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연석 "2% 부족한 외모, 채우고 싶지 않아요"

김표향 기자

기사입력 2013-07-09 08:00


사진제공=킹콩엔터테인먼트

영화 '전국노래자랑'을 제작한 개그맨 이경규는 유연석에게 "2% 부족한 미남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왠지 밍밍한 느낌에 그만 '풋' 하고 웃음이 터진다. 겉만 보면 유연석을 놀리는 말 같다. 하지만 속내는 좀 다르다. 결국 2%를 제외한 98%가 꽉 채워져 있다는 뜻일 테니까. 사실 이보다 더한 칭찬도 없다.

유연석에게 2% 부족한 외모는 크나큰 장점이다. 그 빈 곳에 어떤 색 물감을 칠하느냐에 따라 얼굴이 극과 극을 오간다. '건축학개론'에선 얄미운 강남오빠였고, '무서운 이야기'에선 사이코패스 살인마였다. 청춘의 성장통을 그린 '열여덟, 열아홉'과 '혜화, 동'에서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운 얼굴이었다. 그리고 최근 종영한 MBC '구가의 서'에서는 또 다른 얼굴을 꺼냈다.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이 날카롭게 벼린 칼날처럼 서늘했다. 천의 얼굴이라는 말은 이럴 때 써야 한다. "2% 부족한 외모라는 말, 저는 만족해요. 조각같이 잘 생겨도 부담스럽잖아요. 얼굴이 심심하니까 편안하게 받아들여 주시는 것 같아요. 쌍꺼풀이 없어도 되는 시대라는 게, 아주 운이 좋았죠. 앞으로도 2%를 채울 생각은 없어요. (웃음)" 이경규의 칭찬에 대한 유연석의 겸손한 소감이다.

'구가의 서'에서 박태서는 억울하게 역모죄로 몰려 멸문을 당했다. 아버지는 죽고 여동생 청조(이유비)는 기생이 돼 원수 조관웅(이성재)에게 능욕을 당했다. 굴곡진 삶이 반인반수 최강치(이승기) 못지않았다. 복수를 위해 이중첩자가 되어 조관웅과 대립할 땐, 그 긴장감에 숨이 멎을 듯했다. 유연석은 그런 박태서를 연기하며 연기의 희열을 느꼈다고 했다. "비극적인 상황으로 시작되니까 연기할 때 몸이 고되기도 했어요.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힘들지 않았어요. 오히려 내가 극에 빠져들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전율을 느꼈어요. 집중력도 좋아졌고요."

그는 청조를 구하기 위해 친구 최강치를 배신했다가 이후에 주먹다짐을 하며 눈물로 화해하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상대에게 몰입이 잘 돼서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담여울 역의 수지도 앞서 '건축학개론'에서 한차례 만났던 터라 편하게 연기했다. 주연배우 중엔 맏이였지만 나이를 내려놓고 또래처럼 친하게 어울렸다. 조관웅 역의 이성재에겐 특히 고맙다. 자신의 얼굴이 카메라에 잡히지 않을 때도 유연석이 감정을 100%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맞은 편에서 더 열심히 연기를 해줬다. "제가 감당해야 할 몫이 있으니까 캐릭터로서 조관웅에게 지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했어요. 하지만 실제로 이성재 형님은 너무나 위트 있고 다정다감하신 분이죠. 함께 연기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탄탄한 이야기를 든든하게 떠받친 배우들 덕분에 '구가의 서'는 큰 화제와 인기를 모았다. 영화에서와 달리 드라마 쪽에선 아쉬웠던 유연석의 인지도도 크게 올랐다. '구가의 서'와 비슷한 시기에 SBS 예능 프로그램 '화신'에 출연한 것도 도움이 됐다. 요즘도 가끔 지하철을 타곤 하는데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한다.

2003년 영화 '올드보이'의 유지태 아역으로 데뷔해 '구가의 서'를 만나기까지 연기 생활 10년. 그동안 유연석의 행보는 범상치가 않았다. 스크린에선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가리지 않았고, 일일드라마, 미니시리즈, 주말드라마, 시트콤, 때론 막장드라마에도 얼굴을 비췄다. 그야말로 장르 불문. 특정 분야를 고집하지도, 역할의 비중에 좌우되지도, 그렇다고 생각 없이 작품을 고르는 것 같지도 않은데, 어쩌면 이렇게 필모그래피가 다채로울 수 있을까. "20대엔 다양한 작품을 해보자는 생각이 있었는데, 운이 좋게 기회가 주어졌어요. 그게 저에겐 재산이 된 것 같아요. 다양한 장르를 경험하면서 각 장르의 장단점도 알게 되고 연기 방식의 차이점도 알게 됐어요. 그러면서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죠. 그 차이를 몸으로는 알겠는데 말로는 너무나 막연해서 표현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유연석은 지금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구가의 서' 촬영 중에도 수업에 참여했다. 연기에 대한 막연한 생각을 구체화하고 헛헛했던 느낌을 채우고 싶었다고 한다. 주목받는 '연기파' 배우임에도 연기실기를 전공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나중엔 후배들에게 매체 연기를 가르쳐주고 싶은 바람도 갖고 있다.

오는 9월엔 tvN '응답하라 1994'로 돌아온다. 경남 진주 출신이라 사투리 걱정은 없다. 그는 "그동안 작품에서 일방적인 외사랑만 했는데 쌍방향 사랑도 해보고 싶다"며 수줍게 웃었다. 뛰어난 연기력과 비교해 강력한 '한방'이 없었다는 평가도 이번엔 확실히 날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스타성에 중점을 두고 연기하진 않았어요. 여러 캐릭터를 연기하다 보면 내 옷을 입은 것처럼 딱 맞아떨어지는 캐릭터를 만나게 되겠죠. 그러면 화학작용도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해요."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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