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드라마 '돈의화신' 19회에서, 이차돈(강지환)이 이강석이란 사실을 지세광(박상민)이 알아냈다. 때문에 이차돈이 계획한 지세광과 권재규(이기영)가 물어뜯는 청문회 폭로전은 성사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세광은 권재규에게 이차돈이 이강석이란 사실을 알렸고, 권재규로 하여금 이강석을 살해하도록 유도했다. 이에 권재규는 살인청부업자를 동원했고, 이차돈이 탄 택시를 레미콘으로 밀어버렸다. 그것도 두 차례나. 과연 이차돈은 죽었을까.
이차돈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시청자는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돈의화신은 24부작이고, 아직 5회나 남았기 때문이다. 다만 이차돈의 부상은 어느 정도 수준이며, 당면한 위기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차돈=이강석'이란 사실을 지세광-권재규 등이 알게 된 이상, 이차돈은 물론이고 지세광의 다짐처럼, 이차돈을 돕는 주변인물인 복화술(김수미)-복재인(황점음)모녀, 양구식(양형욱)-홍자몽(이지현) 등도 동반 위기에 노출됐다.
또한 이차돈이 지세광일당에게 복수하는 것보다, 누가 자신을 의도적으로 살해하려 들었는지, 혹시 자신이 이강석이란 사실이 지세광 등 상대방에게 발각된 건 아닌지 복기하는 과정부터 거친 후, 범인 추적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지세광일당이 자신의 정체를 파악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면, 이차돈은 그가 계획했던 복수의 시나리오를 전면 파기하고 새로운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숙제를 안는다.
하지만 시청자입장에선 남은 5회를 더욱 흥미롭게 지켜볼 계기가 됐다. 드라마 '돈의화신'을 극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드라마가 늘어지기 쉬운 타이밍에 지세광이 이차돈의 정체를 파악함으로써, 차근차근 단계를 밟으며 치밀하게 진행되던 이차돈의 복수계획이 전면적으로 수정되고, 제 3의 길을 모색하게 만든 것. 드라마를 미궁속으로 빠뜨리는 전개. 감탄사를 부른다.
그렇다고 해서, 이차돈이 지세광과 권재규를 이간질시키기 위해 공들여 진행한 복수방법이 실패했는가. 그것도 아니다. 더 이상 지세광과 권재규는 서로를 신뢰하지 않는다. 특히 지세광의 경우, 이차돈을 죽이기 위해 권재규에게 거짓말을 했다. 이차돈이 권재규의 비리가 적힌 비밀장부 원본과 청문회 녹음파일을 가지고 있다고 말이다. 출세욕이 강한 권재규에겐 치명타로 날개없는 추락을 예고하는 증거들. 때문에 권재규가 이차돈을 살해하려 했다.
그런데 사실 권재규의 비밀장부 원본과 청문회 녹음파일은, 이차돈이 아닌 지세광이 가지고 있다. 즉 지세광은 권재규를 이용해 이차돈을 살해하도록 유도했고, 권재규는 비밀장부로 대변되는 기존 비리에 살인교사혐의가 추가된 셈이다. 국회의원이 되고 더 높은 곳에 오르려는 지세광으로선, 같은 야망으로 걸림돌이 된 권재규를 한방에 회생불능 상태로 추락시킬 카드를 손에 쥔 것이다. 지세광은 더 이상 권재규를 신뢰하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언제든 자신에게 칼을 꽂을 수 있는 배신자로 기억될 뿐. 과연 지세광은 어떤 선택을 할까.
그래서 이차돈이 지세광-권재규를 이간질시키려 한 복수계획은 절반의 성공을 낳는다. 그들의 신뢰관계가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무너졌기 때문이다. 지세광이 어떤 말을 해도 은비령(오윤아)이 더 이상 그를 믿지 않는 것처럼. 지세광을 증오하고 복수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지세광과 권재규는 '이차돈 제거'라는 공통분모를 제외하면, 언제든 상대를 몰락시킬 수 있다. 그리고 결정적 키는 권재규가 아닌 지세광이 쥐고 있다.
사실 이차돈이 계획한 '이간질'은 정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참이 아닌 '거짓'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인이 이강석임을 숨긴 이차돈의 '이간질' 복수는 절반의 성공밖에 이루지 못했는지 모른다. 나머지 절반은 지세광에게 넘긴 채. 덕분에 지세광은 비밀장부와 살인교사라는 '진실'로 권재규를 밑바닥까지 추락시킬 힘을 얻게 됐으니, 아이러니다.
'돈의화신' 19회를 보면서, '과연 정의란 무엇일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본다. 정의는 선(善)이다. 참이다. 진실이다. 그리고 정의는 우리가 사는 모든 언행에 숨쉬고 있다.
이차돈(강지환)은 복재인(황정음)을 사랑하기 시작했으면서도 속내를 털어 놓지 못했다. 지세광일당을 향한 복수로 인해, 자신의 미래가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재인이 권혁(도지한)과 만나는 건 반대했다. 훼방을 놓았다. 그 이유에 대해 이런저런 거짓말을, 변명을 해가면서. 하지만 복재인은 직감했다. 이차돈이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했음을. 그래서 맘에 없는 맞선도 보면서 이차돈의 질투를 유발했다. 일종의 이간질과 비슷한 전략이다.
더 이상 속내를 감추기 힘든 이차돈은 복재인에게 키스를 시도했다. 하지만 복재인은 거부해 미수로 그쳤다. 그녀가 튕겼다. 자신의 진심을 숨기고 '거짓' 행위를 했다. 잠시 즐겼다. 그동안 자신의 속을 태운 이차돈에게, 너도 한 번 당해보라는 식으로. 때문에 이차돈은 오해하고 상처받았다. 복재인에게 전화를 걸어 진심을 고백하려 했다. 복재인도 진심을 받아줄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사고가 났다. 이차돈과 복재인은 서로의 진심을, 사랑을 서로의 입을 통해 밝히기도 전에 묻힐 상황이 됐다. 결국 복재인의 질투작전은 절반의 성공을 낳은 셈이다.
정의란 그런 것이다. 서로 사랑한다. 참이다. 진실이다. 하지만 밝히지 않으면 묻히고 마는 것. 인간 내면의 갈등, 외부의 압력 등에 의해 얼마든지 왜곡되고 묻힐 수 있는 것. 정의라는 것은 선, 진실로 설명될 만큼 단순한 개념이다. 하지만 인간이 순수하게 정의를 구현한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다. 복잡하다. 신이 아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강석임을 숨긴 채 이차돈이 진행한 이간질 복수가, 복재인의 질투작전이 절반의 성공밖에 이루지 못한 건, 진실로 향하는 과정에 '거짓'이 동반됐기 때문은 아닐까.<한우리 객원기자, 대중문화를 말하고 싶을 때(http://manimo.tistory.com/)>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