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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가을 아침, 강마루(송중기)는 거실에서 들려오는 연인 서은기(문채원)-친구 박재길(이광수)-동생 강초코(이유비)의 웃음소리에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마루는 침대에 누운 채, 차마 눈을 뜨지 못했다. 너무 좋아서, 행복해서,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아서. 그 좋았던 꿈이, 현실이 깨질까 두려워서. 그래서 마루는 말했다. 빌었다. 자신의 행복을 지켜줄 수 있는 누군가를 향해. "더 욕심내지 않겠습니다. 더 바라지 않겠습니다. 나는 지금 행복합니다."라고.
강마루는 돌고 돌고 돌아서 본래의 모습을, 행복을 찾았다. 한 때는 한재희를 통해서만 찾을 수 있다고 믿었지만, 아니었다. 내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반드시 한재희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서은기를 통해서 알게 됐다. 그렇게 마루의 마음은 순수함을 되찾고 초기화되었지만, 이에 대한 대가는 아직 지불하지 못했다. 그의 뇌속에 남은 핏덩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핏덩이. 은기와의 교통사고 후유증.
1일 방송된 수목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 16회에서, 은기는 사실상 기억을 대부분 되찾았다. 강마루가 탄 차를 향해 눈물을 흘리며 돌진했던 기억을. 사랑을, 배신을, 분노를. 그것은 은기의 심장을 터지게 만들 핏덩이 같은 것이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마루의 뇌속 핏덩이와 닮은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지금이 행복하더라도, 기억을 초기화하더라도 남을 수밖에 없는 상처고, 대가없이 아물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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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마루는 알고 있다. 자신이 과거 재희에게 품었던 애증이 얼마나 나쁘고 불필요했던 것인지. 그 시간이 서로에게 더 큰 상처만 주었다는 사실을. 그래서 마루는 은기에겐 똑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마루가 재희에게 품었던 애증을 은기가 품고 있다면, 마루는 재희처럼 완강하게 반항하지 않을 것이다. 상대의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수를 쓰지 않을 것이다. 은기가 우유컵을 내던질 때처럼 마루를 미워하도록 분노하도록, 아마도 내버려 둘 것이다. 은기가 마루의 마음에 어떤 난도질을 하더라도 받아줄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 강마루가 될 것임을 예고한다.
때문에 서은기에게 교통사고 사실 확인원을 보낸 사람이, 안변호사(김태훈)도, 박변호사(이상엽)도 아닌, 강마루임을 예감할 수 있는 것이다. 결혼하자고 얘기한 은기에게 그녀가 기억을 모두 찾게 된다면, 그 때도 지금처럼 자신을 사랑한다면 결혼하자고 말한 강마루가, 이제는 은기에게 사실을 밝힐 시점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은기가 자신에게 분노할 것임을 알면서도, 그걸 모두 받아 줄 마음의 준비가 되었기 때문에.
설사 은기가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버릴지언정, 다시는 느껴보지 못할 거라고 믿었던 행복한 아침을, 순간을 은기는 마루에게 주었다. 그래서 마루는 더 욕심을 내고 바라는 건 죄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은기에게 거짓말을 하고, 기억을 훼손하고 감추는 건, 모든 걸 바쳐 한재희를 사랑했던 과거의 순수한 강마루가 아니니까. 즉 착한남자 강마루가 본래의 모습을 온전히 찾기 위한 행동이, 서은기의 기억찾아주기에서 완성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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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리 객원기자, 대중문화를 말하고 싶을때(http://manimo.tistory.com/)>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