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작 최대 미션, "2주차를 넘겨라"

백지은 기자

기사입력 2013-03-17 08:04 | 최종수정 2013-04-01 08:33



부익부 빈익빈이다.

'한국영화 제2의 르네상스'란 말처럼 극장 비성수기라 불리는 1~2월부터 신작이 쏟아졌다. 수많은 작품이 대중과 만났지만, 결과는 엇갈렸다. 한국 휴먼 코미디 장르 사상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역대 박스오피스 흥행 순위 3위에 랭크된 '7번방의 선물'을 필두로, 700만 고지를 넘어선 '베를린',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도 300만 관객을 동원한 '신세계' 정도를 제외하면 흥행에 쓴 맛을 봤다.

1월 개봉한 '남쪽으로 튀어'는 최해갑(김윤석) 가족의 파란만장 도전기를 그린 작품. 주민등록 번호를 물어보면 "그렇게 긴 걸 어떻게 외우냐"고 화내고, 국민의 의무를 강요하면 "그럼 나 오늘부로 국민 안해"라며 맞서는 독특한 최해갑 캐릭터와 김윤석 오연수 등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 호흡 등으로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다. 그러나 '7번방의 선물'과 '베를린'에 밀려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4위에 만족해야 했고, 2주차가 지난 뒤에는 쓸쓸히 퇴장해야 했다.


2월 14일, 밸런타인 데이를 맞아 야심차게 개봉했던 '남자사용설명서' 역시 마찬가지. 남자사용설명서라는 솔로부대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소재와 이시영-오정세의 코믹 연기로 개봉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또 시사회 이후에는 포털사이트 평점 8점대 이상을 기록하며 흥행 청신호를 키는 듯 했다. 하지만 이 작품도 마찬가지로 '7번방의 선물'과 '베를린', '신세계'의 돌풍을 이겨내지 못하고 개봉 2주차에 고배를 마셨다. 상영관 자체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관객들 사이에선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 '상영관 찾기가 어렵다', '어떻게 하루에 두 타임만 상영할 수 있나'라는 등 볼멘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처럼 개봉 2주차를 기점으로 명암이 엇갈리면서 관계자들 사이에선 "2주차를 잘 넘겨야 한다"는 탄식도 나오고 있다.

아카데미 특수를 노린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3D 액션 대작 '헨젤과 그레텔:마녀사냥꾼 3D' 등 '물 건너 온' 작품들도 대거 쓴 맛을 봤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뭘까? 단순히 상영관 수의 문제는 아니다. 상영관 수는 시사회 전후로 배급사 제작사 극장 측이 작품 규모와 투자 비용, 감독, 배우 등 여러가지 조건을 고려해 결정된다. 이후 VIP 시사회 등이 끝나면 관객 반응을 보고 다시 상영관 수를 조정한다. 개봉 1주차에는 합의된 사항을 고수하지만 2주차에 접어들면 박스오피스를 근거로 한 흥행 성적과 관객 분위기를 바탕으로 배급사와 재협의, 상영관 수를 조정한다. 즉 2주차 안에 관객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사라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더욱이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 이전엔 소위 '뒷심'을 발휘하는 대기만성형 작품도 종종 등장했다면, 요즘엔 한 번 삐끗하면 그대로 사라지는 추세다. 이런 트렌드를 만드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역시 SNS. CGV 측 관계자는 "2009년 이후로 달라졌다. 영화 주 타겟층은 25-35 관객이다. 25-35를 공략하지 못하면 10대층으로 관객층을 확대할 수 없다. 이들은 SNS에 민감하다. 그런데 SNS가 활성화되면서 감상평이 광범위하게, 실시간으로 전해진다. 1주차에 특히 빠르게 움직인다. 입소문에 따라서 관객들의 움직임이 확연하게 달라진다. 즉 SNS를 통해 흥행이 결정되는 속도가 빨라지고 더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고 밝혔다.

관객 호불호가 분명해졌다는 것도 한몫 했다. 한 홍보사 관계자는 "예전엔 초반 마케팅과 언론 리뷰 등에 관객이 움직이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엔 그렇지 않다. 작품 수가 늘어났고, 아직은 소수지만 다양성 영화들도 주목받고 있다. 관객 각자의 취향이 분명해졌고, 수준이 높아졌다. 외부 의견보다는 자신의 느낌에 따라 움직이는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포털사이트 평점이나 언론 평가가 좋았다고 해도 막상 코드에 맞지 않아 외면당한 작품들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마의 2주차'를 넘길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코드'를 읽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CGV 측 관계자는 "MBC '일밤-아빠! 어디가?'의 인기를 봐도 그렇지만 패밀리 코드가 유행이다. '7번방의 선물'은 그 코드에 적중한 작품이다. 그 시기의 코드를 어떻게 읽어내는 지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탄탄한 스토리가 갖춰져야 하는 건 기본이다. 관계자는 "이전엔 내용 없이 그저 웃기기만 한 작품도 흥행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엔 그렇지 않다. 똑같은 조폭 영화라도 과거 흥행했던 '가문의 영광'의 정준호, 김정은 캐릭터가 웃겨서 인기를 끌었다면, 황정민의 '어이 브라더'나 하정우의 '살아있네'가 유행어가 된 건 그 캐릭터의 매력 때문이다. 그런 차이다. 액션 영화도 무작정 총격전과 추격전만 나오면 인기를 얻는 게 아니라 '베를린'처럼 레이어가 촘촘한 작품들이 성공한다. 호불호가 갈리고 논쟁의 여지가 있더라도 구성이 탄탄하고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영화들이 사랑받는다. 막장 코드나, 스토리 없이 재미에만 집중한 작품들은 더이상 관객에게 어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백지은 기자 silk781220@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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