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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극장 점령한 리메이크작, 너무 많은 건 아닐까?

김표향 기자

기사입력 2013-02-21 14:47 | 최종수정 2013-02-22 09:14


사진제공=SBS

안방극장에 리메이크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근래 방영을 했거나 방영을 앞둔 리메이크 드라마는 어림 잡아도 십여 편. 과거 KBS에서 '꽃보다 남자'가 제작됐을 때만 해도 리메이크는 특별한 일이었지만 최근엔 순수창작물을 압도할 정도로 제작 편수가 많아졌다.

불꽃 튀는 수목극 전쟁을 치르고 있는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도 대표적인 리메이크 드라마다. 한국에서 김주혁-문근영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던 일본 드라마 '사랑따윈 필요없어, 여름'을 노희경 작가가 리메이크했다. 동시간대 경쟁작인 MBC '7급 공무원'도 동명 영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천성일 작가가 프리퀄 형식으로 영화보다 앞선 시점의 에피소드를 그렸지만 전체적인 설정과 캐릭터의 성격은 원작의 것을 가져왔다. 지난해에도 MBC '닥터진'과 SBS '아름다운 그대에게' 같은 일본의 인기 드라마가 한국 정서에 맞게 재해석돼 전파를 탔고, 종편채널에서도 '프로포즈 대작전' '친애하는 당신에게' '러브 어게인' '해피엔딩' 같은 일본 드라마 원작 작품들이 방영됐다.

앞으로 방송될 드라마 중에도 굵직한 리메이크작이 꽤 많다. 4월 방영을 앞둔 KBS2 '돌아와요 미스김'은 지난 2007년 일본 NTV에서 방송된 '파격의 품격'이 원작이다. 특A급 만능 파견사원의 이야기를 그린 이 드라마엔 김혜수가 출연한다. MBC에서도 일본 드라마 리메이크작인 '여왕의 교실'을 준비 중이다. 독선적인 여교사와 학생들의 갈등을 그린 독특한 학원물로, 고현정이 출연할 예정이다. 1999년작 '허준'을 리메이크한 MBC '구암 허준', 무려 9번째 만들어지는 장희빈 드라마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도 곧 전파를 탄다. 업계 관계자는 "한류스타 캐스팅 파워를 지닌 몇몇 제작사에서는 일본 드라마 판권 구입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사진제공=MBC
'리메이크 붐'의 가장 큰 이유는 드라마 시장의 경쟁이 가열된 데 있다. 방송 3사 뿐만 아니라 케이블과 종편채널까지 자제체작에 뛰어들면서 매주 30편에 가까운 드라마가 전파를 타고 있다. 작품성보다는 시장성이 우선시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리메이크는 여러 장점을 갖는다. 한번 검증된 컨텐츠인 만큼 실패 확률을 낮출 수 있고 준비 과정도 한층 수월할 뿐더러 해외 역수출을 기대할 수도 있다. 여기에 안정주의 제작 시스템으로 인한 컨텐츠 기근 현상도 한몫한다. 단막극처럼 다양한 장르를 실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없다 보니 오리지널 컨텐츠를 가진 작가를 발굴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 제작사들의 설명이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신인작가의 등용문은 좁아진 반면 기성작가의 의존도는 훨씬 더 높아졌다"며 "기성작가들로만 드라마를 만들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리메이크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리메이크가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다. 제작사들은 한국판으로 각색하고 대본을 집필할 작가를 구하는 게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작가들에게 리메이크 제안을 하면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태반이다. 실제로 고현정이 출연하는 '여왕의 교실' 같은 경우는 MBC가 판권을 구입해 놓았지만 기성작가들이 대본 집필에 난색을 표해 제작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신인작가를 물색해 대본을 맡기고 고현정의 소속사가 제작에 참여하는 것으로 제작 방향을 정하면서 비로소 편성도 확정이 났다. 이 관계자는 "결국은 배우를 캐스팅하듯 정성을 들이고 그에 합당한 금전적 대우를 해야 작가를 섭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리메이크작 중에 크게 성공한 경우도 아직까지 '꽃보다 남자' 같은 몇몇 작품에 불과하다. 이 관계자는 "리메이크가 원작보다 극적 긴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도 원작의 인기만 믿고 안일하게 접근했기 때문"이라며 "기획 단계에서 충분한 사전 협의를 거쳐 작품의 방향을 명확히 해야 하는데 실제 제작 현실에선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건 '리메이크 붐'이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한중일에서 공통적인 현상이라는 사실이다. '꽃보다 남자' '장난스런 키스' '아름다운 그대에게'는 한국, 일본, 대만에서 모두 만들졌고, 한국 드라마 '마왕'은 일본에서, '아내의 유혹'은 중국에서 제작돼 크게 히트했다. 홍자매 작가의 '미남이시네요'도 일본에서 제작됐고, 대만판 리메이크작도 올 여름 방송된다. '미남이시네요'는 3개국에서 모두 만들어진 첫 한국 드라마다. 한 방송사 드라마 PD는 "리메이크 붐은 컨텐츠 싸움이 얼마나 치열한가를 보여주는 방증"이라며 "'미남이시네요'의 사례처럼 잘 만들어진 순수창작물을 확보해 해외에 리메이크 판권을 수출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사진제공=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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