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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 베드신의 조인성-송혜교 미묘한 심리

정안지 기자

기사입력 2013-02-22 14:10


<사진=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캡쳐>

한 겨울에 어느 바닷가 백사장에서 해돋이를 맞는 남녀가 있다. 여자는 먼저 달리고, 남자는 잡히면 죽일 듯이 따라잡는다. 죽이지 말라며 여자는 웃는다. 아침은 네가 사라며 남자도 웃는다. 눈밭위에서 눈싸움도 하고, 작대기를 가져와 서로의 이름을 새겨놓고 하트모양의 마무리도 잊지 않는다. 뛰고 들고 업고 웃고, 손발이 녹아 없어질 정도로 유치하지만 그것도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이라며 감정을 쏟아 붓고야 만족하는 남녀. 멜로드라마가 거치는 필수코스이자, 현실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사랑하는 연인들의 닭살.

21일 방송된 수목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도 이러한 장면들이 등장했다. 오수(조인성)와 오영(송혜교)이 바닷가를 찾았고, 새벽녘에 해돋이를 맞으며 연인들이 누릴 수 있는 온갖 애정행각을 보여줬다. 감히 누가 그들을 오누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참 다정한 오누이의 모습이네.' 누가? 그렇다. 백이면 백, 누가 봐도 오수-오영은 남매가 아닌 연인의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그들조차 오빠-동생 사이임을 망각한 듯 했다. 제작진마저 눈부신 영상으로 그들을 최고의 연인으로 둔갑시켰다.

그런데 한 가지 눈여겨 볼 대목은 오수와 오영의 대화였다. 오영이 말했다. "약속한 거다?" 오수가 답했다. "무슨 약속?" 내(오영)가 내옆에서 있으라고 하면, 너(오수)는 언제나 내옆에 있을 거란 약속에 대해 오영이 말하자. 오수가 너(오영) 어제 안 잤냐며 반문하고는 웃었다. 오영도 웃었다. 그렇다면 어젯밤에 오수와 오영사이에 무슨 일이, 어떤 감정이 오갔던 것일까.

오수와 오영은 방 하나를 잡고, 소주를 마시며 일종의 진실게임을 했다. 오영이 죽은 오수의 첫사랑 희주(경수진)에 대해 물었고, 오수는 사랑했고 동거까지 한 사이라고 말했다. 대신 자신때문에 희주가 죽었다는 얘기까진 하지 않았다. 가짜 남매지만 분위기는 진짜 남매이상으로 좋았다. 솔직 토크가 끝나고 잠자리에 들 시간, 오영은 오수에게 발칙한(?) 제안을 한다. 한 침대에 누워 자자고.

오수는 경악하듯 반발했다. 오빠도 남자라면서. 오빠이기 전에 남자인데, 다 큰 성인남녀가 무슨 한 침대냐면서. 그러자 오영은 오빠동생사이에 남녀를 따지는 게 더 이상 하다면서, 21년 만에 만난 오빠를 옆에 두고서 더 알고 싶다는 속내를 털어놨다. 오수는 오영이 그동안 얼마나 오빠를 그리워하고, 또 혼자 외로워했는지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기에, 오영의 제안을 받아드렸다. '오빠 믿지?'가 아닌 진짜 오빠의 심정으로 그렇게.

그런데 막상 오영과 한 침대에 누운 오수는 긴장하고 있었다. 편안한 S자세의 오영과 달리, 오수는 경직된 일자라인으로 오영을 마주하고 누웠다. 그도 그럴 것이, 오수는 오영의 친오빠가 아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오수에게 오영은 남이다. 동생이 아닌 그냥 여자다. 그런데 오영은 자신의 가슴팍으로 자꾸 들어온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난감했다.

결국 오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오수는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오영에게 말했다. 자신이 오영을 찾아온 건 돈 때문이 아니라, 오직 동생 오영이 보고 싶어서라는 거짓말을, 어떤 다른 저의가 있어서가 아니란 사실을 이제는 믿겠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한 손으로 오영의 머리를 만지려는 찰나, 오영이 "오빠, 가지마."라고 말한다. 그 순간 오수는 움찔했고, 오영의 머리로 향하던 손을 거둔다.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오수의 심리상태가 침대에 마주보고 누운 오영을 동생이 아닌 여자로 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단지 그가 전처럼 오영을 속여야 하는 여자로 생각했다면, 돈이니 저의 따위를 말하며 오영에게 이러쿵저러쿵 얘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겜블러출신의 오수라면 더욱 말이다. 마치 포커페이스를 잃은 채, 자신의 패를 상대에게 보여주는 행위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애인대하듯이 머리에 손을 가져가고 감싸려는 무의식적인 행동까지.


왜 일까. 오수가 오영을 단순히 여자로 봤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오영에 대한 죄책감이 무의식적으로 그런 말과 행동을 불렀던 것 같은. 사뭇치게 그리웠던 오빠와 한 침대에서 자고픈 순수한 오영의 의도에, 오수는 78억이란 돈때문에 순수한 그녀에게 상처를 줄 수 있었다. 그래서 적어도 한 침대에 누운 그 순간만큼은 돈때문이 아닌, 친오빠 오수이고 싶었을 것이다. 비록 자신은 가짜 오빠 오수지만, 그 순간 친오빠 오수처럼 오영을 대하고 싶었던 마음.

하지만 오영은 '오빠' 가지마라며, 오수의 생각과 행동에 브레이크를 건다. 마치 오수에게 당신은 나를 여자로 보아서도 안 되며, 지금처럼 친오빠마냥 거짓행세를 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경고한 듯했다. 그래야 우리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고. 본능적으로 오영은 오수가 자신의 친오빠가 아니라고 이미 느낀 것 같았다. 오영이 눈을 제외한 모든 감각을 동원하고 느낄 수 있는 시각장애인이란 점에서 더욱.

다만 오수가 친오빠이든 친오빠가 아니든, 자신이 오수를 친오빠라고 생각하고 대하는 것에 만족한다는 듯 느껴졌다. 내가 당신을 친오빠라고 생각하면, 그냥 친오빠가 될 수 있는 거야. 만약이라는, 친오빠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로, 지금의 행복을 깨고 싶지 않은, 과거의 외로움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오영의 심리.

재밌는 건, 집으로 돌아가던 차안에서 오영이 오수에게 예전에 만났던 오수를 찾아달라고 말한 것이다. 왜 일까. 지금도 충분히 행복해 보였는데. 그건 오영이 진짜 오수오빠에 또 다른 궁금증, 욕구로 느껴졌다. 진짜 오수오빠는 잘 살고 있는지. 진짜 오수오빠는 어떤 모습일지. 아무리 옆에 진짜 오수오빠같은 가짜 오수오빠가 있더라도, 핏줄에 대한 그리움은 어쩔 수 없으니까. 게다가 자신은 뇌종양으로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데, 한번은 만나고 싶은.

확실하다고 말할 순 없다. 다만 오수와 오영의 베드신에서 보여 준, 두 남녀의 미묘한 심리는 생각해 볼만한 대목이다. 오영이라는 여자를 대하는 오수라는 캐릭터의 변화, 오수라는 남자를 대하는 오영의 심리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판의 포커판같은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무척 흥미롭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남녀가, 서로에게 바람이 되어 닫힌 마음을 흔드는 과정이... <한우리 객원기자, 대중문화를 말하고 싶을 때(http://manimo.tistory.com/)>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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