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림의 엄마꿈 인터뷰⑧]신의진,'도가니' 피해 아동들 모른 척할 수 없었죠

기사입력 2013-09-10 17:51 | 최종수정 2013-09-11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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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진 국회의원이 방송인 박경림에게 공지영의 '도가니'의 실제 모델인 인화학교의 피해자들 편에서 증언대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엄마'였기에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고 들려줬다. 사진제공=몽락 스튜디오

"두 아들 기르는 입장에서 이 일을 모른 척하면 벌받는다"

박-소아 정신과에서 일하면서 다른 아이들의 상처도 치료를 많이 해주셨죠. '도가니'의 피해 아동들의 심리 치료를 해주셨잖아요. 그때는 소설이 나오기도 한참 전이라 국민적 관심도 없었던 때였죠?

신-98년도에 의대 교수로 임용되고 그 아이들을 만나게 됐는데요.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아동 학대, 성폭력 등에 대해 다루는 법을 배웠거든요. 해외에서는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다뤄지더라고요. 당시에는 400명 정도 의과 대학 교수 중에 여자 교수가 딱 3명뿐이었어요. 남자 교수들은 아동 성폭력 문제를 마주하기 싫어했고, 산부인과 의사들이 치료를 해줘야 하는데 법원에 오가야 하니까 다들 꺼려했죠. 저도 이 문제를 맡아서 하면 일이 많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불현듯 '두 아들 기르는 입장에서 이 일을 모른 척하면 벌 받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아이들이 치료를 못 받고 돌아다니는 것이 더 문제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산부인과에서 아이들을 맡게 되면 법원에 오가고 일이 너무 힘드니까 안하려고 한거죠. 너무 기가막힌 일이죠. 그래서 일단 아이들 치료가 시급하니까 산부인과에 가서 내가 진단서나 법적 문제는 해결하겠으니 아이들 치료만 해달라고 싹싹 빌었죠. 그러면서 아동 성폭력과 관련한 일에 뛰어들게 됐어요.

박- '도가니'의 저자 공지영 작가가 방송에서 차마 책에 담을 수 없는 이야이가 너무 많았다고 하던데요. 실상은 어떤가요?

신- 진료를 하면서 다 봤잖아요. 책 내용은 실제 20분에 1도 안될 정도에요. 훨씬 더 심각한 수준입니다. 농아들이라 진술을 잘 못하니까 계속 증거가 불충분하다고만 하고요. 그러다보니 시간도 오래 걸렸죠. 끝까지 파헤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지난해 12월에 대선 기간으로 바쁠 때 의사의 입장에서 증언대에 섰었죠. 제가 안가면 의학적 증언을 해줄 사람이 없으니까요. 대변인으로서 당에는 미안했죠.

박- 아동 성폭력 문제가 얼마나 심각할 수 있는 건가요.

신- 성폭력은 영혼의 살인이에요. 특히 아동 성폭력은 아직 자신의 성 정체성도 모를 때 있는 일이라서 매우 위험하죠. 의사로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병은 낫게 해줄 수 있겠지만, 사춘기가 지나고, 월경을 한 뒤에 여성으로서 손상된 자존감이나 충격을 생각하면 안타까워요. 사실 성범죄 예방이 중요한데 우리 사회에서는 손도 못 대고 있어요. 단순히 가해자만 처벌하자는 목소리가 높은데, 그걸로 그치는 게 아니라 제도적으로 성범죄를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또 피해자를 끝까지 진료해주는 의료적인 문제도 꼭 해결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박- 아동 성폭력이 점점 심해지고 있나요.

신-네. 강도가 더 세지고 있는 추세에요. 가해자의 연령이 어려지고 있어요. 그런 점이 단순히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만으로 끝날 수 없다는 거죠.제도적인 부분이 필요하다는 건데, 의사 였을 때 가장 좌절을 많이 했던 부분이 도와주고 싶어도 이 부분이 막혀서 어려웠거든요. 예산이나 부서간 넘어야 할 장벽도 많고, 또 아동 성폭력과 관련해 여러 시각이 있어요. 어떤 분들은 아동 성폭력에 의학적인 진료를 하는데 있어서 '환자가 아닌데 치료를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보는 분들도 계신데요. 피해 아동의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더 많은 의료 인력이 투입돼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 너무 간과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안타깝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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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신의진은 의사에서 국회의원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엄마'이기 때문에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제공=몽락 스튜디오
"국회의원 된다니까 꼬마 환자들이 울고 난리가 났었죠."

박- 이야기를 넘어가서 신의진하면 유수의 의학 대학 교수이자, 베스트셀러 저자이기도 하고요. 이렇게 사회적 약자 편에 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신-그 부분이 제가 받는 오해인데요. 사실 대한민국 엄마로서 두 아들을 달고 여성 의사로 살아간다는 것, 정말 쉽지 않았어요. 철저하게 남성 위주의 의료계에서 아들 둘을 둔 엄마 의사가 얼마나 눈치와 좌절이 있었겠습니까. 엄마가 되는 순간 대한민국에서는 저자세로 만들어지더라고요. 철저하게 비주류로 살아왔죠.그러다보니 사회에 불만족스러운 게 너무 많더라고요. 학교 폭력 현장에 진료를 하러가면, 제대로 된 제도가 하나도 없더라고요. 오히려 가해자가 떵떵 거리는 모양이 기가 막히죠. 피해자를 치료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싸우는 대상이 학교라면 이해하시겠어요. 학교 측에 '교육청에 고발할거야'라고 말해야 피해자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러다보니까 최소한 아이들 관련한 부분, 여성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는 내 의학적 지식을 유용하게 쓸 수 있었으면 했어요. 마침 비례 대표 오퍼가 오더라고요. 그래서 그동안 안타까웠던 부분에 대해서 직접 나설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선택이 쉽더라고요.

박- 환자들이 많이 말렸을 것 같은데요.

신- 꼬마 환자들이 울고 난리가 났어요. 그때만 해도 국회에 폭력이 난무하는 그림이 많아서 '우리 선생님 맞는다'고 하더라. 다들 태권도부터 배우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3)편에 계속
 





정리= 김겨울기자 winte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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