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남자' 문채원, 왜 시청자를 멘붕에 빠뜨렸을까

이지현 기자

기사입력 2012-11-09 15:27 | 최종수정 2012-11-09 16:39



강마루(송중기)가 한재희(박시연)에게 달려갔다. 재희는 마루의 품에 안긴 채 눈물을 흘렸고, 마루는 그런 그녀의 손을 잡아주고 다른 한 손으론 흐느끼는 그녀의 어깨를 따뜻하게 감쌌다. 누가 봐도 애틋한 연인 포스. 하필 그 광경을 멀리서 서은기(문채원)가 눈물을 글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은기의 독백.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기억의 장난이 있다. 기억은 쉼없이 윤색되고 퇴색되어진다는 것. 내 기억은 그럼 온전한 것일까. 내 기억은 믿을 수 있는 것일까. 그 날 내가 본 것 무엇이었을까.'

8일 방송된 수목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 18회의 엔딩이다. 18회 엔딩을 보고, 순간적으로 '뭐지?'라고 생각하며 멘붕에 빠진 시청자가 많았을 것이다. '은기가 또 마루를 오해하겠구나.'라는 느낌이 왔을 법 했으니까. 은기의 오해? 오해할 수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은기의 오해로 시간을 낭비하기엔 너무 멀리 왔다. 이제 착한남자는 2회밖에 남질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은기가 마루와 재희의 관계를 예전처럼 무작정 오해하기엔, 착한남자 18회 내내 이뤄졌던 마루와 은기의 대화와 애절한 감정의 나눔이, 은기가 할 수 있는 오해를 가로막는다. 은기는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강마루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마루가 은기를 사랑하고 있음을. 은기는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은기가 호텔 욕조에서 박준하(이상엽)변호사에게, 마루를 미워할 수 없다고. 사랑하고 있다고 솔직한 감정을 털어 놓았을 때도 알 수 있다. 한재희로부터 언론사에 마루와 재희가 내연관계라는 잘못된 정보를 흘린 사람이 마루였다는 얘길 듣고 은기는 깨달을 수 있었다. 마루와 은기가 핸드폰을 붙잡고 서로 말이 없었지만, 서로를 그리워하고, 걱정하고, 사랑하고, 절실하게 원한다는 걸 느꼈다.

그럼에도 공원벤치에서 마루와 재희가 함께 있는 걸 보고, 또 다시 은기가 마루에 대한 오해를 시작한다? 착한남자 18회가 아니라 8회였다면 가능한 도돌이표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루에 대한) 내 기억은 그럼 온전한 것일까. 내 기억은 믿을 수 있는 것일까. 그 날 내가 본 것 무엇이었을까.'라는 은기의 독백처럼, 그녀는 혼란스러움을 느꼈던 것이다. 그 '혼란'을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 단순 '오해'로 치부할 순 없는 이유다.

그렇다면 강마루는 왜 한재희의 옆에서, 그녀를 따뜻하게 감싸고 연인포스를 유지했을까. 그렇게 미워하던 한재희를 말이다. 한재희가 나약해졌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과거에 마루가 사랑했던 한재희로 돌아가고 싶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는 그녀가 후회하고 있음을. 그녀의 진심을 읽었기 때문이다. 술기운을 빌리긴 했어도, 재희는 마루에게 솔직한 감정을, 진심을 내비쳤다. 마루가 아닌 태산을 택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음을.

18회 마지막에 박변호사가 마루를 찾아왔다. 마루가 꼭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면서. 그것은 바로 전 은기와 박변호사가 나눈 대화의 연장선임을 알 수 있다. 서회장(김영철)이 사망할 당시, 한재희와 안민영(김태훈)변호사가 저지른 악행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 사실을 마루는 박변호사에게 들었던 것이고, 때문에 재희와 만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즉 마루를 만난 재희는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는 눈물을 흘렸던 것일테고, 그런 재희를 마루는 보듬어준 것일테다. 재희가 잘못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너지고 있는 그녀를 윽박지를 순 없을 테니까. 그 순간만큼은 위로가 필요한, 그 옛날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해 자신의 집으로 뛰어 들어왔던, 상처로 얼룩진 교복입은 한재희로 보였을 테니까.

다시 돌아와, 그렇다면 마루와 재희의 모습을 목격한 18회 엔딩 은기의 독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억의 장난은 무엇이고, 기억은 쉼없이 윤색되고 퇴색되어진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은기가 기억을 조작하는 식스센스? 아니다. 강마루에 대한 기억을 처음으로 향하고픈 서은기의 마음이다. 자신이 본 것이, 기억하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이다. 은기는 교통사고로 기억상실증을 겪었기 더욱 그러한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다.

분명 마루는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데, 내 심장이, 마음이 그렇게 느끼고 있는데, 왜 마루는 재희와 함께 있는 걸까. 왜 재희를 감싸주고 있는 걸까. '이유가 있을 것이다.' 보이는 그대로를 믿는 것이 아니라, 은기가 마루를 의심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날 내가 본 것 무엇이었을까.'라는 의심을 낳는 것이다. 마루가 사랑하는 내가 아닌 재희를 만나고 위로하는 것에는.

기억의 장난이란 것. 퇴색되고 윤색되어진다는 것. 별 거 아니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친구들이 어느 날 갑자기 이별을, 절교를 선언한다. 대단한 이유가 아니라, 오해해서, 말 한마디 실수해서 헤어지기도 한다. 헤어짐과 동시에, 예전에 상대방이 좋았던 건 잊어버리고, 지워버리고, 최근에 상대방의 미운 점, 싫은 점을 떠올린다. 그렇게 상대방을 나쁜 사람으로 머릿속에 그려놓고 평가절하 해버린다. 기억의 장난이다. 퇴색이고 윤색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다시 그 상대방을 그리워한다. 아름답게 추억을 포장한다. 그의 좋았던 점을, 함께여서 행복했던 일들을 떠올린다. 그것 또한 기억의 장난이고 윤색이다.

서은기는 강마루를 잃고 나서야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마루에 대해 그녀가 느꼈던 미움과 분노, 슬픔과 고통이 어디서 시작되는 지를. 그리고 그 시작이 '사랑'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에 와 있다. 자신이 마루에게 향했던 사랑이고, 마루가 자신에게 주었던 사랑이다. 정작 은기가 기억하고 소중하게 느꼈어야 할 부분은 마루가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기억이 아니라, 마루가 자신에게 사랑을 주었던 기억임을. <한우리 객원기자, 대중문화를 말하고 싶을때(http://manimo.tistory.com/)>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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