와 MBC의 배만 불리는 꼴이라는 것이다. 임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논란이 아니라 '무관심'일지 모른다.
김겨울기자 winte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