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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당거래'서 파생된 '베를린'과 '신세계'

박아람 기자

기사입력 2013-02-25 17:44





2013년 벽두 극장가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남성적인 색채가 진한 영화 두 편이 있다. 바로 '베를린'과 '신세계'이다. '베를린'은 제목 그대로 베를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남과북의 첩보원들간의 치열한 추격전, 그리고 북한 내부의 권력다툼이 맞물리면서 예상치 못한 암투가 벌어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신세계'는 조직형 범죄조직 골드문 그룹의 후계자 지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조폭들간의 대결 그리고 그 과정에 개입하여 자신의 입김대로 골드문 그룹을 쥐락펴락 하려는 경찰들과 조폭들간의 치열한 혈투를 다루고 있다.

영화의 겉포장만 살펴보면 두 영화는 다른 성격의 영화로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두 영화는 같은 뿌리에서 파생되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뿌리는 바로 2010년에 개봉했던 영화 '부당거래'이다

국민을 경악하게 만들었던 연쇄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권과 경찰, 그리고 스폰서가 얽힌 부당거래.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재계와 정치권, 검찰 그리고 경찰이 얽힌 또 다른 부당거래들이 파생되면서 보여지는 현대 사회의 추악한 뒷모습을 가감없이 그린 영화 '부당거래'는 2010년 청룡영화상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재미와 작품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영화였다.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가급적이면 두 작품을 보신 분들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영화 '베를린'과 '신세계'에서 보여지는 '부당거래'

그렇다면 '부당거래'가 어찌하여 영화 '베를린'과 '신세계'의 뿌리라는 근거가 성립되는 것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 '베를린'과 '신세계'에서 보여주는 핵심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화 '베를린'은 북한 권력층의 변화(새로운 지도자의 등장)에 의해 자신들의 기득권에 위협을 느낀 북한 군부의 동중호(명계남)-동명수(류승범) 부자는 베를린 주재 북한 대사관의 이권을 쟁취하기 위해 아랍 테러조직과 부당거래를 통한 음모를 꾸민다. 북한 권력층 사이에 벌어지는 암투는 영화 '부당거래'에서 보여지는 대한민국 권력층의 암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습이다. 또한 대한민국 지도부는 북한 지도부와 정치, 외교적 '부당거래'를 통해 베를린에서 탄로난 북한 군부 동중호 부자의 치부를 덮어주는 대신 전향을 택한 표종성(하정우)을 은밀히 제거하려 한다.

영화 '신세계'에서는 조폭들이 장악한 골드문 그룹의 후계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입맛대로 골드문 그룹을 쥐락펴락 하기 위한 경찰의 적극적인 개입이 진행된다. 일명 '신세계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강과장(최민식)은 경찰들의 입맛에 맞는 골드문 그룹의 서열 2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반 은퇴상태'인 장수기(최일화)를 전면에 내세우려 하고, 동시에 골드문 그룹의 실세들이자 대립관계에 놓여있는 정청(황정민)과 이중구(박성웅) 세력 간의 혈투를 조장하여 자연스럽게 그들의 세력을 무장해제 시킨다.

영화 '베를린'과 '신세계' 모두 각기 다른 욕심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 또는 세력들 간에 '부당거래'가 서슴없이 자행되면서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서 선과 악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대 사회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부당거래'에 빅엿을 날리는 영화 '베를린'과 '신세계'의 메인 캐릭터들 - 변하지 않는 현실에 먼지같은 일탈을 시도하다

영화 '부당거래'의 결말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숱한 부당거래를 일삼는 이들 중에 결국 힘을 가진 자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일상을 살아가고 또 다시 새로운 부당거래를 꿈꾼다는 모습이 지극히 현실적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베를린'과 '신세계'는 더 이상의 '부당거래'를 용납하지 않는다. 바로 메인 캐릭터들의 변화를 통해서이다.

영화 '베를린'에서 집요하게 북한 첩보원들을 추격하는 대한민국 국정원 요원 정진수(한석규)는 사건이 마무리 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과 북한 간의 부당거래로 인해 전향을 선언한 표종성(하정우)의 생명에 위협이 생기게 되었음을 알게 되고 의도적으로 그를 풀어주고 도주하게 한다. 도주하는 대신 복수도 꿈꾸지 말고 그저 먼지처럼 살라고 한다. 보통사람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자신의 아내 련정희(전지현)을 잃고 북한 내부에서 스파이로 누명까지 뒤집어 쓴 표종성(하정우)은 새로운 복수를 꿈꾸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한다. 기존의 신분을 제거하고 새로운 새로운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 설정은 영화 '본' 시리즈의 코드를 연상하게 한다.

영화 '신세계'에서도 8년 동안 골드문 그룹에 잠입하여 철저하게 강과장(최민식)의 통제와 감시 하에 살아왔던 이자성(이정재)은 자신을 친형제처럼 아껴주던 정청(황정민)이 목숨을 잃게 되면서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다. 그리고 정청이 그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독하게 살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자성(이정재)은 경찰 강과장(최민식)과 '부당거래'를 통해 골드문 그룹을 장악하려는 장수기(최일화)와 강과장(최민식)과의 또 다른 '부당거래'를 통해 정청(황정민) 제거를 교사하고도 증거 불충분이라는 명목으로 풀려난 이중구(박성웅)에게 처절한 응징을 가한다. 또한 자신이 경찰이라는 신분을 알고 있는 유이한 두 사람 강과장(최민식)과 고국장(주진모)에게도 정청이 고용했던 연변거지들을 활용하여 법의 범위를 넘어선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응징을 가한다. 이자성(이정재)의 선택과 행동의 결심을 단행하는 과정의 발단은 바로 정청(황정민)과의 피보다도 진한 '의리'였다. 이자성이 보여주는 응징의 과정은 영화 '영웅본색'의 코드를 연상하게 한다.

