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누군가에게 고백을 받으면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나요?" 송승헌이 불쑥 던진 질문에 인터뷰 자리는 잠시 토론장이 됐다. "꼭 그렇지는 않다" "그럴 수도 있다"는 얘기들이 바쁘게 오갔다. 잠시 후 그가 조용히 한 마디 보탰다. "음…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동시에 사랑하게 되는 경우를 만나기란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동석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인의 연인' 송승헌에게서 사랑이 어렵다는 고백을 듣게 되다니 뜻밖이었다. "당연히 주변에 여자가 많을 거라고 생각하시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여자의 심리도 잘 몰라서 여자친구에게 타박도 듣곤 했어요. 돌이켜보면 '저 사람이 내 여자친구다'라고 말할 수 있는 연애는 군 입대 전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아요. 10년 정도 됐죠."
송승헌은 항상 자신이 먼저 마음 가는 사람을 만났다고 했다. 사랑받는 것보다 사랑을 주는 스타일이다. 상대방이 끝까지 마음을 받아주지 않아서 결국 사랑이 이뤄지지 않은 적도 있다. 그런 만큼 누군가와 교제를 할 때는 그 사람과 결혼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확신을 가졌다. "첫 여자친구를 만났을 때 눈에 불꽃이 튄다는 느낌을 처음 받았어요. 만화의 한 장면처럼 찌릿찌릿 전기가 통했죠. 당시 그 친구에겐 남자친구가 있었는데도 제가 2년 동안 쫓아다녔어요. 사실 그 친구도 첫눈에 저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그 경험 때문인지 저는 아직도 그런 설렘을 기다리는 것 같아요. 그 사람만 생각하면 배도 안 고프고 피곤하지도 않죠. 남자는 사랑하면 그렇게 돼요."
사진제공=스톰에스컴퍼니
사랑에 모든 걸 쏟아붓는 송승헌에게 MBC '남자가 사랑할 때'의 한태상이란 인물이 잘 어울렸던 건 그래서였나 보다. 거칠고 외로운 인생을 살아온 남자가 처음으로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변해가는 모습, 그리고 그 여자의 배신 앞에 분노하고 절망하는 모습에 많은 시청자들이 감정이입을 했다. 한태상의 맹목적인 순정에 '호구가 사랑할 때'라는 우스갯소리도 들렸다. 송승헌은 "사랑에 빠진 남자의 변화를 표현하면서 연기의 재미를 느끼고 싶었다"고 했다. 한태상이 서미도(신세경)의 부탁으로 마스크팩을 붙이고 '셀카'를 찍는 장면이나, 여자가 좋아하는 행동들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는 장면은 방송 후에 화제가 됐다. 송승헌은 쑥스러운 웃음으로 화답했다. "사실 대본을 보면서 한참 웃었어요. 저도 과거엔 한태상처럼 인터넷 검색도 하고, 여자친구 생일에 카페를 빌려서 풍선 불어놓고 깜짝 이벤트도 해봤거든요."
물론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점도 있다.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됐다는 서미도를 끝까지 붙잡는 한태상과 달리 송승헌은 그녀를 보내줬을 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두 사람의 재결합을 암시하는 해피엔딩을 놓고도 고민이 많았다. 한태상이 죽거나 정신병원에 가게 되는 비극적 결말도 여러 예시 중에 있었지만, 서미도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한태상이 폭주하는 건 비상식적이라는 데에 연출자와 송승헌이 공감대를 이뤘다. "한태상은 외도로 집을 나간 어머니 때문에 여자의 배신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인물이에요. 대본의 지문에는 분노조절 장애가 있다는 내용도 있었죠. 한태상의 성격적 장애가 충분히 표현됐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들어요."
사진제공=스톰에스컴퍼니
송승헌은 한태상에 대한 애정보다는 상대역인 서미도 캐릭터에 대한 미안함을 크게 갖고 있었다. 한태상에게 동정표가 쏠리면서 서미도에게는 '어장관리녀'라는 오명이 따랐기 때문이다. 판타지가 아닌 현실 속에서 사랑을 하는 서미도 입장에선 억울할 만하다. "저 때문에 미도가 욕을 먹는 것 같아서 미안하더라고요. 연기를 하면서 힘들었을 텐데 밖으로 내색을 안 하는 세경씨에게 참 고마웠어요. 세경씨는 굉장히 정신력이 강한 배우예요. 정말 대견해요."
송승헌은 이번 작품에서 보여준 자신의 연기에 51점을 줬다. 좀 야박한 것 아닌가 싶은데 그는 '플러스 1점'에 좀 더 특별한 의미를 뒀다. 몸에 밴 기존의 연기 스타일을 버리려 노력한 것에 대한 평가다. 그래선지 이 작품을 통해 그의 연기는 한층 담백해졌고 편안해졌다. "그동안 연기력보다는 외모에 대한 얘기를 더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결국 제가 짊어져야 할 숙제죠. 기존의 인식을 깨기 위해선 캐릭터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한번은 연쇄살인범 캐릭터를 제안 받은 적도 있는데 결국 포기했어요. 하지만 앞으로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시도를 많이 하고 싶어요. 평생 청춘스타 이미지로 살 순 없잖아요. 멋있게 나이 들어가는 배우가 돼야죠. 리처드 기어처럼요."
중년의 멜로 연기를 꿈꾸는 그에게 '남자가 사랑할 때'는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 "역시 사랑은 어렵다는 것, 그리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저도 소박하고 평범한 가정을 꾸리는 게 꿈인데, 정말 쉽지가 않네요."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