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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피에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강도'라는 주인공의 이름부터 직설적입니다. 김기덕 감독이 갱을 쓴 '영화는 영화다'의 주인공 '수타'와 '강패'는 각각 스타와 깡패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피에타'의 강도는 '사채업자 = 강도'라는 도식과 더불어 강도가 행사하는 폭력의 강도가 매우 강력하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표출합니다.
과묵하며 폭력적이고 사랑을 주고받는 이도 없는 외로운 인물이라는 점에서 강도는 김기덕 영화의 전형적인 남자 주인공입니다. 재킷을 걸친 강도의 옷차림과 끔찍한 폭력을 반복하는 행위,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며 어떻게든 임무(사채 수금)를 완수하는 성격은 터미네이터를 연상시킵니다. 강도가 닭, 토끼, 장어 등 동물과 생선 등을 가공된 형태가 아닌 산 채로 잡아와 일부를 먹는 장면은 그의 야수와 같은 동물적 본능과 함께 영화 전반의 '날것'의 이미지를 강조합니다.
미선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피해자였던 미선이 가해자임이 드러나고 피해자를 동정하던 가해자 강도는 피해자로 반전됩니다. 강도와 미선의 관계도 타인임이 드러납니다. 스릴러라 해도 손색이 없는 갱의 힘이 발휘되는 순간입니다. 미선으로 인해 강도는 자신의 폭력의 피해자들이 자신을 가해하고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힙니다. 이 또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전입니다. 종국에는 가해자 미선이 피해자 강도를 동정하며 강도는 피해자의 손에 의한 속죄, 즉 죽음을 선택합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의 역전과 반전이 반복된 것입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일이 드물었던 '가족'이 피에타에서 강조된 것은 반전과 비극성을 심화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일반적인 상업 영화들은 엔드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들을 극장 밖의 현실로 되돌려 보내기 위해 편안하고 아름다운 장면을 제시하곤 합니다. 그러나 '피에타'는 정반대로 결말의 마지막 장면까지 힘이 넘치며 유혈이 낭자해 관객을 현실로 돌려보내지 않으려 합니다.
굴레인 토끼장에서 벗어났으나 탈출하지 못하고 도로 위에서 차에 치어죽은 토끼의 운명에서 강도의 운명은 진작 암시된 바 있습니다.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강도 역시 토끼와 마찬가지로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도로 위에서 생명을 마감합니다. 마지막 장면까지 김기덕 감독의 갱의 힘은 압도적입니다. 극중에서 제시되는 폭력 또한 상업 영화들의 판타지에 가까운 폭력(즉 액션)과 달리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잔혹성을 배가시킵니다. 섹스 또한 아름답거나 에로틱하게 포장되지 않으며 단지 동물적 본능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따지고 보면 '피에타' 영화 속 현실과 관객이 일상을 영위하는 현실은 차이가 없습니다. 영화 속에서 영웅적인 주인공이 악당을 물리치거나 아름다운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과 달리 '피에타'는 비루하기 짝이 없는 천민자본주의 대한민국의 현실을 직시합니다. 소규모 영세 사업장은 청계천 재개발로 인해 폐쇄되며 1인 사업가들은 사채를 쓰다 신체 훼손과 죽음에 내몰립니다. 극중에 등장하는 압착용 선반기계나 자물쇠, 쇠사슬, 갈고리 등은 결코 그들이 피할 수 없는 한국사회의 폭압적인 돈의 굴레와 착취 구조를 상징합니다. 어디에도 구원은 없습니다.
초반에 등장하는 강도가 먹고 남은 생선뼈는 자전적 영화 '아리랑'에서 김기덕 감독이 먹다 남긴 생선뼈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강도의 원룸 벽의 다트 과녁의 여성 상반신 누드화와 극중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선반기계는 '아리랑'에서 드러낸 바 있는 그림 그리기와 기계 다루기를 좋아하는 김기덕 감독의 취향이 반영된 듯합니다. 하지만 최근작들에서 다소 부드러운 행보를 보였던 김기덕 감독은 '피에타'를 통해 작심하고 강한 영화로 복귀했습니다. 영화배우보다는 탤런트에 가까웠던 조민수의 연기도 매우 인상적입니다.
빈집 -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김기덕 영화
숨 - 소통이 불가능한 답답한 사랑
비몽 - 사랑은 구속된 미친 꿈
아리랑 - 김기덕, 1인 다큐멘터리에서 액션 판타지까지
아멘 - 김기덕, 유럽에서 구원을 묻다
<이용선 객원기자, 디제의 애니와 영화이야기(http://tomino.egloos.com/)>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