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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시카고'의 최정원, "연기란 나를 드러내는 작업"

김형중 기자

기사입력 2013-07-07 15:17


◇뮤지컬 '시카고'에서 벨마 켈리 역을 열연하고 있는 배우 최정원. 그녀는 "나를 버리니까 코미디가 사는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

뮤지컬배우 최정원(44)의 활짝 웃음은 보기에 참 좋다. 그 미소엔 신비한 힘이 있다. 장맛비를 뚫고 그녀가 나타나 특유의 웃음 한 방을 날리자 어두운 카페 안이 금새 환해졌다. 오랜만에 봤는데도 예전 모습 그대로다. 아니, 안 본 사이에 더 젊어진 것 같다.

"글쎄요? 딱히 비결은 없어요. 무대에 계속 서기 때문이랄까. 연기에 모든 걸 쏟아붓고, 커튼콜 때 박수 받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어요. 모든 스트레스가 쫙 풀려요. 오히려 공연을 하지 않으면 몸이 시들시들해져요.(웃음)."

'맘마미아!'를 할 땐 208회 전 공연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다 소화했다. 아픈 적도 있었지만 그 얘기를 꺼내는 게 자존심이 상했다. 신기한 것은 좋지 않은 컨디션에도 일단 무대에 서서 한 곡 부르고 나면 없던 에너지가 펄펄 솟아난다는 점이다. 그게 바로 배우의 끼다. "언제가 남경주 선배가 '넌 배우가 안됐으면 돗자리 깔았을 거다'라고 하더라고요." 천상 무대체질이다.

최정원은 요즘 국립극장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시카고'에서 벨마 켈리를 맡아 또다시 끼를 발산하고 있다. 벨마는 감옥에 갇혀있는 보드빌 배우. 나중에 들어온 록시 하트와 티격태격하면서 함께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다.

밥 포시의 안무로 유명한 블랙 코미디 '시카고'는 최정원에게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지난 2001년 국내 초연부터 12년의 세월을 넘어 무대를 지키고 있다. 초연 당시엔 록시 하트를 맡아 농익은 연기를 과시하며 그해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2007년부터는 후배들에게 록시를 넘겨주고, 벨마로 변신했다.

"처음엔 솔직히 조금 섭섭했어요.(웃음) '록시 더 할 수 있는데…' 라는 아쉬움이 당연히 들었죠. 하지만 집에 가서 대본을 꼼꼼히 다시 읽어보니 벨마의 매력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어요. 젊은 록시한테 샘도 나고 화도 나는데 표현을 못하는 게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최정원에게 연기는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내가 벨마가 될 순 없잖아요. 나는 최정원이니까요. 대신 내 안에 있는 벨마를 끄집어내야죠. 삶을 돌이켜보면서 내가 벨마와 비슷한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벨마와 동화되어 가는 과정이 연기라고 생각해요. 배우가 캐릭터를 마냥 쫓아가면 그거 엄청난 스트레스거든요."

수없이 많은 캐릭터를 통해 '인간 최정원'을 드러내려고 노력해왔기에 그녀의 연기엔 삶의 진실이 묻어있다. 공연을 보다보면 어느 순간 그녀는 벨마 켈리가 되어 있고, '맘마미아!'의 활달한 도나가 되어 있고, 비극적인 삶을 산 샹송 가수 에디뜨 피아프로 변해 있다.


◇뮤지컬 '시카고'의 한 장면. 사진제공=신시컴퍼니

최정원에겐 독특한 최종 점검법이 있다. 공연이 올라가기 직전, 집에가 방문을 걸어잠그고 침대에 눕는다. 머릿속으로 공연 시뮬레이션을 시작한다. 서곡부터 시작해 공연의 영상이 머릿속에서 실제 러닝타임과 똑같이 펼쳐진다. 자신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입체화해 관객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손 동작이 잘 못됐거나, 조명을 못 맞추거나 하는 것들이 속속들이 보여요. 마지막 단점들을 찾아내 보완하고 실제 무대에 오르죠."

언뜻 이해가 되지 않지만 뭐 그렇게 한다니 어쩌겠는가. 배우란 참 신기한 사람들이다.

최정원은 데뷔 후 줄곧 무대만 고집해왔다. 영화나 드라마 제의가 많았지만 재능을 더 발휘할 수 있는 곳은 무대란 생각 때문이었다. "솔직히 모르는 분야라 두려움도 있었어요"라면서도 "언젠가 기회가 되면 영화는 한 번 해보고 싶어요"라고 덧붙인다.

'똑같은 작품을 오랫동안 하면 지겹지 않을까?'라는 '우문(愚問)'을 던졌다. "대본이라는 게 희한해요. 읽을 때마다 다른 대사가 보여요. 어, 이런 대사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요. '어린 왕자'도 고등학교 때 읽었을 때와 나이들어 읽었을 때 느낌이 다르잖아요." 현명한 답이다.

'시카고'는 그야말로 배우의 역량으로 승부하는 작품이다. 무대전환도 없는 의상전환도 거의 없는 컨셉트 뮤지컬 스타일이다. 몸으로 대사를 전달하는 밥 포시의 안무도 쉽지 않다.

"연기는 핑퐁 같아요. 서로 공을 주고 받듯이 동료들과 호흡을 맞춰가야해요. 내가 튀려고 하면 오히려 작품이 망가지고, 나를 낮추면 작품이 살아나죠. 배우 최정원이 아니라 '시카고'란 작품이 돋보여야죠."

관록과 젊음을 하나의 얼굴에 동시에 지닌 야누스같은 배우가 최정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를 마치자 세차게 내리던 장맛비가 그쳐 있었다.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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