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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안방극장에서 왕들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여러 편의 사극이 방영되고 있지만 왕의 존재감은 어느 때보다 미미하다. 왕이 주인공 자리에서 밀려난지 오래일 뿐만 아니라 왕조사를 다룬 작품들은 번번이 시청률에서 쓴 맛을 보고 있다.
반면 궁궐 밖 이야기를 그린 사극들은 승승장구하는 중이다. MBC '구가의 서'는 15% 안팎의 시청률로 동시간대 정상을 지키고 있고, 이에 앞서 '마의'도 20%에 가까운 시청률로 월화극 왕좌를 장기집권했다. '구가의 서'는 반인반수 캐릭터를 내세운 판타지 사극. '마의'도 천민 출신 마의에서 어의가 된 실존인물 백광현이 주인공이다. 시청률은 비교적 아쉽지만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는 KBS2 '천명'은 아픈 딸을 살리기 위해 사투를 펼치는 조선판 도망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마의'에는 현종이, '천명'에는 인종이 등장하지만, 왕조사가 중심은 아니다. 지난해 신드롬을 일으킨 MBC '해를 품은 달'도 배경만 궁궐일 뿐 역사와는 상관 없는 판타지 사극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극=왕조사'라는 공식도 이젠 옛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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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관계자는 탈권위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한 가지 원인을 찾았다. 이 관계자는 "사회 구조가 수평화되면서 제왕적 카리스마가 더 이상 호소력을 가질 수 없게 됐다"며 "사극 속 왕들의 위엄있는 모습이 예전만큼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또 "지난해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것에는 대선을 앞두고 바람직한 지도자를 꿈꾸는 대중들의 열망이 반영돼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사회적 이슈도 없어서 왕조 중심의 사극이 더더욱 눈길을 끌기 어려워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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