영화 '베를린'과 '신세계' 모두 '부당거래'가 영화를 관통하는 스토리의 핵심에 놓여 있지만, 두 영화 모두 개성 넘치는 영화들('본'시리즈와 '영웅본색')의 코드를 차용해서 '부당거래'에 대한 주인공들의 저항을 보여준다. 하지만 현실을 넘어서는 판타지같은 결말을 보여주는 듯하면서도 주인공들의 대사를 통해 지극히 냉정한 현실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다. 영화 '베를린'에서 정진수(한석규)는 표종성(하정우)에게 복수를 꿈꾸지도 말고 보통사람들처럼 조용히 먼지처럼 살아가라고 경고하는데, 정진수의 대사를 통해 개인이 세상을 향해 저항을 해봤자 세상의 견고한 시스템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영화 '신세계'에서는 아예 대놓고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메시지를 강과장(최민식)의 대사를 통해 전달한다. 결국 이자성(이정재)은 '부당거래'를 통해 자신들만의 '신세계'를 얻으려 했던 탐욕스런 이들을 차례대로 제거하였지만, 결국은 또 다른 부당거래가 발생할 것이고 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변함없이 추악한 일들이 뒤엉키면서 돌아갈 것이라는 암시를 이자성이 지긋이 창밖을 보면서 담배를 태우는 모습을 통해 전달한다.

'부당거래'의 크레딧이 '각개전투'로 분산되어 참여한 '베를린'과 '신세계' - 배우들의 조합구조가 동일하다

영화 '부당거래'의 제작은 영화 프로듀서이자 '사나이 픽쳐스'의 대표인 한재덕 대표가 맡았는데, 한재덕 대표는 2012년 한 해 동안 영화 '베를린'과 '신세계' 제작에 매진하였다. 그리고 '부당거래'에서 연출을 맡은 류승완 감독과 갱을 맡은 박훈정 감독이 각각 '베를린'과 '신세계' 연출을 담당하였다.

'베를린'과 '신세계'의 주연 배우들의 조합구조를 보면 유사하다는 느낌이 들게 된다. '베를린'은 하정우, 한석규, 류승범이 메인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젊고 역동적인 이미지의 하정우와 노련한 연기력으로 영화의 중심을 받쳐주는 한석규, 가장 자신의 끼를 살린 캐릭터를 선보이는 류승범의 조합은 절묘하였다. 영화 '신세계'도 마찬가지이다. 스타일리쉬한 멋이 넘치는 이정재, 노련한 연기력으로 극의 중심을 이끌어가는 최민식, 그리고 가장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선보이는 황정민의 조합이 영화의 멋을 살려낸다. 두 영화 모두 좀처럼 한 영화에서 뭉치기 힘든 배우들을 모아서 관객의 관심을 유도했고, 배우들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최상의 연기력으로 영화의 재미와 현실감을 더해준다.

영화 '베를린'과 '신세계' 모두 남성적인 색깔이 넘쳐나는 영화이지만 홍일점으로 등장하는 여배우들의 매력이 역설적으로 돋보이는 공통점이 있다. 영화 '베를린'에서 북한 특수 공작원 표종성(하정우)의 아내이자 북한 대사관 통역원 련정희로 등장하는 전지현은 수수하게 빗어넘긴 머리와 회색 톤의 버버리 코트로 연약한 듯 하면서도 내적으로 강인한 련정희 캐릭터를 살려냈으며 또한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연기도 감수하면서 강렬한 액션이 넘쳐나는 영화의 톤을 팽팽하게 유지하는데 기여한다.

영화 '신세계'에서도 비밀 프로젝트의 연락소 역할을 담당하는 경찰 신우로 등장하는 송지효도 정제된 모습을 유지하면서 한편으로 자신의 선배 강과장(최민식)에 대한 배려를 놓치지 않는 강인한 경찰 역할 연기를 통해 남성들로 넘쳐나는 영화 속에서 일종의 윤활유 역할을 담당한다. 송지효의 총격전 모습은 짧지만 강렬하면서도 묘한 매력을 풍긴다.

전지현과 송지효 모두 출연분량은 짧지만 남성 중심의 영화에서 결코 없어서는 안될 캐릭터와 개성을 보여주면서 영화의 균형을 유지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영화 '베를린'과 '신세계'는 2010년 영화 '부당거래'에서 제시한 메시지에 각기 다른 소재를 입힌 새로운 형태의 '원 소스 멀티 유스' (One source, Multi use)로 기억될 만하다. 결국 잘 짜여진 컨텐츠를 바탕으로 풍부한 소재의 영화를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제작진의 역량과 훌륭한 배우들의 조합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배우들과 제작진의 크레딧에 알찬 컨텐츠를 더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영화 '베를린'과 '신세계'는 향후 영화 제작에 새로운 전형을 제시할 것이다. <양형진 객원기자, 나루세의 不老句(http://blog.naver.com/yhjmania)>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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