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 원빈(36)과 이나영(34). 신비주의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대표적인 케이스다. 사생활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졌고, 드라마나 영화 출연도 잦지 않았다. 각종 CF를 통해 잘 다듬어진 이미지를 시청자들에게 보여줄 뿐이었다. 물론 이 두사람에게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었다. 90년대에 데뷔한 연예인들에겐 신비주의가 미덕이었다. 그땐 그랬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다. 원빈과 이나영이 열애를 공식 인정한 3일. 누구나 축복해줘야 할 톱스타 커플의 탄생이었지만, 이들을 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바로 두 사람이 지겹도록 고수해온 신비주의 때문이었다. 원빈과 이나영은 자신들을 톱스타의 자리에 올려준 신비주의 때문에 도리어 발목이 잡혔다. 이제 신비주의의 수명은 끝났다.
|
원빈도 마찬가지. 각종 인터뷰를 통해 "낯 가리고 조용한 성격 때문에 생긴 오해"라며 자신은 신비주의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발언과 달리, 두 사람은 여전히 전형적인 신비주의 스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원빈은 인적이 드문 심야 시간을 이용해 경기도 분당에 위치한 이나영의 주상복합아파트를 방문했고, 집을 벗어나지 않은 채 밤을 지새우며 비밀 데이트를 즐겼다.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재빨리 남들의 시선을 피하는 모습은 007 작전을 방불케 했다. '하울링'(2012년 2월) 이후로 출연작이 없는 이나영과 '아저씨'(2010년 8월) 이후로 출연작이 없는 원빈은 아직도 브라운관이나 스크린 속에서만 존재하는 신비주의 스타다.
'신비주의의 한계'에 두 손 들었다
3일 오전 두 사람의 열애설이 불거진 후 두 사람의 소속사 측의 대응은 '빵점'이었다. 얼떨결에 한 매체의 확인 전화를 받은 소속사 대표는 전후 따지지도 않은 채 "절대 연인 관계가 아니다"라고 일단 잡아떼고 봤다. "친한 오빠 동생 사이"라는 흔하디 흔한 해명까지 내놨다.
이후 소속사 측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관계자들은 전화를 꺼놓고 받지 않았다. 하지만 세간을 들썩이게 하는 열애설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신비주의로 일관하는 원빈과 이나영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소속사 측은 마지 못해 공식 입장을 내놨다. 열애설 보도 후 약 세 시간 뒤에 이들이 내놓은 입장은 "원빈과 이나영이 같은 소속사이다 보니 작품이라든지 광고 관련해서 자주 만나며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됐고 최근에 자연스럽게 가까운 사이로 발전하게 됐다. 두 사람 모두 조심스럽게 시작하는 단계이니 애정을 갖고 지켜봐 달라"는 게 전부였다.
두 사람의 열애 스토리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는 두리뭉실한 입장 표명 뿐이었다. 뒤늦게 '신비주의의 한계'를 느끼고 두 손, 두 발을 다 들게 된 셈이지만, '신비주의 스타' 원빈과 이나영의 잘 다듬어졌던 이미지는 이미 손상을 입은 뒤였다.
네티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원빈과 이나영의 열애 사실이 알려진 뒤 네티즌들 사이에선 두 사람의 열애를 예언한 '성지글'이 뜨거운 화제를 모았다. 두 사람이 영화관과 테니스장에서 데이트를 즐겼다는 목격담을 담은 글들이 이미 지난해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왔던 것. 네티즌들은 원빈과 이나영의 열애 사실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던 셈이다. 이전에도 박지성-김민지 커플의 열애를 비롯해 다양한 연예계 스타 커플들의 열애를 예언한 '성지글'들이 관심을 받곤 했다.
이젠 꽁꽁 숨겨도 소용이 없는 시대란 얘기다.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지켜보는 눈과 이야기를 퍼 나를 수 있는 도구들이 너무 많다. 몇몇 기자들의 눈을 피할 수는 있어도 전국민을 속일 순 없다. 인터넷 기사보다 더 빨리 퍼져나가고, 더 큰 파급력을 갖는 것이 SNS다.
이렇다 보니 신비주의가 통할 리가 없다. 애초에 신비주의를 전면에 내세웠던 연예인들도 '전략 수정'에 들어가야 할 판. 결혼 후 신비주의를 벗어던지고 활발한 활동을 펼치면서 제 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전지현이 성공적인 케이스다. CF에만 출연하면서 신비주의 스타로 이름을 날렸던 과거에서 벗어난 전지현은 영화 '도둑들'과 '베를린'을 통해 배우로서 인정을 받았다. 연예계 데뷔 16년차가 된 원빈과 데뷔 15년차가 된 이나영 역시 다를 게 없다. 이제는 신비주의를 벗고, '진짜 배우'로서 인정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정해욱 기자 amorr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