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대학로 카페 마리안느에서 북 콘서트가 있었다. 이제하 작가의 신간 '코'의 출간 기념을 위한 자리다. 이제하 작가는 시와 소설, 그림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창작활동을 하는 우리시대의 '예인'이다. 평소 한번 뵙고 싶은 마음만 있던 상황에서, 책을 출간한 달봄출판사에서 띄운 북 콘서트 공고를 봤다. 바로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서점에서 산 책도 다 읽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읽고 있는 중이다.
사실 이런 행사 참관은 처음이라, 막상 혼자 가려 하니 좀 어색했다. 한 지인에게 같이 가자고 연락을 했지만, 몸이 안좋다며 결국 펑크를 냈다.
"예상보다 사람이 많이 올 거 같으니 빨리 들어가서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라"는 말씀. 카페 직원의 안내를 받아 들어가면서 김진 작가를 봤고, 화장실 옆 제일 구석자리에 한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이 카페를 아는 분들은 이미 좋은 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었다.(알아야 뭐라도 해먹지.)
사회를 본 강병융 작가는 침착하면서도 유머가 넘쳤다. 공간이 다소 비좁아 멋쩍을 수도 있지만, 재치있는 멘트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2시간 가량 황인숙 정은경 김숨 등 여러 작가들의 시와 소설 낭독이 있었고, 양병집, 싱어송 라이터 손지연 등의 노래가 이어졌다.
이제하 작가가 말했고, 노래했고, 질문에 답했다. 이미 이뤄놓은 예술적 성취만 해도 대단한데, 겸손과 솔직함이 몸에 배어있었다.
"마산고등학교 2학년때 많이 놀았다. 서울대 미대를 가고 싶었지만, 떨어질까봐 홍익대 조각과를 갔고, 다시 홍익대 서양학과를 전공했다. 그림속에 무의식의 세계를 담으려고 했다. 시와 소설에도 이런 흐름을 유지하려고 했다. 대학 다닐때 우리나라 당대 문인들이 즐겨 찾던 카페 등을 찾아다니며 멀리서 그들을 보며 예술에 대한 열정을 키워갔다." 정확한 워딩을 그대로 되살릴순 없지만, 이런 요지의 얘기를 했다. 당시 마산고는 부산을 제외한 경남 지역의 수재들만이 들어갈수 있는 학교였다.
2시간 정도의 이벤트가 짧게 느껴질 만큼 순식간에 지나갔다. 카페에서 미리 마련해둔 잡채와 떡, 굴, 각종 전에다 고기, 땅콩 등 아주 풍족한 음식이 나왔다. 카페 주인이 음식은 공짜고, 술값만 받겠다고 했다.
꽉 들어찬 입장객들이 책에 사인을 받고 하나둘 빠져나갔다. 한 테이블에 류근 시인과 김진 작가, 녹색연합의 박정운씨가 자리를 잡았다. 나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자 최돈선 시인께서 불콰해진 얼굴로 들어왔다. 일도 볼겸 인사동에 들러 한잔 하고 이 곳을 찾은 것이다. 페이스북에서만 자주 뵀던 지라, 깍듯하게 인사를 하니 아주 반갑게 맞아주었다. 기분이 아주 흥겨워보였다. 춘천행 교통편이 예약돼 있어 바로 자리를 떠야 해 아쉬웠다.
조금 있으니 김도언 작가가 테이블에 합류했다. 다른 테이블에서 손님응대에 분주하던 이제하 작가께서도 곧 합류해 술자리가 이어졌다. 소설가 방현희 최옥정 님도 같이 자리를 했고, 가수 손지연까지 와서 앉으니 빈틈없이 서로 몸을 바짝 붙여야 했다.
술이 조금 들어간 류근 시인은 흥에 겨워 중앙으로 나가 노래를 불렀다. 자리에 앉아서도 노래를 불렀다. 그다지 신곡도 아니고, 아주 잘 부르는 건 아니지만, 몰입해 부르는 모습이 소년같았다. 영화배우 못지않은 외모에다 심금을 울리는 시, 레이저를 쏘는 듯한 눈빛 등 남성이 가질수 있는 모든 매력을 독점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다 겸손함까지 갖췄다. 옆에서 김도언 작가가 "내가 보기에 류근 형은 천재야"라며 부추겼고, 류근 시인은 "김작가와의 의리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끝까지 지켜 나갈 것"이라며 서로 덕담을 주고받았다. 서로 걸쭉한 농담도 거리낌없이 하는 걸 보니 막역한 친구사이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김도언 작가의 글을 봐도 나는 숨이 막힌다. 그 대단한 문학적 지식과 유려한 문체가 입을 쩍 벌어지게 한다.
사실 작가들의 술자리는 어떨지 궁금했다. 뭔가 예술적이고 시니컬할까라고도 생각해봤지만, 아주 편하고 부담이 없었다. 계속 웃음이 터져나와 유쾌했다. 틈을 타 이제하 작가에게 책의 사인을 받았다.
시간을 보니 어느 새 새벽 2시. 그래도 자리를 뜨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집에서 와이프한테 전화가 왔다. 이 자리에 간다고 얘기를 안했기 때문이다. 바로 들어간다고 얘기를 하고, 택시를 탔다. 각종 다양하고 화려한 행사에 많이 다녀봤지만, 처음 가 본 이 북 콘서트 행사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감정이 충만해졌고, 좋은 문인들을 직접 만나 아주 반가웠다. 문인들이여, 앞으로도 이런 이벤트 있으면 꼭 좀 불러달라. 아주 감사할 것이다.
#미니픽션 '코'
등단 56주년을 맞은 작가가 그동안 선보인 적 없는 소설들과 함께 대표작들을 다듬어 수록했다. 여기에 직접 그린 그림을 덧붙여 이제하 작품세계의 백미를 맛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사랑의 시작을 상징하는 39개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작가 특유의 마술적 리얼리즘을 접할 수 있다. 작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우리 시대의 삶을 그리고 있다. 단단한 필력과 깊은 통찰, 에로틱한 상상력, 사투리와 신세대 언어를 한데 아우르는 실험정신 등이 돋보인다는 평이다.
작가는 "관심 갔던 주제, 골몰했던 메모와 노트들에서 뽑은 이 책은 지금껏 천착해온 주제들의 피라미드 꼭짓점에 있다"고 썼다. 달봄. 484쪽. 1만3500원.
◇이제하 작가가 노래를 부르기에 앞서 참석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맞은편은 사진을 찍고 있는 류근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