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들린다면 응답하라, 나의 90년대여 '응답하라 1997'

이지현 기자

기사입력 2012-09-26 16:57


뜨겁고 순수했던, 그래서 시리도록 그리운 그 시절, 다시 돌아오지 않을 나의 '90년대'

오랜만의 동창회에서 뭉친 왕년의 고교 절친 6인조 성시원(정은지), 윤윤제(서인국), 모유정(신소율), 도학찬(은지원), 강준희(호야), 방성재(이시언). 세월이 흘러 어느덧 번듯한 사회인이 되었고, 각자의 곁에는 사랑하는 배우자 혹은 연인도 있고, 심지어 이젠 부모가 된 이들도 있지만 함께 모이면 어쩜 이렇게도 열여덟 그때 그대로인지!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지만 함께 있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열혈 10대 청소년으로 되돌아가는, 마치 현재가 아닌 추억의 그 시절에 머물러 있는 듯한 이 6명의 청춘들을 보고 웃고 또 훌쩍거리기도 할 수 있었던 건 '공감에서 오는 재미'였다.

솔직히 처음에 <응답하라 1997>의 포스터 메인 카피 -열여덟, 오빠들은 내 삶의 전부였다- 와 예고를 봤을 때에는 왠지 겁나 오글거릴 것 같았다. 뭔가 세련되지 않아 민망하고 부끄러워서 별로 꺼내보고 싶지 않은 옛날 옛적의 촌스러운 사진을 꺼내 보는 느낌이 들 것만 같았달까. 그래서 주변의 열광적인 반응과 폭풍권유가 있기 전까지는 시작할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편견을 가졌던 것이 좀 많이 미안해질 정도로 이 드라마 속의 찰진 경상도 사투리, 파릇파릇하니 매력 만점이던 배우들, 그리고 아주 촘촘하니 깨알 같던 극 구성과 센스 만발 BGM과 그 시대 소품들 덕분에 뒤늦게나마 열렬히 나도 '응답앓이'에 동참할 수 있었다.

보면 볼수록 매력이 장난 아닌 드라마였다. 어떻게 보면 좀 영리했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 2030 세대의 추억과 향수를 자극하면서 현실적으로 다가오면서도, 현실적으로 다가갔을 때 부딪힐 수 없는 무거운 문제들은 -입시 스트레스의 어두운 이면, 학교폭력, IMF 등- 이 6명의 이야기들로 밀당하면서 잘 피해간 느낌. 이제 서른을 넘기고 있는 시원이와 윤제, 그리고 친구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막상 나이를 들고 보니, 해를 넘기면 넘길수록 각자 제 코가 석자인지라 친구들끼리 그렇게 뭉치기도 너무 어려워서 말이다.

그래도 소꿉친구였던 시원이와 윤제의 티격태격 꽁냥질과 풋풋하니 설šœ 로맨스, 마지막 순간까지 멈추지 않던 본격 성시원 남편 추리 떡밥, H.O.T.와 젝스키스를 아는 세대라면 빵 터질 수 밖에 없는 그때 그 추억들까지. -아아 추억의 입금증과 흰 우비란!- 드라마 보면서 주변 지인들과 옛날 생각나지 않냐며 광대가 승천할 정도로 웃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렇게 <응답하라 1997>이 더욱 더 재미있었던 건 드라마의 장면 하나하나가, 대사 하나하나가 심금을 울릴 정도로 공감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드라마가 그 90년대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던 사람에게만 어필했던 건 아니다. 아마 언제 어떻게 <응답하라 1997>을 보게 되더라도, 학창 시절에 대한 추억과 향수가 있다면 이 드라마가 찡할 수 밖에 없을 듯. 그때는 너무 커 보였던 입시의 벽과 기타 등등 말 못할 다른 스트레스들 속에서도 그저 마냥 즐겁게 깔깔거리며 웃을 수 있었던 이유, 주6일의 등굣길이 지금의 출근길보다 발걸음이 조금 더 가벼울 수 있던 이유는 어제 만났지만 오늘 만나도 한 없이 반갑고 신나는, 항상 내 옆자리나 옆 분단에 앉던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드라마 보면서 친구들 생각이 참 많이 났다.

그때 그 친구들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들이 밀려 와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런데 단순히 먹먹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되지 않을 지금 이 기분은 단순히 <응답하라 1997>이 끝나서, 혹은 드라마를 보면서 친구들 생각이 나서 센치해져서가 아니라, 마지막 윤제의 내레이션이 가슴을 쿡 찔렀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말 다시는 무모하리만치 순수했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가 없다는 걸 절절하게 잘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윤제처럼 나도 나지막이 외쳐보고 싶다.

뜨겁고 순수했던, 그래서 시리도록 그리운 그 시절. 들리는가, 들린다면 응답하라, 나의 90년대여! <토오루 객원기자, 暎芽 (http://jolacand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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