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 '남자 캔디'가 뜬다

김표향 기자

기사입력 2012-11-22 17:10 | 최종수정 2012-11-23 08:16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온갖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희망을 꿈꾸는 '무한 긍정' 캔디 캐릭터는 안방극장의 터줏대감 같은 존재다. 그리고 캔디의 곁에는 언제나 테리우스와 안소니 같은 '훈남'들이 있어 위기에 빠진 캔디를 위해 흑기사를 자청하곤 한다. 서민 캔디와 귀족 테리우스와의 로맨스는 오랫동안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흥행코드였다. 결국 캔디는 사랑과 성공을 모두 거머쥐며 '신데렐라 신드롬'을 완성한다.

그런데 최근엔 캔디 캐릭터가 조금 달라졌다. 캔디와 테리우스의 성별이 바뀌기라도 한듯 '남자 캔디'가 속속 등장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반면 서민 남자와 로맨스를 나누는 여성들은 하나같이 사회 경제적으로 상위 1%에 속하는 배경을 갖고 있다. 한마디로 '재벌녀'란 얘기다.


사진제공=MBC
MBC 일일극 '오자룡이 간다'의 주인공 오자룡(이장우)은 전형적인 '남자 캔디'다. 오자룡은 2년째 취직을 못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청년백수로 살아가고 있지만 긍정적인 마인드로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인물. 씩씩하고 밝은 성품 말고는 딱히 내세울 것도 없으면서 넉살좋게 주변사람까지 챙기는 '태평양급' 오지랖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러다 우연한 사건으로 재벌집 철부지 둘째달 나공주(오연서)와 얽히면서 로맨스에 성공, 재벌가 사위가 되며 인생역전을 이룬다. 그러나 신분상승에만 만족한다면 캔디라고 할 수 없다. 돈을 노리고 정략결혼한 첫째사위의 음모에 맞서 가족을 지켜내는 것도 '남자 캔디' 오자룡의 임무다.

KBS1 일일극 '힘내요 미스터 김'은 제목에서부터 긍정 에너지를 발산한다. 심지어 주인공 이름도 씩씩하기 그지없는 김태평(김동완). 입주청소부이자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김태평은 성(姓)이 다른 네 아이를 돌보는 '총각엄마'다. 남자 가사도우미라는 직업이나 핏줄로 맺어지지 않은 가족관계 때문에 세상의 편견에 부딪히기도 하지만 캔디 근성으로 어려움을 헤쳐나간다. 김태평의 상대역은 그가 일하는 회장님댁의 딸이자 조카의 담임교사인 이우경(왕지혜). 연적인 백건욱(양진우)도 재벌가 외아들이다. 외적인 조건만 보면 상대가 안 되는 승부다. 그러나 김태평은 그동안 일일극을 이끈 '여자 캔디'들처럼 시청자들의 응원 속에 성실함과 정직함이 통한다는 걸 또 한번 보여줄 태세다.


김동완-왕지혜.
MBC '마의'에선 천민 출신인 백광현(조승우)의 활약상이 눈부시다. 말을 고치던 마의였지만 타고난 재능을 인정받아 혜민서 의생이 되며 인의의 길에 들어섰다. 그런 백광현의 존재를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지만, 백광현은 굳은 의지로 위기를 극복하며 안방극장에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백광현의 여인들도 만만치가 않다. 임금의 동생인 숙휘공주(김소은), 양반 신분인 강지녕(이요원), 대제학의 여식 서은서(조보아)까지 지체 높은 여인들이 모두 백광현을 같히 생각하고 있다. 신분의 차이가 워낙 커서 어느 누구 하나 사랑을 이루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얼핏 보면 '바보온달과 평강공주'가 떠오르는 설정이지만 요즘의 '남자 캔디'들은 바보온달과는 조금 다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여자의 도움 없이도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간다는 점에서 바보온달보다 독립적이고 '여자 캔디'보다 주체적이다. 앞서 방송된 MBC '아이두 아이두'에서도 구두회사의 신입사원 남자 주인공이 회사간부인 여자 디자이너와 사랑을 이루는 내용이 그려졌지만, '남자 캔디'들과는 달리 여성 캐릭터의 주도 아래 이야기가 전개됐다.

'캔디형' 남자 캐릭터의 등장은 시청자들의 변화된 취향을 반영한다. 남자 캐릭터에 의존적인 기존의 여성 캐릭터는 이제 '민폐녀'라 불리며 질타를 받게 됐고, '실장님'으로 대변되는 완벽한 남자 주인공은 여러 드라마에서 과소비되면서 매력도가 떨어졌다. 기존의 흥행코드가 점차 힘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한 드라마 관계자는 "사회적으로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여성상이 점차 부각되면서 캔디 드라마들이 실망스러운 성적을 얻었다. 완벽하지 않지만 정감 가는 남자 주인공이나 재벌녀의 공식을 깬 여자 주인공의 등장은 전형적인 흥행공식을 비트는 재미를 주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신선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


사진제공=김종학프로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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